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건 文化는 발전과 향상에의 의지의 결집체이며 그 의지의 반영된 모습으로 대표될 수 있다.
따라서 文化는 정체될 수 없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변화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변화가 수반될 때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文化의 중심을 이어가는 藝術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물론 전통문화나 전통예술의 보존과 계승의 의미에서 본다면 변화나 발전의 의미는 별개의 것이 돼버리고 말지만 엄격한 입장에서의 文化나 藝術은 분명 창의성이 있어야 하고 창조성이 강조되어야 하며 이 시대에 맞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제26회 全羅藝術祭를 대하면서 향상의지의 결집체로서 文化, 또는 藝術에 대한 개념이 더욱 강하게 와 닿음은 바로 그런 점에서 볼 때 새삼스런 일은 결코 아니다.
全北예술의 가장 큰 잔치로 꼽히는 全羅藝術祭가 금년으로 스물여섯돌을 맞았다. 지난 10월 20일부터 26일가지 엿새동안 베풀어진 26회 全羅藝術祭는 성년을 훌쩍 넘긴 연륜에 걸맞는 「지방시대를 여는 성숙한 문화예술」을 주제로 내걸었고 참신한 기획과 새로운 구성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했다.
전북예술의 진정한 발전방향 모색 가능성 보여준 문화심포지엄.
23일 하오2시 전북예술회관회의실에서 열린 문화심포지엄은 「지방시대의 지역문화예술」을 주제로 한 자리였다.
李奉變藝總 全北道支會長의 발제로 시작된 이날 심포지엄은 全州大 李基班교수가 주제 발표를 맡았고 음악협회전북 지부 朴鍾義지부장, 全州又石大 文成奎 교수(신문방송학), 全州KBS 문화담당 李宰 기자가 토론자로 나섰다.
발제자인 李지회장은 「민족문화에서 본 文化의 個와 和」란 논지를 통해 오늘날의 상황에선 서울에 존재하는 문화와 경제, 정치, 그리고 더 광범한 가치관과 도덕성이 국가와 민족을 배경으로 한 대표성을 지니고 또 그렇게 통용되고 있다고 전제, 이런 점에서 중앙의 예술문화는 각 지역의 문화예술이 합쳐진 和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全北의 문화예술의 육성방안을 중심으로 제시한 李교수는 지방예술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선 그 지방의 독창적인 예술문화가 잘 보존되고 육성 발전돼야 한다며 이런 점에서 볼 때 전북의 경우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고유의 전통예술을 중점적으로 발굴, 접목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얻어진 공통된 논지는 文化의 지역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 지역마다의 독자성 확대로 보편적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뜻을 모은 이번 심포지엄은 시도라는 의미는 크게 부각됐으나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예술인들의 미온적 태도로 많은 아쉬움을 남긴 자리로 평가되었다.
10개 예술단체가 펼친 책임 있는 무대와 책임 없는 무대
全羅藝術祭의 주관을 맡고 있는 예총산하 10개 협회에 있어선 1년에 한 번씩 갖는 이 자리가 가장 폭넓은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고 각 부문의 오늘이 한꺼번에 보여질 수 있는 가장 큰 축제 마당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금년에도 이들 10개 협회가 정성으로 모아놓은 행사는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예년과 달리 새로운 기획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킨 부문은 文人協會가 마련한 전북문인작품 전시회였다. 85년 말 全北文人의 통합체로서 새로운 출범을 한 文人協會의 이번 문인작품 전시회는 그 자체로서 갖는 의미 이외에도 文人들의 지배적인 관심이 반영된 자리로서의 가치를 부여한 자리였다.
全北 문단의 맥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의미로 많은 관람객을 동원했던 이번 작품집전시회는 그러나 원래의 취지에 부합되는 철저한 기획력이 미치지 못한 탓에 단순히 전시하는 이상의 결실은 맺지 못했다. 개인별 작품집이나 동인지의 분류, 시기별 분류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인작품 전시회가 全羅藝術祭의 수확으로 꼽히는 것은 文香깊은 全北의 맥을 정리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온 국악협회의 경우 판소리, 민요, 기악연주와 창극「사도세자」를 올렸으나 새로움이나 기획력이 전혀 없는 단골 프로그램으로 식상을 안겨 주었다. 특히「사도세자」의 경우는 85년 전라예술제 무대에서 공연되었던 작품으로 세트까지도 똑같은 형태에서 재탕됨으로서 발전 없는 국악무대에 대한 수준이 거론되기도 했다. 물론 이 지방 국악인들은 실기능력면에서 탁월한 자질을 갖추고 있어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무대를 펼칠 수 있지만 오늘의 국악마당이 한결같이 즉흥적이고 또 흥위주로만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모아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1회용 행사로 치러져온 국악무대로서는 관객들이 재미 이상의 감동을 얻기 힘들고 국악인 스스로도 너무 안일해져 향상을 위한 연구나, 또는 그런 의식을 갖기에는 자극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선 현재 우리 전북 국악계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로 꼽힐 수 있는 것이 우리 국악의 전통적이니 예술성이 오늘에 제대로 접목될 수 있는 발판의 不在다. 이를테면 많은 실기인들의 능력과 자질이 더욱 풍부하게 발휘되고 젊은 세대들의 감각에도 이어질 수 있는 창조성과 기획력이 갖춰져야 국악실기인과 젊은 세대들의 대화가 단절된 채 함께 설 수 있는 무대는 요원하기 만한 실정이다.
