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전염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국의 모든 도시들이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 원도심 공동화와 쇠퇴, 특색 없이 일률적으로 조성된 도시 풍경, 고령화와 인구 유출 등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똑같은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도시 간 불균형 성장에 뒤처져 낙후된 지역들은 이른바 재개발을 통해 도시 부흥을 꿈꿨지만, 돌아온 것은 위에서 언급한 부작용들뿐이었다. 물리적 개발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고, 각 도시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 사회적 특성들도 사라졌다. 어디 그뿐인가. 재개발은 원주민의 삶을 파괴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까지 불러왔다.
재개발이 더 이상 도시의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여기저기서 불거지기 시작한 이때, 새로운 대안으로 경제적 성장 대신 삶의 질을 추구하는 도시재생이 각광을 받게 됐다. 정부의 국책 사업인 뉴딜 정책과 맞물려 많은 지자체들이 선진지 도시재생 사례를 참고하며 앞다퉈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도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는 만능약처럼 보였던 도시재생도 실상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재생의 문제라기보단 추진 과정에서 적절한 접근 방식과 고민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흔히 도시재생에 정답은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 말만이 정답일 것이다. 실패한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성공 예들을 벤치마킹했다지만, 실질적인 성공 요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고 지역에 대한 맞춤식 전략, 종합적인 관점이 부족했다. 이처럼 도시재생은 낙후 지역이나 대상 공간의 특성을 적절히 발굴해 각 지역과 공간에 걸맞은 재생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우리 지역 도시재생의 길을 함께 논의해 보고자 지난 12월 4일 사회적기업 마당은 ‘2019 도시재생 집담회’를 개최했다. 일선에서 활동 중인 전주, 김제, 부안 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의 현황과 고민을 풀어놓았다.
| 발 제 | 조준배 전주시 주거재생 총괄단장
| 참가자 | 고남수 전주 서학동예술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
| 김민준 김제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 소영식 전주 원도심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
| 이경진 전주 용머리여의주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
| 정재진 전주도시혁신센터 팀장
| 한승헌 부안군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 일 시 | 2019년 12월 4일 (수) 오후 5시
| 장 소 |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
| 진 행 | 이동혁 기자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 시점이 중요
집담회 발제를 맡은 조준배 전주시 주거재생 총괄단장은 먼저 정부 국책 사업인 뉴딜 사업의 개요를 설명하며 그 한계점을 지적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도시재생기획처장으로 근무하며 재생 사업 모델을 만드는 일을 4년간 해 왔는데, 이 모델이 뉴딜 사업의 원형이 됐습니다. 즉,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한 일인데, 이게 정부 사업의 모델이 된 거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한계는 수도권까지는 어느 정도 사업성을 보장하지만, 그 외 지방 도시에선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개발 협력의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소규모 정비 사업에선 한계점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뉴딜 사업이 이전의 재생 사업과 차별화를 두려 했던 게 주민이 체감하는 주택을 직접 건드리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잘 되지 않았죠.”
