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이라는 것은, 우리와는 먼 이야기, 특별한 날 TV에서나 만나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지역에서 마술로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해보겠다며 괴짜의 삶을 사는 이가 있으니 마술사 문태현(35)이다. 그의 마술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마술사 문태현을 소개한다면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마술디렉터’입니다. 마술을 만드는 사람이지요. 저만의 마술 작품, 창작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마술 공연도 하고, 마술사들을 교육하기도 합니다. 마술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있어도, 모두가 마술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 본인이 평가하는 문태현은 어떤 사람인가요?
“남들과 다른 삶을 추구합니다. 남들이 안 가는 길, 남들이 아니라고 하는 길을 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오히려 그런 길들이 더 쉽게 느껴지고는 했습니다. 지나온 시절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 마술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친구가 손안에 있던 화장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마술을 보여주었습니다. 너무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지만, 친구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궁금해 미칠 것 같았습니다. 혼자 알아내기에는 너무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점에 가서 마술 관련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방법을 알고 보니 생각보다 간단한 마술이었습니다.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책을 보고 여러 마술을 연습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모두들 신기해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술이 취미가 되었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재미있어할까를 혼자 고민해보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는데, ‘제프 맥브라이드’라는 마술사가 나와서 카드 마술을 보여주었습니다. 완전 신기했습니다. 제가 책에서 보았던 마술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너무 멋진 모습을 보고 결심했습니다. 마술사가 되겠다고.”
- 마술사로 결심한 이후에는 어떻게 준비를 하였나요?
“당시 국내 마술사들의 수준은,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제프 맥브라이드’의 마술을 경험한 저로서는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책을 사서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그러던 중 3시절 무대마술 관련 책을 발견하고 열심히 따라 해보았습니다. 구할 수 있는 비디오도 구해가며 마술사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고교 진학 후 1학년,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데 ‘아 이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학업이 내 꿈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린 후, 어머니에게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깜짝 놀라셨습니다. 당연히 충격이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행히 1주일 후 어머니께서 직접 자퇴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아마도 저를 믿으셨던 것 같습니다. 학업은 검정고시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고, 남는 시간은 마술사의 꿈을 위해 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친구 집에 얹혀살며, 마술 관련 자료도 찾고, 동호회 활동 등을 시작하였습니다.
- 서울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요?
“서울만 가면 잘 하는 마술사를 만나 손쉽게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대단한 착각이었습니다. 여러 모임에 가보고 저의 마술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들 자신들보다 잘 한다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모임도 소개해주고, 저는 점점 유명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국내 최고 마술사인 이은결, 최현우 마술사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로부터 국제대회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2003년 국내대회인 레크매직마술대회에 첫 출전을 하게 됩니다. 당시 저는 18살에 지방 출신, 스승도 없는 무명 마술사였습니다. 그냥 경험을 쌓기 위해 출전하였지만, 놀랍게도 3위에 입상하게 되었습니다. 3등보다는 국제대회 출전권을 획득한 것이 더 기쁜 일이었습니다. 이듬해인 2004년 한국과 일본의 연합국제대회인 코리아컵국제마술대회에 출전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무대마술과 특별상 부문 2관왕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6개국이 출전하는 대한민국국제마술대회에 출전 2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예상과는 달리 짧은 시간에 여러 성과를 이루게 되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승승장구하던 마술사 문태현, 뜻밖의 깨달음을 얻게 된 후, 그의 마술 세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눈에 보이는 마술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술, 마술디렉터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 마술디렉터의 삶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2004년 일본국제마술대회에 참가하였는데, 3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술사를 하겠다고 서울에 갔는데, 몇 차례 수상을 하다 보니, 저는 이미 유명 마술사가 되어있었습니다. 국제대회에 처음 데뷔한 2004년 19살 가장 어린 마술사였는데, 최다 수상이라는 영광을 얻고는 더 이상 목표가 없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원했던 마술사였지만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알게 된 일본 마술사분이 계셨는데, 그의 마술에는 애틋한 무엇인가가 느껴졌습니다. 직접 만나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연기자일 뿐. 이 마술을 만들어주는 사람, 마술디렉터는 따로 있어요’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마술은 굉장히 전문적인 기술이지만, 기술로만 인정받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단순히 기술을 배우고 공연만 하는 것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 자신만의 ‘사상’을 담아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은 ‘마술’이 아니라 ‘예술’일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마술사가 아닌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은 어떠할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려 19살에.”