영화인협회나 연예인협회는 해마다 마련해온 행사로 전라예술제를 맞았다. 영화협회의 경우, 87년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품 「씨받이」를 무료상여, 예술제 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맞는 상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해마다 아쉬움을 주는 것은 단순히 영화 한편 상영하는 것으로 대치돼 버리는 영화협회의 소극적인 활동이다. 흘러간 영화나 우수작을 선정, 무료상연 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날 영화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도 영화에 대한 독자들의 감상을 도울 수 있는 강좌라든지 소형영화제작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단의 문화운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연예협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방 연예인들이 긍지를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의 권위를 되찾는 성의가 필요하다.
미술협회는 금년에도 회원전을 통한 이 지방 미술인들의 축제를 펼쳤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회원전에의 인식은 출품자와 감상자의 입장이 너무도 큰 폭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감상자(즉 미술 애호인들) 측에서는 단체전이나 연립전 등을 통해 이 지방 미술의 오늘을 가늠해 보려는 성향이 강한데 반해 실제로 참여자의 의식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를테면 단체라는 공동체의식이 참여자들에겐 책임의식의 정도를 오히려 약하게 해버리는 아이러니컬한 모순을 낳게되고 그로 인해 미술인들의 대표 잔치는 개개인의 역량이나 특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참여라는 의미만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금년 미협전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화 23명, 서양화 43명, 서예 25명, 디자인 1명, 공예 1명, 조각 3명 등 96명 작가의 참여로 이루어진 작품전이 과연 이 지방 미술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기 마련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과연 이 자리를 통해 한 점 내고 마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던 작가는 얼마나 되었겠느냐는 것이다.
연극협회는 전주시립극단의 초청공연과 극단 황토의 야외 마당공연, 제5회 전국지방 연극제(지난 5월 全州에서 열렸다)의 전 과정 사진작품 전시회등 비교적 다양한 행사를 베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협회의 무대가 의미를 못 얻은 이유는, 공연장이나 야외무대 공연무대가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성의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사진작품전을 통한 무대예술과 영상예술의 만남을 시도, 인접예술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능성을 보여줬던 것이다.
사진협회는 연례행사로 마련하는 전국사진공모전과 회원전을 열었다. 사진인구의 저변확대에 못지 않게 영상예술의 성숙도 기대할 만한 연륜을 갖고 있는 사진분야의 경우에는 보다 새로운 시도의 작품들을 대할 수 있는 회원전으로 끌어가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음악협회는 금년 모처럼 만에 돋보이는 무대를 구성했다. 그 동안 협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대학의 음악인들이 금년 초 새로운 의욕으로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가진 이번 음악회에선 교향 취주악과 성악, 기악이 다채롭게 펼쳐졌으며 특히 群山시립합창단의 초청은 음악협회의 폭넓은 활동의 수용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전라예술제의 가장 큰 결실은 무용협회의 열정과 의욕이 모아진 무대로 단연 꼽을 수 있다. 전라예술제의 피날레를 장식한 무용협회의 무대는 예년보다 훨씬 성숙되고 성의 있는 기획과 의욕이 돋보였다. 이 지방 무용인들이 모두 참여, 오늘의 전북무용실체를 보여 주기에 충분했던 자리로 평가된 이번 무용제를 위해 중견무용인과 신인들이 한마음이 되어 임했던 준비기간 동안의 땀방울은 가장 멋진 피날레를 장식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한.
전라예술제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
한 지역의 문화예술은 다분히 독창적인 의미가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지역 문화예술을 펼쳐 보이는 자리는 「어떻게 보여야 하느냐」보다는「무엇을 보여야 하는가」가 우선돼야 한다.
全羅藝術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5년의 긴 연륜을 이어오면서도 항상 1회용 행사치례식의 축제 마당으로 그치고 말았던 것은 「무엇」보다「어떻게」에 더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한 예술인은 이를 두고 「전라예술제는 독창적인 성격이 없다」는 말로 규정했다.
예총이 주최가 되고 각 예술협회가 주관으로 1년을 결산하는 전라예술제는 발표의 장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실체와 내일의 가능성이 보여질 수 있는 축제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우선 예술인들의 참여폭이 갖추어져야 하며, 책임 있는 무대와 관객들의 관심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전라예술제는 이러한 조건들과는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지방 예술인들의 대표적 자리로 꼽히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全州 지역의 무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예술인 스스로가 전라예술제에 부여하는 가치도가 너무도 낮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요건이 될 수 있는 참여도의 문제는 사실상 각 협회의 구성과 역할 면에서 재고돼야 하는데 이런 점은 藝總의 불합리한 체계에서부터 논의돼야 할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협회 회원들만의 자리로 이끌어 가면서 참여폭을 넓힌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따라서 보다 좋은 방법은 예총을 중심으로 한 폭넓은 기획력의 창출이다. 全北예총이 道를 대표하는 단체일 수 있으려면 全州를 중심으로 한 각 시군의 예술활동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예술제의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이 시군 예총의 참여를 유도치 못한 점이다. 각 협회의 충실한 무대를 바탕으로 하면서 각 시군 예술문화의 독창성을 함께 펼쳐낼 수 있는 기획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이 점말고도 全羅藝術祭는 갖추어 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
그 중에서도 우선되어야 할 것은 진정한 全北 예술의 실체가 보여질 수 있는 독창성을 지닌 자리로 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향상 의지와 내일에의 가능성이 보여지지 못하는 축제는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성년을 훨씬 넘긴 全羅藝術祭는 발표의 場에서 벗어나 이 지방 문화예술의 뿌리깊은 전통을 되찾아 오늘에 접목하는 일단의 변혁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