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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 | 특집 [고 박민평 화백을 그리며]
너무 순수해 예술 이외의 다른 길을 알지 못했던 그대여
(2019-09-17 11:40:45)



고향 산천에 대한 애정을 계속해서 화폭에 담아내었던 우리 지역의 대표 원로작가 박민평 화백이 지난 7월 25일 향년 8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60여 년간 지역 화단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 온 박 화백은 전북의 존경받는 원로작가로서 전북미술계를 원만하게 이끌어 왔다.
1940년 부안에서 태어난 박 화백은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고향의 산과 들을 모티브로 서정적인 향수가 물씬 풍기는 작업들을 지속해 왔다. 특히, 1970년대 중앙에 진출하고자 많은 지역 예술가들이 서울로 향할 때에도 그는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서울을 등지고 전주로 내려와 도시의 감각적인 자극 추구가 아닌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내고자 했다. 다양한 실험 끝에 박 화백이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시킨 '산 시리즈'는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 억셈과 유연함 사이에서 그만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탄생시켰다.
높게 솟은 변산과 너른 부안 평야의 황금 들판, 옹기종기 모여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야트막한 산과 들, 무의식 중에 각인된 어린 시절 풍경들을 박 화백이 모티브로 삼게 된 것은 당연한 필연이었다. 그러나 보이는 그대로를 화폭에 담지는 않았다. 형태는 남기되 세세한 분위기나 색채는 오롯이 화백 자신의 심상을 거쳐 표현됐다. 구상과 추상 사이, 그의 기억과 향수가 덧입혀진 반추상의 작품은 그래서 더욱 강한 인상과 감동을 준다.


"나에겐 사생한 그림이 거의 없다.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기억들을 화폭에 재구성하는 것이 나의 작업 방식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전북 부안, 그곳엔 변산이 우뚝 자리하고, 서쪽으로 서해 바다가 황해로 펼쳐 있고, 동쪽엔 높고 낮은 산과 논밭이 옹기종기 어우러져 사철 풍광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다. 그런 자연 환경에서 청년기까지 보낸 탓인지 산과 들, 보리밭, 나무, 살구꽃 핀 마을 등이 나에게 수시로 기억되어 아른거린다. 그렇듯 떠오르는 고향의 정경을 나는 즐겨 그린다. 기억으로 그리는 그림은 군더더기 없이 나의 의도로 적당하게 단순화된 형상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0월 22일 박민평)


박 화백은 또 지난 2015년 타계한 하반영 화백, 후배 작가인 유휴열 화백과 함께 '삼인전'을 20년간 지속하기도 했다. 장르와 소재의 차이, 20대와 30대, 그리고 50대라는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형태를 달리한 다양한 삼인전으로 지역미술계에 큰 영감을 주기도 했다. 유 화백은 그를 가리켜 "너무 순수한 탓에 예술 이외의 다른 길을 알지 못했던 예술가 정신의 바이블"이라고 말했다.
한평생 그림과 함께 살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던 이 시대 진정한 예술가 박민평 화백. 그의 화가로서의 감성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었다. 살아 생전 그는 언제나 예술가이길 원했고, 실제로 예술가의 길에서 한시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그림 하나뿐. 삶이 곧 예술이었던 그의 발자취는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14회에 이르는 개인전은 물론 국내·외 수백 회의 단체전과 초대전에 참여해 온 박 화백은 주관이 뚜렷한 작품 활동과 꾸준한 자기 노력을 통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현하고 발전시켜 왔다. 전라미술상, 전주시 예술상 미술 부문, 목정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전북미술대전 운영위원·심사위원, 전주대 예체능대학 미술학과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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