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출판물 전문 서점 ‘에이커북스토어’가 전주에 문을 연지 이번 달로 딱 4년이 됐다. 책방지기 이명규 씨(33)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곳.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까지 책방을 운영해 올 수 있었다”며 그는 웃는다.
“다른 데서 몇 백만 원 벌던 사람이 책방을 운영할 수 있었겠어요?”
다른 일은 몰랐다. 오직 책방뿐이었다. 그래서 용감했고, 돌아보니 어느새 4년이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전주 시민들에게 독립 출판물의 존재를 알리고자 달려 온 4년의 시간. 그를 매료시킨 독립 출판이란 과연 무엇일까? 올해 4월 전주 객사에 새로이 자리를 잡은 에이커북스토어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오롯이 달려 온 독립 출판물 외길
전주에서 유일하게 독립 출판물‘만’을 취급하는 책방 에이커북스토어. 그 출발은 글과 사진을 사랑하는 청년 네 사람이 모여 만든 한 매거진으로부터 시작됐다.
현재 책방지기로 활동 중인 이 대표를 포함한 박지훈, 안현준, 박성호 씨 네 사람은 2013년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를 담은 매거진을 만들자는 결심을 하고, 그해 한 권의 독립 잡지를 발간했다. 여행기, 음악, 영화, 패션, 수필, 소설 등 전반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AK-ER’ 1호다.
“책을 제작했으니까 서점에 입고를 하고 싶을 거 아니에요. 그때 입고처를 찾다 독립 서점과 독립 출판에 대해 알게 됐어요. 알면 알수록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돼서 나중에는 우리들이 만든 책뿐만 아니라 다른 독립 출판물들도 판매할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2015년 12월 에이커북스토어를 열게 됐어요.”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에이커북스토어는 독립 출판물 전문 책방이긴 해도 전주 유일은 아니었다. 똑같이 독립 출판물만을 취급하는 ‘우주계란’이란 서점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에이커북스토어가 문을 열고 불과 한 달만에 갑자기 우주계란이 휴업하게 되면서 전주, 나아가서는 전북 유일의 독립 출판물 전문 책방이 됐다. 에이커북스토어가 지금까지 홀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독립 출판물만을 다뤄 온 배경엔 그런 이유도 있었던 것. 전북 유일의 독립 출판물 전문 책방이란 이명은 올해 초 익산에 ‘북메리카노’란 서점이 생길 때까지 쭉 이어졌다.
“일부러 독립 출판물을 보기 위해 찾아오시는 관광객 분들도 있어요.”
4년간의 꾸준함 덕분일까. 입소문이 퍼지면서 우리 지역뿐 아니라 먼 타지서 오는 손님들도 늘었다. 그렇게 독립 출판물에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들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이 대표 본인의 어깨도 으쓱해진다고. 그만큼 독립 출판물에 품고 있는 애정이 각별하단 뜻이리라. 더욱이 에이커북스토어에서 판매되는 책들은 전부 작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한 권, 한 권 내용을 확인한 책들이기 때문에 판매자로서 더욱 애착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보람과는 별개로 지역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것도 기성 출판사의 책이 아니라 생소하고 낯선 독립 출판물만으로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분명 만만치 않은 일이다. 책방 문을 연 첫 달엔 만 원짜리 몇 장이 수입의 전부였고,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책방 살림은 빠듯하다.
“물론 책이 잘 팔리면 좋겠죠. 하지만 전주 시민들에게 독립 출판물의 존재를 알려 오면서 스스로 재미도 많이 느꼈어요. 어느 순간부터 자주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독립 출판의 매력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렇게 함께 걸어온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독립 출판물? 그게 뭔가요?
“책방 문을 열고 처음 1년 동안은 독립 출판이 뭐냐며 사람들에게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2015년이면 전국에 독립 출판물 책방이 40곳도 없을 때였다. 지금도 생소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4년 전이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소규모 팀이나 개인이 기획부터 레이아웃, 디자인, 출간, 홍보,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에는 ISBN, 쉽게 말해 바코드 유무로 독립 출판물인지 아닌지를 판단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구분이 없어졌어요. 1인 출판 등록이 쉬워져서 바코드를 찍은 채 출간되는 독립 출판물도 많거든요.”