조 단장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행정의 다양한 사업들을 연계하고 통합하는 패키지 추진 방식을 강조했다. 현재 그가 전주시에서 펼치고 있는 일이다. 각 과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사업들을 한데 모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내는 것. 생활 SOC도 단순히 서비스 시설을 짓는 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생활권의 균형 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큰 틀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대부분의 도시들이 똑같습니다. 외곽 개발이 이뤄지면 시청과 역사가 이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인구가 이동을 하게 되겠죠. 그 다음 또 바깥이 개발되면 다시 인구가 그쪽으로 몰리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정책이 일관성을 갖지 못하면 아무리 재생 사업을 벌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바깥 개발이 이뤄지는 순간 전부 허사가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도시재생을 큰 틀에서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잘 묶고 연계하고 배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일부 지역이 아니라 전체의 입장에서 도시를 바라봐야 하고, 세 번째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그것을 총괄할 수 있는 조직 체계가 필요합니다. 끝으로 개별 사업의 기획을 직접적으로 도와주고 강화하는 것, 생활 SOC나 거점을 만들 때, 그곳을 누가 관리하고 운영할지, 또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할지 그런 기획의 절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거시적 관점의 재생은 각 지역의 특징을 부각시킨 거점 개발에도 용이하게 적용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실태 조사를 통해 녹지가 몰린 곳은 녹지 거점으로, 예술 기반이 충실한 곳은 문화 향유의 거점으로 조성하는 식이다. 대단히 명쾌한 방법이지만, 도시 내 일부 지역에만 예산이 할당되는 뉴딜 사업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재생 지역이 광범위해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지원 면적을 줄였지만, 그 과정에서 선정 지역의 숫자를 늘리는 형식이 됐고, 이것을 다시 전국 지자체로 나누다 보니 마을이나 동 단위의 소규모 사업밖에 펼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조 단장은 이러한 소규모 사업들을 한데 묶어 각 거점들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 단위의 생활 SOC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활 SOC가 한 동네 안에 조성될 수는 없습니다. A 동네와 B 동네가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무엇인지 공유해야 한다는 거죠. 뉴딜 사업 선정 지역 내에서만 고민하지 말고 외부와 어떻게 연계하고 공유할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지역 도시재생의 현재
김민준 김제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이하 김민준) : 작년 하반기에 뉴딜 사업에 선정돼 올해 타당성 평가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아직 통과가 되지 않아 물리적인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은 전혀 추진을 못하고 있습니다. 성산지구 현장 같은 경우에는 새뜰마을 사업이 기존에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현재 김제시가 선정된 뉴딜 사업은 두 가지로, 요촌동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성산지구 일반근린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다. 지난해와 올해 말 각각 선정됐지만, 요촌과 성산이 인접한 까닭에 조정 중에 있다고 한다.
김민준 _센터적 차원에서 가능한 사업들, 지역 역량 강화 사업이라고 해서 우리 주민들의 문화예술 협의체를 발굴하고 거기서 이뤄지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사업, 장터라던가 선진지 답사 같은 활동들을 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발제 내용을 김제시에 적용시키기에는 아직 먼 단계라서 추후에라도 받아들일 부분은 충분히 반영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닦는 일이 먼저 선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정재진 전주도시혁신센터 팀장(이하 정재진) : 전주는 원도심, 서학동, 용머리, 전주역 등 네 곳에서 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새뜰 사업도 팔복동 산업단지 인근 추천대교마을, 교동 승암마을, 진북동·중화산동 도토리마을 등 세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도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사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 편이죠. 조준배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지역재생, 이런 틀이 필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재생 사업으로만 도시를 활성화시키기에는 전주가 너무 큽니다. 잘 해야 1년에 한두 개 사업인데, 그것만으로는 무리가 있습니다.
원도심 같은 경우는 2020년이 마무리 단계인데, 공간 매입 등이 순차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전주 시민 역량 강화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남수 전주 서학동예술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이하 고남수) : 서학동은 2017년 12월에 선정됐고, 2018년 1년 동안 활성화 계획을 수립하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하면, 활성화 계획을 너무 단기간에 요구하는 일이 있어서 주민들의 의견 수렴이나 협의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과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정당성에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새롭게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계획이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는 있겠지만, 서학동의 경우는 그 갭이 아주 큽니다.
다행인 것은 주민들이 뉴딜 사업 전에 진행했던 사업이 있어서 관심이 아주 높고, 주민협의체에서도 열띤 토론이 이뤄지고 있단 점입니다. 그만큼 재생 사업에 애정을 품고 있고, 예산을 허투루 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거죠. 다만, 도시재생 가이드라인엔 주민협의체와 사업추진협의회 두 가지 체계가 있는데, 서학동의 경우는 주민협의체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 추진에 관한 결정들을 할 때 그 안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사업추진협의회를 운영하려면 최소 2~3개월은 더 시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전주시 차원의 도시재생 계획들이 있지만, 사실 공모 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면 그대로 사장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뉴딜 사업이나 공모 사업에 너무 치중하지 말고, 마을 계획이나 공동체 사업과 연계시켜서 지역에 맞는 사업들을 꾸준히 추진해 가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영식 전주 원도심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이하 소영식) : 전주시 외곽 개발이 진행되면 될수록 원도심의 가치나 의미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신시가지를 전주의 대표적인 기억이나 추억의 공간으로 볼 수 없는 것처럼 개발이 진행될수록 원도심에 쌓인 역사와 깊이가 더욱 두드러지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원도심 활성화는 상권 회복만이 목표여서는 안 될 겁니다.
