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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 | 기획 [버려진 물건 위에 핀 새활용의 꽃]
공익성과 창조성,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업사이클링의 발자취
이동혁(2019-07-17 10:18:14)

우리가 쓰레기라 칭하는 많은 폐품들, 이를테면 찢어진 우산이라든가 수명이 다 된 폐타이어, 구멍 난 양말, 빈 페트병 등등, 거기에 옷을 재단한 뒤 나오는 수많은 자투리 천과 행사 뒤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현수막까지. 과거에는 이런 것들이 전부 쓰레기장으로 향하거나 매립지에 묻혔지만, 이제는 다르다. 버려진 물건에 세련된 디자인과 기능성을 더하여 전혀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재활용을 넘어 제품에 여러 가지 가치를 더해 만족도를 높이는 업사이클링은 낭비되는 자원을 다시 순환시킨다는 환경적 공익성과 활용에 한계를 두지 않는 창조성 덕분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쓰임을 잃은 물건들의 놀라운 변화, 쓰레기는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다. 골칫거리였던 폐현수막은 젊은 층의 감성을 자극하는 패션 가방으로 변신했고, 한데 모아 버려지던 자투리 천도 멋진 파우치로 거듭나 누군가의 품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처럼 '폐품'을 '명품'으로 변화시키는 색다름이야말로 업사이클링이 지닌 묘미일 것이다.



자원 순환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다
업사이클링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지 올해로 약 25년이 됐다. 1994년 독일의 디자이너 리너 필츠는 디자인 매거진 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그 용어를 사용하며, 업사이클링의 진정한 의미를 낡은 제품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주장한 업사이클링은 버려진 자원이나 쓸모없는 폐품을 분해하는 과정 없이 활용하여 본래보다 더 좋은 품질 또는 더 높은 환경적 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재가공하는 것이었다. 이는 기계적, 화학적 공정을 통해 원재료를 사용 가능한 다른 자원으로 바꾸는 기존의 다운사이클링과는 완전히 차별되는 개념이었다.
이후 업사이클링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건축학자이자 화학자인 윌리엄 맥도너와 마이클 브로가트가 2002년 『요람에서 요람으로』라는 책을 발간하면서부터다. 플라스틱 레진과 무기충전재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이 책에서 두 사람은 기존의 사물을 사용함으로써 쓸모 있는 재료가 버려지는 것을 막는 것이 업사이클링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재사용을 고려하지 않은 '요람에서 무덤으로'형 제품 생산자들에게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업사이클링이란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까지 일반적으로 버려지는 제품과 쓰레기를 다시 활용하는 재료 순환의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직접적 활용에 기초한 '재사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처리 과정을 거쳐 자원을 환원하는 '재활용'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방법 모두 순환 과정에서 극히 일부의 재료만 사용되거나 다시 만들어진 제품이 본래의 제품보다 품질 면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진정한 의미에서는 온전한 자원 순환이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재활용은 처리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와 더불어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까지 야기시키면서 '다운사이클링'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런 배경 속에서 기존의 순환 과정을 뒤집는 새로운 환원 방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환경 문제에 위기 의식을 느낀 몇몇 디자이너와 환경 운동가들에 의해 드디어 업사이클링이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새활용을 이끄는 착한 기업들
사실 그간의 업사이클링 산업은 거의 유럽이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사이클링 제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스위스의 유명 브랜드 '프라이탁'을 시작으로, 북유럽을 대표하는 '글로베 호프', 독특한 폐기물을 새활용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엘비스 앤 크레세' 등은 업사이클링을 단순한 친환경 목적뿐 아니라 상품 경쟁력을 갖춘 패션 제품으로 재탄생시킨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은 방수천 소재에서부터 항공기의 안전벨트 등 독특한 폐소재를 활용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물론 업사이클링의 재료가 꼭 직물로 한정되진 않는다. 스페인의 '디카페'라는 업체는 커피 찌꺼기를 사용해 고급스러운 램프를 제작하고 있고, 이탈리아의 '위우드'는 바닥 마감재의 일부로 나무 시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그 밖에도 버려진 폐가구에 독특한 디자인을 입힌 패션 가구 업체로 사랑받고 있는 독일의 '쯔바잇신'도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기업에 포함된다.
이탈리아 중부 파엔자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 기업 '디자인 2.0'이 제시한 '리자인(Recycling+Design)' 프로젝트도 업사이클링의 주요한 사례로 손꼽힌다. 기업의 환경 인식 개선과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된 리자인은 단지 폐기물을 활용한 디자인 상품 개발에 치우친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구호 단체인 마니테스와 캠퍼스 엠마우스, 아이시아 등 디자인 스쿨과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정신을 추구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덕분에 파엔자는 관련 산업을 선도하는 '리자인의 도시'로 각광받으며, 이웃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등 유럽 전역으로 리자인의 가치를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은 북미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간에 의한 과도한 환경 오염에 비판적인 에코 크리에이터들이 주축이 되어 스토리가 있는 '홀스티', '에코이스트' 등의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하나둘 생겨났고, 착한 소비자와 이들 제품이 만나면서 환경을 위하는 윤리적 소비 문화가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들의 성공은 단순히 업사이클링 제품의 환경적, 사회적 가치를 호소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실용성과 심미성까지 모두 포괄하였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국내에서는 2006년 '아름다운 가게'가 만든 업사이클링 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가 그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터치포굿', '리블랭크' 등의 브랜드가 합류하며 업사이클링 제품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고, 2013년 10여 개에 불과했던 업사이클링 업체도 약 100여 개까지 늘어났다. 특히, 버려지는 현수막을 수거해 가방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에코파티메아리는 2009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가방을 전시하며 원단 재질의 화려한 색감, 적혀 있던 한글 등으로 인해 팝아트적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폐차장에서 나오는 자동차 시트 가죽과 안전벨트, 에어백 등으로 가방을 제작하고 있는 '모어댄'도 방탄소년단의 리더가 해당 업체의 백팩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더하고 있으며, 코오롱에서 운영하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레코드', 폐기되는 자전거를 분해, 재조립하여 인테리어 조명을 만드는 '세컨드비', 버려지는 목재 팔레트를 활용한 가구로 눈길을 끌고 있는 '러스틱아일랜드'도 주목할 만한 국내 업사이클링 업체들이다.


