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공방 ① 전주_4
섬세한 작업에 보는 이들의 숨소리마저 멈추는 공간
옻칠장 이의식 <행촌칠예공방>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합천 해인사에 소장돼 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대장경판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해인사 장경판전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251년 완성된 팔만대장경이 76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보존될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판전 건물에 비밀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또 다른 비결이 있다. 바로 옻칠이다. 나무로 된 경판이 뒤틀어지거나 썩는 것을 막기 위해 경판에 옻칠을 했다. 경판 1개당 5g씩의 옻이 사용됐는데 옻나무 40만 그루 분량이다.
그런 옻칠을 벌써 수십 년 째 이어온 공방이 있다. 이의식 장인이 작업을 하고 있는 ‘행촌칠예공방’이다. 이곳에서 그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멈는 섬세한 작업들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칠기를 만들기 위해선 우선 백골이 있어야 한다. 잘 건조된 나무를 적당한 규격으로 자르고 초벌 깎기를 한 뒤 선차(발로 돌리는 물레)로 재벌 깎기를 한다. 즉 아무것도 없이 뼈대만 있는 상태, 그것을 백골이라고 한다. 백골을 곱게 사포질하거나 삼베를 바른 뒤 초칠을 한다. 그 다음 고래바르기를 한다. 토분과 숯가루 등을 섞어서 바르는 것으로 2~3회 정도 한다. 베의 눈(그물 따위에서 코와 코를 이어 이룬 구멍)을 메우는 작업이다.
그 뒤 면 갈기를 한다. 숫돌로 면을 반듯하게 잡는 것, 즉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또 칠한 다음 면 갈기를 하고 다시 칠한다. 흠집 있는 것은 사포질하고 칠하고 또 사포질하고 칠하고. 일반 제품은 7~8회 정도 칠하지만 작품은 수십 차례 칠한다. 그래서 작품 한 개를 완성하기 위해선 적어도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 장인의 신경이 가장 예민해지는 것도 이때다. 칠만 해서 끝내는 것이든, 광을 내서 끝내는 것이든 마무리는 다 똑같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해야 한다. 채화 같은 경우 두꺼울수록 난이도가 높다.
제아무리 곧고 두꺼운 나무라고 해도 시간의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다. 뒤틀어지고 썩기 마련이다. 그런데 옻을 만나면 강해진다. 수십 번 정성들여 옻칠을 하면 오래 보존될 뿐 아니라 아름다운 빛깔이 난다. 장인의 작품을 보며 사람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을 든다. 제아무리 잘났더라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정성들여 계속 마음에 옻칠을 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다운 빛깔이 난다. 옻칠과 사람의 공통점을 또 이렇게 그의 공방에서 확인한다.
1954년 전주에서 태어난 장인은 중학교를 그만 두고 가구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옻칠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최환창, 백선원, 홍순태 등 국내 최고의 장인을 찾아 본격적으로 옻칠을 배웠다. 스물넷 젊은 나이에 스승으로부터 독립, 서울에 공방을 차렸고, 1998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 전통옻칠 공예품을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개발하며 전통공예를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전주시 덕진구 하가3길 14
수천 번의 망치질 끝에 피어난 아름다움
방짜유기장 이종덕 <방짜놋전>
마을 이름, 도로명에 ‘유기’가 들어갈 정도로 전주는 유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산 좋고 물 좋고 소나무 숯이 있는 곳에서는 다 방짜를 만들었지만 특히 전주는 소리의 고장으로, 소리 악기를 만드는 방짜 유기가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다가교 건너 그 일대가 한집 건너 하나가 유기 판매점일 정도였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를 안타까워 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방짜 유기장 이종덕 장인은 전주의 방짜를 되살려보고자 전주에 자리 잡았다.
유기의 종류는 주물, 반방짜, 방짜 세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으뜸인 것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방짜 유기다. 방짜란 충청도 방언으로 ‘최고’라는 뜻으로, 구리 78%에 주석 22%를 합금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구리에 주석을 많이 더하면 강도가 세지지만, 10% 이상 합금하게 되면 깨지기 쉽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합금의 정확한 비율을 알았고, 그 비율에서 두드릴 수 있는 온도를 발견했다. 22%의 합금 비율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 게다가 덩어리를 때리고 두드려 만드는 만큼 주석과 구리가 분리되며 구멍이 생기는 주물 결함이 없어 경도, 강도 등 금속이 갖출 수 있는 모든 물리적 성질이 월등히 다른 유기보다 뛰어나다. 지금도 정확한 비율과 두드려 만드는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는 사람은 적지만 그는 전통방식을 그대로 재현해 만들고 있다.
