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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 | 인터뷰 [인터뷰]
자연과 상생하는 건강한 먹거리의 가치
전지선 밀가원 대표
이동혁(2020-03-06 11:29:52)


언뜻 보면 호방하고 즉흥적인 기분파.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전지선 대표가 만드는 빵에 대해서 알 때 그의 삶도 더욱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드러난다. 대표 본인도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의 방식과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닮았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그에게 빵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담긴 매개체다. 무엇이 건강한 삶인가. 순창 인계면 쌍암마을에 위치한 밀가원, 향긋한 빵내음 가득한 그곳에서 전지선 대표를 만났다.


널리 사용되는 이스트 대신 천연 발효종인 ‘사워도’를 사용하고, 값싼 수입밀 대신 건강한 우리밀을 고집하며 빵을 만드는 전 대표.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수고, 돈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이 방식을 고수하는 데엔 천연 발효종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워도 빵에는 있지만, 이스트 빵에는 없는 이것, 바로 유산균이다. 영양분의 체내 흡수율을 높이고, 각종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유산균의 효능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사실들이다. 하지만 전 대표가 사워도 빵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빠름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느림의 가치를 보여 주는 빵이에요. 발효되는 시간도 굉장히 길고, 손쉽지 않은 방법이라서 시골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특히 깜빠뉴라는 빵이 참 소박하고 투박한데, 직역하면 시골 빵이란 뜻이에요. 그만큼 단순해서 많은 재료를 필요로 하지도 않아요. 들어가는 재료가 밀가루, 발효종, 소금, 물 이렇게 네 가지예요. 재료가 적다 보니 이 네 가지 재료에 굉장히 충실해야 돼요.”


그 소박함이 서울의 번잡함이 싫어 시골로 내려 왔다는 전 대표의 가치관과 참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적은 재료가 들어가는 만큼 하나하나의 재료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 우리네 삶에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수많은 인간 관계, 업무, 계획에 치이며 사는 동안 우리는 과연 그 모든 일들에 충실했을까. 너무 복잡한 삶을 살아 왔던 것은 아닐까.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욱 모든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삶.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를 그가 만드는 빵을 통해서 한 번 더 곱씹는다.


“도시에서 살면서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비좁은 공간에서 아이들도 뛰어놀지 못하고 돈의 구속을 너무 많이 받고. 그런 구조 속에서 사는 것 자체가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이 없으면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도시에서의 삶. 물론 시골이라 해서 돈으로부터 자유롭겠냐마는 적어도 돈 이외의 가치를 생각하고 추구할 수 있는 여유가 시골에는 있다고 전 대표는 말한다. NGO 단체에서 일을 했던 남편 덕분에 귀농, 귀촌 관련 공동체를 접하고, 그 특유의 즉흥성까지 더해져 시골로 내려올 결심을 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귀농이라는 큰 결단을 내리고 내려온 시골. 사실 순창이 첫 귀농지는 아니었다. 남편의 후배 중에 영광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어 그곳에서 첫 귀농 생활을 접하고, 이후 담양을 거쳐 순창까지 오게 됐다고. 그중 가장 살기 좋고 마음 편했던 곳이 순창이라고 하니 어지간히 이곳 물이 몸에 맞는 모양이다. 사람들의 순박한 정서도 마음에 쏙 들었다며 순창의 순(淳) 자 덕분인 것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던지는데 제법 그럴 듯하게 들리는 점이 또 재미있다.


전 대표는 음식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말한다.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에 따라서 음식이 다 달라진다는 것. 부정적인 마음을 담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음식이 그 마음을 알아챈단다. 그래서일까. 그는 빵을 만들 때 인간뿐 아니라 생명 있는 다른 모든 것들도 함께 아우르는 건강한 마음을 담으려 노력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도 살 수 있는 것들을 해야죠. 화학 비료 같은 것들을 많이 쓰면 땅이 살 수 없게 돼요. 그리고 그렇게 뿌려진 화학 비료 성분들이 다 어디로 가겠어요. 결국 우리한테 되돌아오겠죠. 다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더 다 같이 살 수 있는 먹거리를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수입밀에는 글리포세이트라는 제초제가 다량 사용된다. 단순히 사용되는 수준이 아니라 수확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추수 직전에 뿌려지기 때문에 잔류량 역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글리포세이트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마트에 갈 때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수입밀을 바구니에 담곤 한다. 수입밀이 우리밀에 비해 약 3배 가까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것들은 먹으면 안 돼요. 그런데도 다들 저렴하다는 이유로 수입밀을 소비하죠. 그런 모습과 건강한 먹거리를 유기적으로 계속 연관지어서 고민하다 보니까 결국 자연과 상생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된 거예요.”


그가 말하는 상생은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인지도 모른다. 이미 인간의 이기로 병든 자연은 그 밑바닥을 서서히 내보이고 있다. 도시에 사는 이들은 느끼기 어렵겠지만,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는 해가 다르게 자연의 이치를 바꿔 놓고 있다. 한겨울에도 온화한 기후가 이어지며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깬다거나 당연히 비가 내려야 할 장마철엔 불볕더위만 이어져 논바닥이 메마르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약 30년 뒤에는 물 부족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자연과 맞닿은 농촌이기에 전 대표 역시 그런 변화들이 더욱 피부로 체감된다고 한다.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직접 밀밭을 일구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 담긴 상생의 가치가 눈부시다.


순창에서 5년, 영광과 담양에서 보낸 시간들까지 합하면 도합 10년에 달하는 귀농 생활을 보낸 전 대표. 그 정도 시간이면 이제 농사일도 전문가 못지 않을 듯한데 의외로 자신이 없다는 투다. 그만큼 농사일이 만만치 않다는 뜻일 터. 흙과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생명을 키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고 한다.


“막상 농사일을 해보니 농사꾼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아는 언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귀농, 귀촌 관련 강의도 하는 언니인데, 얼마 전에 강의 요청을 받고도 별로 하고 싶은 맘이 들지 않더래요. 왜 그러냐고 물어 봤더니 귀농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서 그렇대요(웃음). 그럴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걸 먼저 알았으면 좋겠어요.”



시골에서의 삶에 큰 로망을 품고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전 대표의 솔직한 돌직구가 참 반갑다. 좋은 말만 늘어놓기보단 오히려 이런 쓴 충고가 더 깊은 울림을 주지 않을까. 귀농 10년차 선배로서 새로이 합류할 이들에게 해 주고픈 말도 많을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때 미리 지식을 쌓으셨던 분들은 내가 다 잘 할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만큼 지식이 있으니까 농사도 자기가 잘할 거라고 생각하죠. 보통 유기농 농사 짓겠다고 귀농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농사도 쉽지가 않은데 거의 100% 실패해요. 그런 것들을 잘 생각하시라는 거예요.”


그래서 전 대표가 제안하는 방법은 한번에 올인하는 방식이 아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귀농을 하라는 것이다. 귀농 지원 정책 가운데 있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 등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그렇게 조금씩 시작을 해 보시다가 정말 이것이 자신에게 맞으면 정착하실 수도 있겠죠. 농촌에서의 삶이 단순할 것 같지만, 정말 뚜렷한 가치관이 있으셔야 돼요.”


모든 일이 그러하듯 주먹구구식의 귀농, 귀촌이 아니라 사전에 철저한 정보수집과 교육을 통한 준비 과정이 있어야 성공적인 귀농, 귀촌 생활을 이룰 수 있다. 농촌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모든 귀농, 귀촌인들의 성공적인 농촌 생활을 함께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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