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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 | 칼럼·시평 [문화칼럼]
인권(权)과 환경권(圈)
전희식(2020-06-08 16:33:49)

인권(权)과 환경권(圈)
글 전희식 ‘치유의 마음농장’ 대표 / ‘똥꽃’ 저자


우리는 같은 공간도 자신의 상태와 의지에 따라 달리 느끼게 된다. 달리 느낀다는 것은 달리 보인다는 것이고, 달리 들린다는 것이리라. 이는 내가 기억 창고에서 무엇을 어떻게 끄집어내느냐에 관계가 깊다. 어떤 작가가 말했다. 지금의 나는 내 기억의 총체라고. 말도, 글도, 상상도, 꿈도 다 기억을 바탕으로 출현한다.

곧 있을 25회 환경의 날을 앞두고 섬광처럼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기억이 곧 나다
기억의 생생함은 역순이라 그럴까. 얼마 전에 읽은 책 <제국 문화의 종말과 흙의 생태학(윌리엄 코키. 이승무 역. 순환 경제 연구소. 2020. 24,000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책은 문명의 찌꺼기를 속속들이 보여주면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진실들을 들춘다. 우리가 그토록 대견해 하며 풍요와 편리를 즐기고 있는 문명이라는 것이 사실은 물질주의와 군사주의, 가부장제와 강압적 위계에 기초한 약탈 행위라고 설파한다.


땅, 숲, 바다, 공기, 농업, 식민주의, 화학물질, 공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고대사회까지 아우르며 정리하고 있다. 생태계의 총체적 파괴와 환경오염 실상을 증언한다. 오염도 등급이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이 ‘복합오염’이다. 여러 가지 오염이 서로 얽혀서 폐해가 증폭되는 현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딱 한 가지. 문명이라는 달콤한 향내에 취한 인간들이 ‘지구의 암적 종양체’로 등장해 서란다. 지구촌의 지엽적인 문제들도 따지고 보면 인류 문명 자체에서 비롯되고 있다. 책은 우리 문명을 ‘제국 문화’라고 이름 붙인다. 바빌론, 로마, 몽골, 일본, 미국만이 제국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삶 자체가 지구 생태계 입장에서 바라보면 ‘제국 문화’다.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요지인 책이다.


두 번째는 코로나19 바이러스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나 방역 당국, 정책 입안자들은 잠시 숨을 고르며 환경의 날을 진지하게 떠올려야 할 것이다.


언론매체와 유튜브에서 다투어 기획물로 다루는 코로나19 뒤에 바뀌는 일상 이야기를 들으면 노른자 없는 달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익숙한 시쳇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요 ‘고무줄 없는 빤스’다. 최근 유행하는 ‘삽 없는 엠비(MB)’라는 말도 어울리겠다.


비대면 사회가 되면 택배나 온라인 수단이 강화되면서 어떤 산업이 뜨게 되고 건축 흐름은 어떻게 바뀌며 직장의 풍경과 학교 교실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방물장수 보따리 구경하듯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보자면 솔직히 불편하다. 코로나는 생태계의 파괴에서 비롯되었고 생태계의 복원 없이는 코로나 이후의 일상은 없다는 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설사가 나면 당장이야 지사제를 먹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 입으로 지사제 먹고 다른 한 입으로 계속 상한 음식을 먹거나 과식을 되풀이한다면 참으로 어이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무분별한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코로나는 영원하리
곧 코로나 ‘이후’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 걸까? 물류 지하 전용도로를 만들자는 전문가가 방송에서 열을 올리는 것을 봤다. 드론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비대면 사회에 맞게 재택근무가 원활하도록 아파트 구조도 이제는 유휴공간과 가족 성원의 개별 공간을 더 넓혀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었다. 설사할 때는 물도 안 먹는 게 좋다. 단식이 명약이다. 코로나 대책을 얘기하면서 단식에 해당되는 소비 감축, 개발 중지, 생태계 복원,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농촌을 살리자거나 시골로 가자는 사람이 없다.


모든 전문가 연하는 사람들은 산업적 시각으로 오늘의 사태를 바라본다. 기득권 시선을 가지고 물질적 풍요를 지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체제가 아무 문제 없는 듯이 말한다. 여름 다음에 오는 가을에는 무슨 옷으로 갈아입으면 되는지 떠드는 수다쟁이들로 보인다.


국토부는 2020년 5월 19일 ‘수도권 제2 순환선 안산~인천 구간 전략 환경 영향 평가 공람 공고를 내고 다음 달부터 주민설명회를 한다고 밝혔다. 이 도로계획은 습지 보호지역과 2014년에 등록된 람사르 습지가 포함된 곳이다. 코로나 방역과 역행하는 계획이다.


더 이상의 자원 고갈을 막자. 출산 장려정책을 그만두고, 무역으로 벌어먹으려고 하지 말자. 토지의 사막화를 막자. 자립경제, 생태공동체, 식량 자급을 이뤄 나가자고 말하는 게 코로나 중장기 대책이다. 소비를 조장하는 광고를 금지하고 스마트폰 등 1년 이내에는 신제품을 출시하지 못하게 하며, 재난 소득에 이어 생태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생태 소득 지급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쓰레기를 양산하는 신제품들은 과도하게 소비를 조장한다. 결과적으로 코로나를 부추긴다.



환경권(圈) 없이 인권(权) 없다
세 번째 떠오르는 기억은 환경권이다. 권(权)이 아니고 권(圈)이다. 작년 가을에 어느 장애인 단체 연합회에서 한 인권 강사 양성 프로그램에 가서 나는 이 개념을 제기했다. 하루 10시간씩 이틀 동안 진행된 집중 강의에서다. 태평양 외딴섬에서 무리 지어 살던 ‘앨버트로스’가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여주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인간 고유의 권리인 음식권, 주거권, 에너지권, 언론권, 이동권, 성인지 감수성 등 근대적 인권도 타 생물•무생물 존재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다 도루묵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권 강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강의안을 수용한 추최 쪽 결정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장자 외편 산목(山木) 편에 보면 사마귀가 매미를 잡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까치를 잡으려고 활을 겨누던 장자는 그 까치가 매미를 잡으려고 하고, 매미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는 걸 본다. 과수원 주인은 도둑인 줄 알고 장자를 노린다. 눈앞의 먹이만 노리다가 자기 스스로가 먹잇감이 되어 있는 줄도 모르는 오늘날의 인간 모습이다.


이번 환경의 날에 무슨 기억을 떠올리며 무슨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자유다. 그러나 그 자유가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를 망가뜨리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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