산업으로써는 아직 걸음마 단계
어떠한 산업이 지속력을 갖기 위해선 상품의 생산과 구입이 선순환을 그리는 소비 구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업사이클링 산업은 과연 지속력을 확보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의견이다.
전 세계 재활용 시장은 연간 4,000억 달러(한화로 약 474조 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일부 개발도상국을 제외한 것이라 실제로는 더 큰 시장을 구축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규모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크며, 대략 절반에 해당되는 2,000억 달러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재활용 시장이지만, 업사이클링 산업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시장 규모가 미미해 아직 산업으로서는 시작 단계에 불과한 형편이다. 미국의 업사이클링 전문 기업 '테라사이클'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미국 업사이클링 시장 규모는 2010년 기준 연간 1,250만 달러에 그친다고 한다. 이는 미국 전체 재활용 시장 규모의 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내 업사이클링 산업도 미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 패션 업체 중 처음으로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런칭한 코오롱의 레코드와 몇몇 영세 기업의 연간 매출액을 모두 합쳐도 20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국내 재활용 시장이 연간 약 4조 원 규모인 것을 감안했을 때, 미국과 마찬가지로 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친환경적인 생산과 윤리적 소비 양식의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는 업사이클링이지만, 지속력을 갖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재활용의 부작용을 넘어 한 단계 위를 지향하는 업사이클링은 쓰레기 문제에 직면한 우리 세대가 반드시 고민해 보아야 할 대안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코 디자이너들은 지금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업사이클링의 가치와 문화 형성에 이바지하고 있고, 기존의 프레임을 벗어던진 과감함 속에서 후대에 남겨 줄 지구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고민에 힘을 보태며 업사이클링의 활용을 찾는 일, 이제는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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