- 예술가의 삶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예술가로 살아가겠다 결심한 이후에는 저만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작품, 연극 같은 스토리가 있는 마술 작품 ‘스토리매직’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광대’를 주제로 슬픔이 있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마술’과 ‘슬픔’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고, 제 스스로 정서적인 부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 그렇다면 마술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마술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보여주는 일입니다. 가짜일 수는 있으나,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는 것,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상과학 영화를 보고 새로운 상상을 하고 그게 새로운 제품의 개발에 원동력이 될 수 있듯이 마술이 전달하는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것들이 나오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들에게는 희망일 수 있습니다.”
-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군산에 정착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광주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6살 이후 살아온 곳이 군산입니다. 제 고향이지요. 8-9년 서울에서 생활하며, 제자도 육성하고 공연도 많이 하고 나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께서 결혼하면 같이 살기 힘들 것 같으니, 결혼하기 전에라도 같이 살자고 제안해오셨습니다. 너무 간곡하게 말씀하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 말 군산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 군산에서의 활동은 어떠셨나요?
“2010년 사업체를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제 생각과 달리 현실은 매우 암담하였습니다. 군산은 마술의 불모지였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현금 10만원을 기반으로 PC방에 가서 공연 제안서를 만들어 지역 이벤트 회사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몇 곳에서 연락이 왔지만, 입장이 너무 다르고 개런티도 많이 차이가 났습니다. 지역 행사 등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발주처의 갑질은 물론 너무 낮은 개런티 등에 상처를 받고는 제가 직접 관객을 만들어서 공연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곳을 알아보다, 군산 청소년수련원과 연락이 닿았는데, 예산이 조금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직판타지’라는 1시간 분량의 마술 콘서트를 함께 준비하였습니다. 홍보할 방법을 몰라 포스터를 예쁘게 만들어 군산시내 곳곳에 직접 붙이고 다녔습니다. 총 2회 공연을 했는데, 1만원이라는 티켓 가격이 어떨까 싶었지만, 다행히 전석 매진이라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 이후에는 어떤 공연을 하셨나요?
“매직판타지 이후 자신감이 생겨서 여러 마술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작이 초근접마술인 ‘1미터 마술’입니다. 당시 공연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는데, 개복동에 있던 월 5만원짜리 사무실에서 고민만 하다가 그냥 이 좁은 사무실에서 해보면 어떨지 물어보았는데, 주변 분들의 반응은 모두 반대였습니다. 비좁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하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히려 오기가 생겨, 아는 분의 생일 파티를 좁은 사무실에서 직접 해보았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15명 정원의 1만 5천원 관람료인 ‘1미터 마술’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시고, 매진도 종종 되고 있으며, 인터파크 등에 티켓도 판매하면서 벌써 5년째 진행 중에 있습니다.”
- 고향인 군산에서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요?
“고향인 군산에서 국제공연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군산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데 제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군산에 마술연구소를 만들어 지속적인 연구를 해보고도 싶습니다. 제자들도 육성하고 저 스스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담아서 도전한다면, 어디에서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시절 쉽지만은 않았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열심히 하다 보면, 쉬운 길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 마술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마술을 다른 분들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제 아이가 학교에 서 아빠가 마술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마술사가 되고 싶으며, 그 길에 여러 후배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어린 나이에 본인의 꿈인 마술을 위해 많은 것을 불태웠던 마술사 문태현,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갖게 하겠다는 그의 발칙한 상상이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고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통해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술디렉터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본다.
홍현종_편집위원, JTV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