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을까?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홀로 거리를 방황하던 아이가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음악의 음 자도 모르던 아이가 연주자의 꿈을 품게 되는 그런 영화 같은 일들이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회취약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음악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한국형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 '꿈의 오케스트라'가 바로 그것이다.
익산문화재단, 부안 아리울 오케스트라단, 장수문화원, 고창문화원 등 현재 우리 지역 네 곳에서 진행 중인 꿈의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통한 화합과 성장을 추구하며 문화소외계층 아동들을 보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꿈의 오케스트라, 익산'은 2010년 1기로 창단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형 엘 시스테마 중 한 곳, 이곳에서 음악의 꿈을 품게 된 아이들도 적지 않다.
창단 원년 멤버로 지금도 '꿈의 오케스트라, 익산'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 주고 있는 익산문화재단 이태호 국장과 박성일 음악감독을 만나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오케스트라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들어 보았다.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이가 어느새 대학생이 됐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격세지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던 아이들은 이제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줄 정도로 성장했다. 이를 바라보는 이 국장과 박 감독의 감회도 남다를 터. 여러 시행착오 끝에 다다른 길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값지다.
"강사 선생님들과 지향점, 목표를 공유하는 데 3년 걸렸습니다. 엘 시스테마의 가치를 다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했기에 연주에 신경을 쓰는 선생님들이 많았죠. 하지만 꿈의 오케스트라에선 아이들보다 연주가 우선시돼선 안 됐습니다. 우리는 소외 아동들을 끌어안기 위해 오케스트라라는 형식만을 빌려 왔을 뿐이지, 오케스트라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거든요."
아이들의 출석율에 대한 고민도 중요한 문제였다. 주변의 손쉬운 재미에 빠지기 쉬운 아이들, 특히 사회취약계층 아이들의 경우 비행에 빠지기도 쉬워 그런 아이들을 붙잡을 만한 방편이 필요했다. 3회 무단결석을 하면 퇴출된다는 엄한 규칙도 있었지만, 이를 아이들에게 고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자체적인 노력에 더해 아이들의 참가를 독려해 줄 가정의 협조가 필요했다.
"참가 신청을 받을 때, 부모 동반 면접을 실시했어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빠지지 않도록 격려해 달라 부탁을 드렸더니, 그해부터 눈에 띄게 출석율이 좋아졌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길을 찾듯 더듬더듬 더 나은 방법과 방식을 모색하며 10년의 세월을 달려왔다. 그 근간에는 언제나 아이들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촘촘하게 깔려 있었다.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길인가. 그것은 과거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될 두 사람의 숙제다.
"아이들 본인의 목마름도 커요. 사실 저희 프로그램이 상당히 타이트합니다. 웬만한 열정으로는 끝까지 따라올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포기하는 일 없이 아이들 모두가 잘 따라와 줍니다. 그 목마름 때문에라도 어중간하게 할 수가 없어요."
기획연주회 포함 1년에 10회 정도의 공연, 학생 신분인 아이들에겐 제법 빠듯할 수도 있는 일정이지만,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악기 연습만 하는 캠프 때도 오히려 먼저 지치는 건 선생님들 쪽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의욕을 느낄 수 있는 부분, 그런 목마름에 화답해 줄 수 있는 '꿈의 오케스트라, 익산'의 존재가 그래서 더 의미 깊다.
"그렇게 힘들게 연습하는 동안 아이들도 그들 나름대로 답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꼭 음악의 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열정을 쏟을 무언가를 고민해 보는 거죠."
뿐만 아니라 이곳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힘든 연습에 끝까지 동참했다는 성취감과 무대 경험은 아이들의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이겨 내고 꿈을 좇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누군가가 억지로 가르쳐서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배려를 체득한다는 점도 오케스트라의 강점이다. 앙상블, 전체적인 어울림이나 통일이 이뤄졌을 때, 음악은 더욱 아름다운 경지와 음색을 풀어놓는다. 합주 때 아이들이 여느 때보다 눈빛을 빛내며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도 그 때문, 그러면서 아이들은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써 상대를 배려하는 방법과 어우러짐을 그 마음에 새긴다.
"처음에는 자기만 생각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수업 후 뒷정리를 돕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시작해요. 그런 분명한 변화들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오랫동안 이 꿈의 오케스트라를 유지하고 싶어요."
오케스트라의 행정을 맡고 있는 이 국장은 그래서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꿈의 오케스트라가 갑자기 사라지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 그런 걱정과 긴장 속에서 꿈의 오케스트라가 지속성을 갖고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2016년에 전라권역 거점 기관들과 함께하는 상위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어요. 꿈의 오케스트라가 지속성을 가지려면, 협의체를 만들어서 노하우를 공유하고, 어떤 기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쪽에 지원도 해 줄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거기다 잘하는 아이의 경우 상위 오케스트라를 통해 그 실력을 더욱 갈고닦을 수도 있을 겁니다."
보내온 10년에서 다시 다가올 10년을 바라보며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꿈의 오케스트라, 익산'. 앞으로 아이들은 그 안에서 다시 어떤 화음들을 만들어 낼까? 희망찬 합주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