그의 공방은 김제, 익산, 정읍에 나눠져 있지만, 풍남문 근처 판매•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악기, 주방용품, 제기, 종교 용품 등 청동으로 하는 모든 것 다루는데, 균일한 모양의 상업 상품 외에도 기하학적인 모양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현재 방짜 유기는 원형(동그란 모양)이 주를 이룬다. 남아있는 유물이 원형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는 선조들도 다양한 모양의 방짜 유기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각, 삼각, 소라, 꽃 모양 등 다양하게 작업하고 있다. 원형이 아닌 다른 모양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기하학적이면서도 균형을 이뤄야 하기 때문에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만큼 어렵지만 성공했을 때의 희열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자연물에서 일차적으로 영감을 얻고, 거기에 사회 이슈나 시대에 맞는 것들을 모티브로 삼아 작업한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을 때는 배, 어린 학생, 승천, 아이들이 바닷속에서 보는 소라, 조개 등을 표현했고, 최근에는 코로나로 피폐해진 감성을 돌보고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명상과 관련된 작품을 하고 있다.
뜨거운 불앞에서 하는 작업이지만, 평생 해왔기 때문에 가장 쉽다고 말하는 장인. 방짜 유기를 만드는 것은 다른 공예와 달리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데,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떨 때는 식사 시간도 잊고 작업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는 부러 모양을 예쁘게 만들려 하지 않다. 오래 보아도 매력적인 것이 진짜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작품을 단순한 실용성을 넘어 예술로 승화시킨다.
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실습을 나갔다가 유기를 접하게 된 그는 군 제대 후 1985년 안양유기공예사에 취직, 본격적으로 방짜유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현대인들의 생활에 맞게 쉽게 닦이고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방짜유기 제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10여 년 전, 방짜유기의 전통을 찾아 전북으로 터를 옮긴 그는 더더욱 방짜유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 2011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2007년 청와대에 대통령 전용식기를 제작해 납품했으며, 그가 만든 징과 꽹과리는 국립국악원,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 우리나라 최고의 연주자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길 19
잊고 있던 효를 떠올리게 하다
자수장인 장정희 <사임당한복>
시대가 변해도 민족의 DNA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단아하게 흘러내리는 옷깃의 아름다운 선과 고운 색을 자랑하는 전통 복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대번에 옛것에 대한 친숙함이 향수처럼 흐르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민족의 얼과 정신임을 다시금 상기한다.
자수로 시작해 이제는 전통 복식까지 두루두루 작업하고 있는 장정희 장인의 공방 ‘사임당한복’을 찾았다. 입구 벽을 가득 채운 색색의 실타래, 화사한 빛깔과 맵시를 뽐내는 전통 의복, 손때 묻은 미싱 등이 과연 공방이란 느낌이다. 전주향교에 의복을 납품했을 때 그 빼어난 솜씨를 눈여겨본 타 지역 사람들이 일부러 그를 찾아 작업을 부탁할 정도로 실력 역시 정평이 나 있다.
이곳 공방은 작업 공간인 동시에 자수와 침선을 가르치는 교육의 공간이기도 하다. 가르침을 청하며 찾아온 이들과 함께 한 땀, 함 땀 정성 들여 바느질을 하는 모습은 과거 규방에 모여 앉아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냈던 조선시대 여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상기시키기도 한다.
우리 전통 복식을 통한 아이들 인성 교육에도 장인은 대단한 열정을 쏟고 있다. 전통 의복 입어 보기 체험이나 만들어 보기 체험을 통해 우리 의복이 어떤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탄생하게 됐는지 알리고, 옷차림에서 비롯되는 책임과 마음의 변화까지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수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옷을 입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옷에는 입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옷에 따라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 걸음걸이 하나에도 변화가 생기잖아요. 격식 있는 옷을 입었을 때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처럼 아이들이 우리 전통 의복을 입어 보며 인성을 키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교육과 함께 그가 또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지를 사용한 수의 제작이다. 특히 최온순 침선장에게 한지로 만드는 굴건제복을 배우면서 장례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 수의를 맞추러 온 이들에게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되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도 한다. 수의 두루마기 폭에 부모님께 전하고픈 마음을 자수로 놓아 보는 것. 수의 주문을 받을 때마다 가족 모두에게 함께 오라고 권하는 이유다.