그 외 독립 출판물만의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생생한 날것 같은 분위기일 것이다. 전문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기성 출판사의 책보다 내용이나 문체가 훨씬 투박하고 거칠지만, 대신 그만큼 호소력이 짙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쉽다.
“다듬어지지 않은 강한 어조도 있고, 반대로 감추려고 하는 어조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정제되지 않은 문체들에 공감을 느끼는 젊은 사람들도 많아요. 또 소재에 제한이 없다 보니 개인적인 아픔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도 많거든요. 그런 솔직함이야말로 독립 출판물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차이는 여행을 소재로 한 책만 비교해 보아도 그 다름이 확연히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기성 출판사에서는 여행의 긍정적인 면만을 예찬하듯 소개하곤 하지만, 독립 출판물에선 보다 솔직하고 현실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예컨대, 기성 출판에선 다루지 않는 여행 이후의 변화들, 긍정적인 변화뿐 아니라 부정적인 변화들까지도 담담하게 담아내 독자들에게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기도 한다.
“최근 변화한 여건들도 독립 출판물 출간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데 일조하고 있어요. 1차적으로 인쇄 장벽이 낮아져 누구나 쉽게 책 제작에 도전할 수 있게 됐고, 출판에 대한 인식도 과거에 비해 많이 가벼워졌거든요. 전에는 기성 출판사에 글을 투고해 출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에는 책 제작 워크숍 등을 통해 스스로 책을 내는 방법도 많이 공유되고 있어요.”
에이커북스토어의 최종 목표는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독립 출판 인식의 확산이다. 그를 통해 전주 시민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추후엔 북마켓을 열어 보고 싶어요. 시에서 주관하는 독서대전을 제외하면 책만으로 이뤄진 마켓은 전주에 없거든요. 이러한 마켓을 통해 전주 시민들이 독립 출판물에 대해 알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해요.”_글 이동혁 기자
-이명규 에이커북스토어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독립 출판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망가진 대로 괜찮잖아요
“우울증 수기집이에요. 2016년 독립 출판물로 나온 책인데, 이 책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작가 분이 이 책을 내기 위해 많은 기성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는데, 번번이 거절을 당했대요.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우울증이란 병의 이미지가 너무 부정적이기도 했고, 겉으로 표출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거든요. 그래도 작가 분이 꼭 책을 내고 싶은 마음에 결국 독립 출판물로 출판을 하게 됐는데, 책을 내고 보니 반응이 폭발적인 거예요. 이렇게 되니 처음 거절을 했던 기성 출판사들에서도 하나둘 우울증 관련 책들을 내기 시작했어요. 기성 출판사가 독립 출판물을 따라하는 역행을 보여 준 거죠. 독립 출판물을 대표하는 책 중 하나입니다.
‘망가진 대로 괜찮잖아요’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에서 특히 반응이 좋았던 네 번째 장을 따로 묶은 후속작이에요. 영화의 대사, 시나 소설의 문구, 노래 가사 등 자신에게 위로가 됐던 문장들을 우울증과 연결해 소개하는 책이에요.”
경찰관 속으로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책인데, 이것처럼 직업을 주제로 한 책은 독립 출판계에서도 무척 희귀한 케이스로 꼽혀요. 여경이 쓴 책인데, 현직 경찰이나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이 사가는 책이에요. 내용은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경찰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근무하면서 느낀 이미지의 차이를 다루고 있어요. 경찰이란 직업에 익숙해질수록 사건에 대해서 무덤덤해지고 무감정해져 가는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서 언니에게 편지를 쓰듯이 쓴 글들을 모아 만든 책이에요.”
도박중독자, 나의 오빠
“도박중독자 오빠를 둔 쌍둥이 동생이 쓴 책이에요. 처음 1부에선 도박중독자 오빠를 곁에 두고 있는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2부에서는 오빠가 치료를 받으면서 어떻게 회복되어 갔는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이 책 같은 경우에도 도박중독자가 책을 낸 경우는 많은데, 도박중독자의 옆에 있는 사람이 책을 낸 경우는 기성 출판에 별로 없거든요. 독립 출판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책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