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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7 | [문화저널]
옛말사랑 며느리는 나귀타고 시어머니는 고삐끌고
김두경 서예가(2003-09-24 09:24:47)
며칠 전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어느 결혼식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발 디딜 틈조차도 없는 예식장 풍경에 "아이쿠, 못난 나래도 오지 않았어야 이 혼잡을 덜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후회가 되었지만 이리 부딪고 저리 부딪치며 친지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7월이면 한여름이라 할 수도 있는데 높고 귀하신 분 자녀들의 행사인 까닭인지 남자 분들은 모두 말쑥한 양복 정장에 넥타이를 메었고 여자분들은 속살이 훤히 비치는 깨끼 한복이나 시원함의 극치를 볼 수 있는 반 토막 양장을 하고 얼굴에 겹겹이 바른 형형색색의 코팅 재료가 혹시나 부식될까봐 예쁜 물수건으로 톡, 톡 찍어내며 흘리는 웃음들이 너무나도 교양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교양 있어 보여 감히 똑바로 바라보기도 어지러운 분들이 감물들인 제주도산 갈옷, 중의에 감물빛 고운 싸구려 마직 등거리 걸쳐 입고 고무신을 신은 내 못난 차림에 "시원하게 입으셨군요"를 연발하시니 못난 이사람 어리둥절할 밖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엉덩이 부분에 손수건 두어 장 가린 것 같은 최신식 양장보다 투박한 광목에 감물 들인 중의가 시원할리 없으며 어깨며 겨드랑이 훤히 비치는 잠자리 날개 같은 옷보다 투박할 뿐 아니라 소매도 긴 나의 등걸이가 시원할리도 없을 텐데 사람들은 의례히 건네는 말씀이 "시원하게 입으셨군요"라는 인사말이었으니 이거 도대체 조롱하는 것인지 불쌍하고 측은하여 위로하는 말씀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빛나는 검정색 정장에 빛나는 구두와 넥타이 그리고 머리까지 빛나게 기름 발라 빗어 넘긴 어떤 신사분께서 제게 던진 말씀은 참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완전히 도사가 되셨구만" 글쎄요? 제주산 갈옷에 모시등거리 입어서 도사가 될 수 있다면 아니 도사 근처라도 갈 수 있다면 어느 분이 그렇게 입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자기들은 양복에 넥타이에 구두까지 신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서양식으로 차려 입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이 땅의 사람으로 태어나 우리 옷 좀 입은 것이 그렇게 관심꺼리며 도사나 입는 특별한 옷으로 생각하는 정신이 어째서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오늘을 사는 이 땅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양식으로 차려입는 것이 화재꺼리가 되어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만약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양식으로 꾸민 그분께 "서양사람 되셨군요"라고 인사말은 건넨다면 어떨까요? 아마 죽일 놈 살릴 놈 할 수도 있겠죠? 안 그렇습니까? 점잖은 표현이라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미국놈 다 되셨군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기분 좋으시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이런 질문이 오히려 당연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래야 합니까? 왜 스스로 목줄 묶어서 그들 손에 바치려 합니까? 아침 식사로 쌀밥에 된장국과 김치 챙겨 먹으면 촌놈이 되고. 새끼 낳아서 사람젖 먹이면 미개인이 되고, 사물을 제외한 판소리나 다른 우리음악 좋아하면 구닥다리 덜 떨어진 촌놈이라고 놀려대며,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은 물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지식인 무식쟁이 할 것 없이 잘나고 많이 배운놈일수록 더 서양풍으로 살고 서양풍으로 죽습니까?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좋은 게 좋은 거고 나만 잘 먹고 잘살면 좋은 막가는 세상입니까? 옛 말씀에 며느리 나귀타고 시에미 고삐 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주객의 전도를 꼬집는 말씀인 줄 모르실 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잠시 생각해봅시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에서 주는 무엇이고 객이 무엇인지? 그리고 서서히 찾읍시다. 그리고 우리가 주인이 됩시다. 그렇다고 배척하고 고집 부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주와 객을 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먼저 시에미 나귀타고 며느리 고삐 끌다가 잠시 바꾸어도 타다가 같이도 타고 가자는 말씀입니다. 싱싱한 며느리 나귀타고 지친 시에미 고삐 끄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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