“간단하게 글씨를 따라 수를 놓게 하는데, 한 땀, 한 땀 새기면서 자식들은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손주들은 효도를 배우게 되는 거죠. 그렇게 서로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다는 데 값진 행복을 느껴요.”
작업 공간을 넘어 이제는 따뜻한 효의 정신까지 실천하고 있는 장인의 공방. 그 아름다운 마음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길 바란다.
가족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미싱 작업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바느질에 대한 관심을 키운 장인은 결혼 후 육아와 집안 살림을 맡아 준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자수 학원에 등록, 실력을 키워 자수 학원 강사로 일했다. 시어머니의 눈이 침침해지면서 강사는 그만두게 됐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실력을 알아본 사람들로부터 계속 일을 의뢰받았다고 한다. 자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 옷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해짐을 깨닫고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2호 최온순 침선장에게 사사를 받고 전수자 이수증을 받았다. 공방 ‘사임당한복’을 운영하며 다양한 체험 교육과 자수, 침선 교실을 열고 있다.
전주시 완산구 충경로 109 2층
나무, 소리로 재탄생 되다
악기장 최동식 <궁성악기사>
55년간 오로지 악기 만드는 일에만 열중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악기장 최동식 장인. 1964년에 처음 공방 일을 시작한 그는 2015년 지금의 용머리고개 유기전길로 이사 왔다. 공방 안에는 나무 몸통을 다듬는 대패대, 재료를 다듬는 도구들과 기계들이 놓여있고, 한쪽 방에는 그가 만든 악기들이 가득하다.
그는 좋은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가 가장 중요하고 공력(노력), 얼마나 잘 다듬었는가는 그다음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마음씨가 곱고 많이 배워 지혜가 있어야 하지 외관만 번지르르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여, 악기도 마찬가지지.” 그가 말하는 가장 으뜸인 거문고는 석상오동(돌 위에서 자란 뒤 그대로 말라죽은 오동나무)으로 만든 거문고이고 그다음은 소나무다. 어떤 나무든 서서 죽은 나무여야 진이 잘 빠져 대패질도 쉽고 소리도 예쁘게 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기술이 없으면 나무는 그저 나무일 뿐, 악기가 되지 못한다. 소리 악기가 그렇듯, 거문고 역시 제대로 소리를 나게 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기술력을 요구한다. 특히 궤를 깎고 붙이는 작업이 그렇다. 궤는 가운데는 두껍게, 가상으로 갈수록 얇게 깎아야 하는데, 두꺼운 부분에는 굵은 줄을, 얇은 부분에는 가는 줄을 놓아 소리와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세밀하게 다뤄야 한다. 또한 뒤판과 울림판 사이에 간격을 두어 공명이 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하나의 명금을 만드는데 걸리는 기간은 4~5개월 정도. 하지만 만드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이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몸통으로 쓰이는 나무는 보통 7~8년 정도 건조하며, 거문고 머리에 붙이거나, 몸통에 붙여 뒤틀림을 방지하는 소뼈는 양잿물에 삶아 기름이 빠질 때까지 햇볕에 말려야 한다.
그렇게 준비한 나무를 제재소에 가져가 빠개고, 집으로 가져와 도끼로 둥글게 다듬은 뒤 울림통의 속을 파낸다. 다음으로 뒤판이 되는 밤나무를 다듬어 붙인다. 거문고 머리를 다듬어 모양을 내 붙이고 궤를 통 위에 붙인 뒤 현을 꼬아 걸면 거문고가 완성된다.
장인은 거문고를 연주할 줄은 모르지만 수많은 명인의 거문고를 만든 만큼 듣는 귀가 좋다. 그래서 찾아오는 손님이 연주하는 소리만 듣고 어떤 악기가 맞는지 추천해 주기도 한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악기를 만들수록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그는 여전히 전통 기법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맥이 끊이지 않도록 전수하고 있다.
