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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7 | [서평]
우리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합력 제공 『소비의 사회 - 그 신화와 구조』 (장보드와르,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1991)
지역사회연구모임(2003-09-24 11:08:38)
어제 본 광고 문안이다. 까무스름하니 윤기가 흐르는 피부의 여자가 금방이라도 비눗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두 손을 욕조에 걸친 채 엎드려 있는 화면과 함께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무슨 선전일까? 비누 선전일까 아니면 욕조선전일까? 이도 저도 아닌 구두 선전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직행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경찰차와 견인차 사이에 발로 짓이겨 놓은 캔 맥주 깡통처럼 처참하게 쭈그러진 자동차 한 대가 있다. 그리고는 승객들의 어수선함이 뒤를 잇는다. "차 안에 피가 흥건하네, 죽었겠어" 등등. 하지만 그런 어수선함도 잠시잠깐이다. 제각기 하고 있던 자세로 하고 있던 생각들로 되돌아간다. 가끔, 그것도 아주 가끔씩 이런 무감각한 상황 앞에서 당혹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당혹감마저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는데.."하는 단세포적인 생각으로 끝을 맺기 마련이다. 이처럼 현대의 일상생활 속에는 우리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듣게 되고 보게 되는 많은 것들이 산재해 있으며, 또한 그 경험들은 기존의 논리적인 사고로는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경험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을 규정짓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 일상생활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분석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많은 포스트 모던적 현상들의 본질에 대해 한번쯤은 가져봄직한 의문들, 그러면서도 그 해답의 실타래를 채 풀어보기도 전에 일상이라는 흐름에 매몰되어 버리는 의문들에 대해 보드리아르는 소비사회의 분석을 통해 섬뜩하리만치 날카로우면서도 극단적인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일상의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보드리아르는 1929년생으로 현재 파니 10개 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맑스의 정치경제학과 구조주의 기호학을 종합하려는 신맑스주의적 시도로 자신의 저작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생산의 거울』에서 맑스주의를 전면적으로 비판하면서 포스트모던 사회이론을 전개하며, 이 후 그는 더 나아가 포스트 모던적 형이상학과 허무주의적 냉소주의에 빠지게 된다. 『소비의 사회』는 그의 초기저작에 속하는 것으로 사물을 기호, 의미의 체계로 해석, 일상생활에서 사물과 기호체계와 주체가 연관되는 방식, 그 기호체계를 이용하고 지배하는, 또는 지배당하는 방식을 서술한 힝사물의 체계항의 관점에서 현대 대중사회의 상품의 소비, 공해, 여가, 대중매체, 육체 등을 분석하고 있다. 『소비의 사회』는 60년대부터 변화하기 시작한 프랑스의 일상생활을 그 분석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천에 널려있는 상품들, 그 자체가 입증해주는 풍부함, 이를 실증해준다는 복지정책, 생활수준의 향상, GNP의 상승 들은 실제인가? 보드리아르는 이 모든 것들이 허구, 왜곡이라고 말한다. 공공지출을 통한 복지정책을 사실상 교육, 보건위생 등의 사회적 기회에서의 사회계급간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으며, 생활수준의 향상, GNP의 상승은 공해, 교통사고로 인한 치료비, 기간시설에의 과잉투자, 군사비 등이 소비로 기록되어 증가하는 수치상의 향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물의 풍부함으로 변화된 소비지형에서 상품은 노동과 생산과정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으로 나타나게 되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충족을 위한 사용가치 측면을 넘어서서 특정의 상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나타내는 '기호가치'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상품에 이러한 사회적 차이와 메카니즘을 부여하는 주체는 기술향상, 생산력발전 등에 따른 끊임없는 상품 증가와 이를 팔아야만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양적 풍부함에 의한 자동적 평등화의 이데올로기 유포로 자본주의 체제가 구조적 빈곤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은폐한다. 또한 대중매체의 선전광고에서는 서로 무관한 단편적 영상들의 반복, 조합을 통해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하나의 연결고리를 형성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일련의 상품 구매순서를 작성해주고,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이를 따라야 할 것만 같은 타성을 생기게 한다. 이처럼 선전광고는 산업체계를 위한 것으로 체계는 광고를 통해 사회의 목표를 자신의 이익 쪽으로 유도하고, 자기 자신의 목표를 사회 전체의 목표로 강요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인 모든 정보가 대중매체라는 매개물에 의해 신문의 3면 기사라는 완전히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인 기호로 환원되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기호에 의해 보호받으며, 현실을 부정하면서 살고 있으며 이러한 일상성의 수동성으로부터 나오는 죄의식을 또한 대중매체의 극적인 드라마화의 조작을 통해 제거된다. 일상생활의 수동성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외부세계의 폭력과 비인간성이 필요하게 되며 그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 사고의 화제이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생산 질서보다 사물의 기호가치에 의한 소비 질서, 대중매체의 조작에 의해 움직여지며, 지배받는다고 보드리아르는 주장한다. 또한 그는 하나의 가치체계로서 집단통합과 사회통제 기능을 하는 이러한 기호로서의 사물이 지배하는 욕망에 내맡겨진 인간은 이미 포위되고 소외되어 이물화된 세계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본다. 그가 『소비의 사회』에서 기대하고 있는 단 하나의 기호가치에 의한 변혁가능성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의 난폭한 폭발과 갑작스러운 붕괴의 가능성뿐이다. 이러한 허무주의적 냉소주의는 그가 현대 대중사회의 분석을 통해 또 다른 물신주의, 즉 기호 물신주의에 빠져드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얼핏 보면 맑스주의의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현대사회의 대중문화를 철저하게 생산의 거울을 통해 부석하는 듯하면서도 이러한 기호가치의 지배과정을 그 저변에 있는 경제적 권력이나 사회집단들을 구체화함으로써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으며, 또한 기존의 이론과 자신의 관점을 종합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대체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가 말하는 기호가치의 실체가 생산의 거울을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산의 거울을 깨부수게 되며 끝내 기호물신주의에 빠져 형이상학으로 후퇴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글은 우리의 주위에서 쉽게 대하는 현상들을 날카로운 시선과 현란한 표현들을 통해 분석, 폭로하고 있어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제공한다. 보드리아르의 기호 가치를 통한 현대 사회의 분석을 대중매체가 무엇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러한 영향력들에 수동적인 수용자세를 내면화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TV에 무심코 흘리는 우리의 시선에도, 여가를 통한 우리의 자아회복이라는 것에도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방식이 철저히 침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의 글은 무디어져가는 일상의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회복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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