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00~700m 이상의 고지대로 산림이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청정 산촌 지역 장수.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이 있는 고장으로 예로부터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은 장수를 대표하는 자긍심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가지고도 관광의 측면에서는 그동안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훼손되지 않은 장수의 자연을 부각시키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체계적인 관광 프로그램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유정 관광두레 PD가 민간 사업체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여행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끈다. 지역의 소중한 자원들을 엮어 장수를 찾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고 있는 장수가야지와 장수애핀꽃. 삭막한 도시 풍경에 지친 몸과 마음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는 특별한 여행 프로그램들이 장수에서 펼쳐지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당신을 위로하는 힐링 음악회
장수 귀농, 귀촌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장수가야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에 가치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주민 여행사다. 현재 장수의 자연과 예술을 결합한 '감성여행'을 운영하고 있으며, 물이 으뜸인 고장 장수의 매력을 살려 상류 수원의 물길을 더듬는 '금강물길투어'도 준비 중에 있다.
"감성여행의 반응이 무척이나 좋아요. 논개 활공장에서 펼쳐지는 야외 음악회가 주요 프로그램인데, 눈으로 보는 경관의 아름다움과 귀로 듣는 음악의 감미로움이 한데 어우러져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할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요."
인도 전통 춤, 인디안 피리, 러시아 오케스트라단의 합주 등 장르를 망라한 공연이 매번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도 감성여행의 매력이다. 더욱이 마치 세상의 중심에 선 듯 탁 트인 공간이 주는 개방감 덕분에 이곳에서 그간 자신을 괴롭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가는 손님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만이 힐링이 아니듯 장수가야지 역시 특별한 치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관계 지향적 여행'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여행이에요. 손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가 같이할 때 비로소 여행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손님과 맞는 이라는 딱딱한 관계가 때로는 감정의 벽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경계가 허물어졌을 때 비로소 서로 마음을 터놓고 함께 어우러지는 힐링이 이뤄질 수 있다고 임 PD는 말한다. 그는 "공연이 진행될 때, 평소의 응어리를 해소하고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많았다"며, "우리가 서비스만 제공한다는 생각으로 손님들을 대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풍경"이라고 말했다.
손님과 주인이라는 입장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함께 '우리'가 되어 만드는 치유 여행, 삭막한 콘크리트 속에서는 닿을 수 없는, 장수이기에 가능한 여행이다.
꽃차와 함께하는 향긋한 시간
안 마셔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마시는 사람은 없다는 꽃차. 장수애핀꽃은 장수의 청정 자연에서 재배한 꽃으로 꽃차를 만드는 주민 사업체다. 임 PD와 함께 처음 주민 사업체를 꾸릴 때만 해도 지역 특산품으로서 꽃차만을 판매할 생각이었지만, 꽃차 만들기 체험이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으면서 특별히 여행 프로그램으로까지 구성을 확장하게 됐다고 한다.
"수백 가지의 꽃차가 있는데, 처음엔 그중에서 특징적인 10개 정도의 꽃차를 맛보고, 꽃차를 포장해 가는 두세 시간 정도의 체험 프로그램만 진행했어요. 그러다 꽃차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체험자들이 많아지면서 1박 2일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어요."
체험 시간이 길어진 만큼 꽃을 따는 것에서부터 말리고 시음하는 과정까지, 꽃차의 모든 것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풍성하게 꾸몄다. 꽃차 매니아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기회일 터, 단순히 꽃차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 꽃차가 가진 효과와 꽃마다 다른 손질법까지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꽃차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이라도 부담이 없다. 거기다 깨끗한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이때, 꽃을 재배하는 곳을 실제로 돌아보며 청결까지 확인할 수 있어 꽃차에 대한 손님들의 믿음도 높다.
올 여름, 장수애핀꽃과 함께 꽃이 갖는 아름다움과 향기로움, 우리 건강에 주는 이로움을 배우면서 자신만의 꽃차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임유정 PD가 생각하는 장수 관광의 미래란?
국제개발협력을 전공하고 개발원조 분야에 관심이 있어 계속 그쪽에서 일을 해 왔다. 그러다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며 잠깐 틈이 생겼을 때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관광두레 PD였다. 관광과 거리가 먼 일을 해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관광두레의 가치에 대해 알면 알수록 국제개발협력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국제개발협력의 목표가 개발도상국이 잘 살도록 돕는 것인 것처럼, 관광두레 역시 지역의 주민들이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게끔 도우며 역량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단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2017년 PD로 선정돼 지금까지 활동해 오면서 느낀 장수의 자산은 결국 자연이었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였다. 하지만 이미 방화동 휴양림이나 와룡 휴양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연만을 여행 콘텐츠로 삼기에는 특색이 부족했다. 그래서 자연에 예술을 엮은 감성여행을 개발했고, 청정 자연을 강조한 꽃차를 새로운 상품으로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런 콘텐츠 중심의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지역민과의 상생이다. 그래서 여행 프로그램을 마쳤을 때, 항상 이렇게 자문하곤 한다. 과연 우리도 그들과 함께하여 행복했는가.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여행은 고객이 100% 만족했더라도 성공한 여행이라 할 수 없다. 손님과 지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여행, 그것이 장수에서 이루고픈 관광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