현재 원도심 센터에서는 수공예 거점공간, 공공미술디자인 그라운드, 에너지 센터, 영화 네트워크 거점공간 등 8~9개의 다양한 공간과 주체를 만들어 냈고, 또 그 주체들이 자기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서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원도심에 인재들이 모이고 새로운 문화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원도심 재생 사업이 끝난 뒤에도 이것들이 지속돼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공간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또 중요한 과정이 원도심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해 왔던 사업들을 관에 이양하는 겁니다. 그리고 5년, 10년 정책들을 어떻게 입안할지 모니터링 연구를 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관이 원도심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에 대한 제안까지 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경진 전주 용머리여의주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이하 이경진) : 용머리여의주마을 센터에선 우리동네살리기형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상 지역의 약 30%가 공·폐가인데, 가능한 매입하여 공공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입니다. 매입된 부지에는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들어설 예정이고, 사업이 끝난 뒤에도 시설이 자생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운영비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매주 한번씩 정기 회의를 진행하는데, 주민협의회 총 15명 중 12명 정도가 항상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관심을 가져 주고 있습니다. 현재 여섯 개 분과가 활동하고 있고, 홍보 분과의 경우 처음 두 명이서 시작했다가 지금은 네 명으로 늘어 2주에 한번씩 소식지를 내고 있습니다. EM 교육은 40여 차례 진행이 됐는데, 호응이 아주 좋습니다. 사업이 끝난 뒤에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며 열 명 정도가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복지 분과에서 독거노인을 중심으로 점심을 대접하는 응원의 밥집을 월 1회 운영하고 있고, 공·폐가의 쓰레기를 함께 치우는 용머리 세수하는 날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 진행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빈집 매입입니다. 주인도 찾기 힘든 조그만 필지들이 얽혀 있는 땅을 강제 수용 없이 매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빈집 특례법을 통하면 강제 수용이 가능하지만, 이것도 자치단체장이 관리 시설로 지정할 때만 가능해서 실효성이 없습니다. 이런 지점이 현재 저희가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입니다.
한승헌 부안군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이하 한승헌) : 부안의 경우 군 내에 산과 들, 바다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어촌 뉴딜 사업과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농어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식도항과 대리항이라 해서 어촌 뉴딜 사업에 선정됐고, 추가 지역 공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경우 두 군데서 진행이 되고 있고, 도시재생 사업은 지난해 부안군청 앞이 일반근린형 사업 지역으로 선정이 됐습니다. 현재는 중심 시가지형 사업도 준비 중이며, 이와 함께 지역 현장센터가 12월 출범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업에 대한 부분이고, 도시의 밸런스에 대해 고민해 본다면, 부안은 확실하게 소멸할 예정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도시 발전 계획에 대한 비전이 있겠지만, 특별한 호재가 없는 이상 인구가 늘어나기는 어렵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전주나 인근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안은 중심 지역을 어떻게 잘 정비하여 주민들의 편익을 증대시킬 수 있을지 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도시가 확실히 커지지는 않겠지만, 남아 계신 분들이 대도시와 동등한 삶의 질을 누리실 수 있도록 주거와 생활 편익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자체가 이렇게 중소 규모로 가다 보니 자체적인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렵고 마중물 사업에만 기대고 있다는 겁니다. 마중물 사업은 말 그대로 마중물이기 때문에 사업이 끝난 5년, 10년 뒤 어떻게 자체적인 기반을 마련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