최동식 장인의 스승은 악기 제작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김광주 장인이다. 손재주가 좋아 금세 악기 제작하는 방법을 익힌 그는 스승이 만든 울림통을 하루에도 몇 십번씩 들여다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마침내 온 몸으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 제작법을 터득했다.
전통기법으로 제작한 그의 거문고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편이고 줄도 누렇고 나무판도 옹이가 져있지만 기계의 힘을 빌려 외형만 예쁘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신쾌동, 김소희, 전재환, 한갑득, 박귀희, 강동일 등 쟁쟁한 명인들이 그의 실력을 알아보았고, 오늘에도 김무길, 김재형, 변성금 등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거문고 연주자들이 그의 악기를 고집한다.
전주시 완산구 유기전2길 10
겹겹이 공으로 쌓인 한지, 작품으로 피워 내다
한지공예장인 황영숙 <운선한지공방>
한 겹, 또 한 겹 덧대고 덧댄다. 하늘하늘 얇고 고운 한지가 견고한 생활용품으로 변신한다. 한지공예에는 종이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사용했던 선조들의 검소한 마음이 담겨 있다. 한지로 만들어진 공예품들은 집안 분위기를 우아하게 바꿔 놓는 데 탁월할 뿐만 아니라 화사한 색감을 통해 마음을 위로해 주는 효과까지 있다.
우리나라 고유 문화유산 한지의 단아한 멋과 전통을 지키며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곳이 있다. 전주 인후동에서 황영숙 장인이 운영하고 있는 ‘운선한지공방’이다.
공방 문을 열자 은은한 한지의 매력이 입구서부터 뿜어져 나온다. 선반 위를 가득 채운 작품들이 눈을 들어 낯선 이를 수줍게 반긴다. 아름다운 색감의 전등갓, 보석함, 팔각 소반, 함지, 작은 서랍장, 액자 등이 공방 곳곳에 층층이 쌓여 있다. 물론 이 작품들의 재료는 한지다.
단아한 멋과 매력을 뽐내는 한지공예 작품들 사이에서 문득 만져 보고픈 충동이 인다. 허락을 구하고 표면을 쓰다듬어 보자 보드라우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손을 타고 전해진다. 강도는 의외로 단단해 꼭 쥐어도 찌그러짐 없이 견고하다.
“생각보다 견고하죠.”
한 겹의 얇은 한지는 일반 종이보다 탄성은 뛰어나지만 대신 쉽게 찢어진다. 그러나 그 나약한 한지를 풀로 발라 겹겹이 붙이면 나무처럼 단단해진다. 전통 방식 그대로 수백 번의 손길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는데, 질기고 부드러운 한지의 질감과 색상이 우리 민족의 심성과 어우러져 비길 데 없는 친숙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곳 공방에서 장인은 본인의 창작 활동은 물론 회원들에게 다양한 한지공예 기법을 전수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한지공예는 크게 세 가지로, 한지를 여러 겹 덧발라 만든 틀에 다양한 색지로 옷을 입힌 다음 여러 가지 무늬를 오려 붙여 만드는 ‘색지공예’, 종이를 잘게 찢어 물에 불린 뒤 물과 섞어 일정한 틀에 부어 넣거나 덧붙여 이겨 만드는 ‘지호공예’, 나무로 골격을 짜거나 대나무, 고리 등으로 뼈대를 만들어 안팎으로 종이를 여러 겹 발라 만드는 ‘지장공예’ 등이다. 파스텔 톤의 한지와 현대적인 문양을 가진 작품들도 자유롭게 만들지만, 원색의 예술적 영감이 뛰어난 전통 오색 한지 공예의 화사한 온기도 장인이 크게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한지의 매력이 더 많이 알려져서 한 집에 한 작품씩이라도 놓여졌으면 좋겠어요. 회원들에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 도구를 만들어 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본래 서예를 하다 몸에 무리가 와 쉬던 중 우연히 찾은 여성회관에서 장인은 한지공예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한지의 색이 주는 편안함, 재질의 매력 등에 빠져 배움에 몰두했고, 2006년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전통공예학과를 수료하며 한지와 다른 분야와의 접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1997년 제2회 온고을 전통공예 전국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전국한지공예대전에 초대작가로 참여했다. 현재는 공방을 운영하며 전국한지공예대전 운영위원, 전북전통공예인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전주시 덕진구 가재미4길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