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무명의 동학농민 지도자가 125년 만에 고국 땅에서 잠든다. 이 유골은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의 옛 표본고에서 발견됐다. 당시 유골에는 '동학당(東學堂)'이라는 글씨가 적혀있었고, 유골과 함께 첨부된 문서에는 '진도에서 효수된 한 수괴자의 해골'이라는 설명이 담겨 동학농민군 지도자 중 한 사람의 유골임이 밝혀졌다.
이 유골은 지금까지 확인된 동학농민군의 유해로는 유일한 것으로 1996년, 당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한승헌 변호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봉환위원회의 주도로 봉환됐다. 봉환 이후에는 동학농민군 유해조사위원회가 결성되어 유골의 신원 확인 작업을 진행했으나 30~40대 남성으로 추정된다는 것만 밝혀졌을 뿐 유골의 확실한 신원은 끝내 밝히지 못했다.
동학농민기념사업회는 동학농민 지도자의 유골을 정읍 황토현기념관에 임시로 안치한 뒤 효수 장소였던 진도, 정읍의 황토현전적지 등에 영구 안치할 것을 추진했으나, 안타깝게도 안장은 좌절됐다. 갈 곳을 찾지 못한 유골은 봉환 이후 23년 동안 차갑고 어두운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 안에 머물러 있었다.
국가를 개혁하고, 나라를 외세로부터 지키기 위해 동학농민군이 혁명을 일으킨 지 125년, 동학농민혁명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올해에서야 무명의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안식처가 결정되었다.
전주동학농민혁명사업회((이사장 이종민)는 6월 1일 완산전투의 역사적 현장인 완산칠봉에 전주시가 건립한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유골을 영구 안치한다고 밝혔다.
동학농민 지도자의 추모행사는 전날인 5월 31일(음력 4월 27일) 동학농민군 전주입성 기념식과 함께 이루어진다.
기념식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주시립완산도서관 강당에서 열린다. 오전에는 동학농민군 전주입성 125주년 기념식 및 문화공연이, 오후에는 유골 봉환에 기여한 이노우에 가츠오 북해도대학 명예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참석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6월 1일에는 "배견의 귀향'을 주제로 유골의 발인과 진혼의식이 성대히 펼쳐진다. 오전 8시 30분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 발인의식을 시작으로 유골을 영구차에 싣고 풍남문까지 이동, 풍남문부터는 꽃상여에 태우고 초록바위를 거쳐 진혼식 현장인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까지 이동한다. 그 사이에는 두 번의 거리공연(총연출 홍석찬)이 펼쳐진다.
'저 너머 활활 타올라'(풍남문 특설무대)와 '새야 새야 파랑새야'(초록바위 앞)를 주제로 펼쳐지는 거리 공연은 판소리와 꽃상여, 만장 행렬, 호남창의문 낭독과 폐정개혁안 낭독 등이 이어진다. 명창 왕기석과 임실필봉농악보존회(회장 양진성), 연극인들이 참여하는 공연이다.
진혼식과 진혼 공연을 모두 마치면 녹두관 내 판석묘에 안장한다. 안장식은 천교도의식으로 진행되며, 동학농민혁명사업회와 동학농민유족회 등의 관계자가 참석해 진행한다.
동학농민혁명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재편하는 뿌리가 되었으나 아직도 그 역사적 정당성과 의미는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3.1운동의 뿌리가 되고 그것은 다시 오늘날의 촛불혁명까지 이어져 살아 숨 쉬고 있으나 그 역사적 실체는 여전히 역사의 중심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번 추모행사는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운 농민군들의 넋을 기리고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