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11 | 칼럼·시평 [문화가이드]
색채에서 분위기를 붓자욱에서 감정의 순도를
유휴열 서양화가(2003-09-26 10:40:25)
작가와 어우러진 인연으로 작품을 구입하고자, 전시장에 동행을 청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그때마다 역시 사람들의 눈은 거의 비슷하여 마음에 드는 작품은 이미 빨간 점이 찍혀 있다. 어떤 양식 없는 작가의 전시 후엔 120퍼센트가 되었느니 어쨌느니 하는 말이 자랑삼아 나돈다. 실로 그 작품이 욕심이 날지라도 다시 의뢰해서도 안되며 작품이 아닌 제품화를 시킬 수도 없고, 그림은 걸어놓고 볼수록 마음에 닿아야 함 등의 상식적인 말끝에 몇 차례를 돌아보고 두서너 점을 고르면 그 중에서 의견을 부추겨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제는 새로운 개인화랑이 늘고 예술회관에서도 연중 끊임없이 크고 작은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있으면 흔히 듣는 말이 그림을 설명해 달란다. 동양화는 자주 접해서 이해를 하겠는데 서양화는 모르겠단다. 옷의 무늬나 신발의 색깔, 머리 모양이며 옷맵시가 미적인 센스를 충분히 말해 주었는데도 화랑에선 필요 이상의 겸손이다.
어린아이에게 노래를 시켜보면 잘하는지 어설픈지 금방 아는 사람도 그림을 보고 우열을 가리기는 그리 쉽지 않다. 실로 대중가요에서부터 소품이든 대곡이든, 들으면서 흥얼거리고 제목도 기억하고 박자도 맞춘다. 우리네 일상에서 음악뿐 아니라 미술의 영역도 늘 가까이 대하고 있지만 대중화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음악은 소리 그 자체가 추상적이어서 청각의 훈련 또한 그렇게 되어있지만 시각은 사물을 확인하는 것으로 훈련되어 그림 속의 형태를 먼저 찾으려는 버릇이 있다. 또 하나, 사람들은 지식과 경험 등 자신의 수준치를 가지고 그 속에서 그림을 본다. 실로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이라면 굳이 형태가 보이지 않아도 화면에 나타난 색채에서 분위기를 느낄 것이고 붓자욱에서 감정의 순도를 발견할 수 있으며 타이를 골라 매듯 조화를 알 수도 있을 텐데 느낌보다는 보려하고 형태와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데서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현대 미술에 있어서 그 장르가 가장 다양하고 이 시간에도 새로운 실험과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념이나 주제를 파악하려 하고 논리를 굳이 따지기 전 전체의 미적 감각과 균형을 느끼면 되리라 본다. 좀더 관심이 있다면 화집을 대하기도 하고 자주 전시장에 들러 눈으로 만나고 머리로 감동하는 훈련의 거듭에서 그림과 보다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유휴열·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