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7 | [문화저널]
판소리명창
소리의 미감 중시하는 판소리의 깊이
명창 이일주 4
최동현 군산대교수, 판소리연구가(2003-09-24 09:27:49)
이일주의 판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김연수제(김연수의 호를 따서 東超制라고도 한다) 판소리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연수제 판소리란 김연수가 말년에 새로 짠 소리를 가리키는데, 이일주는 김연수제 소리의 두 번째 계승자 중 가장 뛰어난 소리꾼이기 때문이다.
김연수의 소리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제일 먼저 들어야 할 점은 극적 성격이다. 이러한 점은 그가 정리해서 출판한 사설집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김연수는 판소리 다섯 바탕의 사설을 정리하면서, 모든 사설을 배역에 따라 분배하고 그 배역을 표시하였으며, 배역이 없는 해설에 해당하는 부분은 효과로 처리하는 등 판소리 사설을 완전히 연극적 관점에서 재정리하고 있다. 김연수는 이와같이 판소리의 극적 성격을 보다 더 확대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김연수가 연극적 소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었고, 또 극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연수의 소리에 대해서 말할 때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정확한 사설이다. 주지하다시피 판소리는 구두전승예술이다. 또한 판소리 전승을 탐지했던 사람들, 곧 판소리 전승의 주체는 대부분이 무시간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전승 과정에서 수많은 오자(誤字), 탈자(脫子)가 발생하여 나중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거의 짐작할 수조차 없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근세 최고 명창의 한 사람으로 들고 있는 임방울의 경우도 사설의 부정확성이 늘 약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그런데 김연수는 소리꾼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또 그는 잘못된 판소리의 사설을 다시 정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의 판소리 사설은 거의 잘못된 곳이 없다.
김연수 판소리의 세 번째 특징은 다양한 부침새 기교의 사용이다. 부침새란 판소리 사설과 장단의 박 사이의 관련 양상을 가리킨다. 부침새에는「대머리 대장단」과「엇부침」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대머리 대장단은 동편제 소리꾼들이 즐겨 사용하는 부침새로, 규격적인 부침새라 할 수 있고, 엇부침은 주로 서편제 소리꾼들이 즐겨 사용하는 부침새로 변칙적인 부침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연수는 바로 서편제 소리꾼들이 즐겨 사용하는 엇부침의 기교를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다양한 장단 운용의 기교로 극복하고자 한 데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현재 불려지고 있는 판소리 중에서 김연수 바디는 정정렬 바디(전북 도립국악원 최승희가 부르는「춘향가」가 대표적이다)나 박동실 바디(광주의 한애순이 부르는「심청가」가 대표적이다.)와 함께 장단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김연수 소리의 네 번째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합리성이라고 이를 만한 점이다. 김연수는 여러 선생들로부터 소리를 배운 후에 그 소리들 중에서 좋은 점만을 골라 자신의 소리를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나름대로 다시 사설을 짜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였다. 곡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김연수의 소리는 어느 누고의 소리와도 같지 않은 독특한 소리가 되었다. 김연수의 사설을 보면 다른 바디에 비해 일관성을 갖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예를 들자면,‘춘향이가 (이별하자는 이도령의 말을 듣고)갖은 포악을 다 떨었다고 하나, 온갖 예의범절을 다 아는 춘향이가 그랬을 리가 있으리오?’하는 식이다. 당연히 김연수의「춘향가」에서 춘향이는 다소곳이 이별을 감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심청가」에서 심봉사는 뺑덕이네와 재혼을 한 후 남부끄러워 본래 살던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김연수의 소리에는 이러한 특징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와 반대되는 특징, 이를테면 상스런 말이나, 노골적인 성애 장면의 묘사 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시 김연수의 판소리는 신재효 이후 점증되어온 판소리의 경향, 곧 합리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김연수는 그 의식에 있어서는 신재효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김연수는 판소리를 새로 짜는 과정에서 신재효의 사설을 많은 부분 차용하고 있기도 하다.
김연수의 소리는 그가 추구한 합리성으로 인하여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다. 예술이란 논리를 초월하는 어떤 점이 있기 마련이며, 이러한 특성이 오히려 강한 감동을 유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서 김연수의 소리는 부족한 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래서 김연수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임방울은 김연수의 소리를 두고,‘이면 찾다가 소리 버린다’고 했다.
이상과 같은 김연수 판소리의 특징은 이일주의 판소리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만 이일주는 연극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일주의 너름새가 형편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일주의 판소리에서는 김연수나 김연수의 계승자인 오정숙의 판소리에 비하여 너름새의 비중이 작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이는 이일주가 창극 단체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소리 중심의 활동을 해 왔다는 데서 그 일차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이일주의 판소리는 그 목소리의 질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의 예술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너름새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이일주는 연극적 판소리를 이어받았으면서도 소리자체의 미감을 중시하는 판소리관을 갖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소리의 미감을 중시하는 이일주의 판소리는 그래서 훨씬 무게와 깊이를 느끼게 한다. 바로 이 점이 김연수 소리의 다른 계승자들과는 다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