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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 | 기획 [기획]
장인의 공방 ② 전라북도 서부권
군산, 익산
이동혁, 김하람(2020-08-10 19:47:29)
 

장인의 공방 ② 전라북도 서부권_군산, 익산


흙, 쓰임을 갖고 다시 태어나다
도자기장인 신익창 <도예원>



도자기 같은 피부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도자기라 하면 매끈한 표면에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항아리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도자기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흙에 쓰임을 불어넣는 것. 때로는 거칠고 투박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유려하게, 주변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하는 신익창 씨의 공방에서는 도자기의 무궁무진한 쓰임을 엿볼 수 있다.


장인에게 공방은 자기 표현의 공간이다. 느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흙을 떼어 만들기도 하고, 흙판에 그림을 그리기도, 그림 위에 도자기를 배치하기도 한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소라 같은 형태를 띤 스피커다. 장인은 공간을 울리며 퍼지는 소리와 만드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내부 공간이 존재하는 도자기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소리의 볼륨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소리에 형상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 출발하여 소리가 퍼지는 형태를 조형물로 표현하고, 그 형상을 따라 도자기로 스피커를 만들고 있다.


“그릇은 쓰임이 중요해요. 쓰일 수 있다는 것은 담아진다는 것이고, 담아진다는 것은 사용된다는 것이에요. 여기에서 담을 용容과 쓸 용用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함께 생각하게 됐어요.”


장인은 쓰임에 적합한 기능적 요소를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쓰임이라는 것에는 항아리가 물을 담거나 꽃을 꽂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닌, 디자인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쓰임 있는 자기를 만드는 것이 공예가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이 만드는 것들이 누군가에게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에는 잘 만드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그때그때의 심상을 도자기와 함께 빚어내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보면 당시의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떠오른다고. “그동안 다양한 주제와 기법으로 작업해왔지만, 이제는 좀 좁혀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40년 넘게 도자기를 빚어온 장인은 그 세월을 거치며 정제되어 가는 기술의 완숙성을 위해 끊임없이 길을 찾고 있다.  

군산시 성산면 창오1길 26



조선시대 상의원의 맥을 잇는 공간
침선장 임순옥 <임순옥한복연구실>



조선시대 임금의 의복과 궁중 복식의 관리를 담당한 상의원. 침선장은 그곳의 총책임자로서 나인들을 통솔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침선장 임순옥 씨는 침선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궁중 복식에 관해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의복 일식을 제작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곤룡포를 재현하여 문화재가 된 장인은 곤룡포뿐만 아니라 버선부터 시작해 속적삼 등의 속옷과 머리에 쓰는 익선관까지 모든 의복 일식을 다 연구하고 재현했다. 그의 공방 자체가 현대판 상의원인 셈이다.


“밥상에 밥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듯, 한복도 속적삼, 속치마, 버선 등 모든 것이 있어야만 조화가 이루어지고 하나가 돼요. 이것을 명심하고 복식을 연구해야 돼요.”


공방에 들어서면 색색이 쌓여있는 원단들이 눈에 띈다. 어진과 용포에 관련된 기록을 통해 재현하고 있지만 실제 곤룡포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기 위해 염색도 여러 번 해보고, 원단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장인은 한 벌 재현한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같은 옷을 마음에 들 때까지 여러 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장인의 열정은 칠십이 넘은 세월도 막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원단을 색깔별로, 종류별로 모으게 됐고, 공방뿐만 아니라 공방만 한 크기의 창고에 가득하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지는 장인의 작업 공간은 치마폭보다도 좁은 책상이다. 그곳에서 수많은 옷을 만드는 장인의 바느질에는 전혀 막힘이 없다. 자리에 앉아 바느질하고 다림질을 하고 있으면 너무 즐거워서 몇 시간이고 훌쩍 지나간다고 한다. 집에 가서도 텔레비전을 보며 바느질을 하는 장인의 열정은 전수자이자 큰 며느리인 이영주 씨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라고.


그렇다고 장인이 전통 의복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40년간 군산의 전통시장에서 한복연구실을 운영하면서 일반 시민들을 위한 결혼 예복이나 혼주 예복 등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제작하고 있다. 현대적 스타일에도 전통 출토복식을 연구한 결과물을 접목시켜서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군산시 싸전길 4



사랑과 미움,  그 모두를 포용하는 표정
석장 권오달 <남강석재>



익산 시내에서 황등으로 향하는 도로 한편, 오묘한 부처의 미소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누군가는 그 표정에서 자애로움을 발견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얼굴에서 슬픔을 찾아 낸다.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부처의 표정은 그래서 달과 같다. 슬픔에 잠긴 사람이 바라보면 슬프고, 기쁨에 충만한 사람이 바라보면 한없는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과 미움을 모두 간직한 포용.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6호 석장 권오달 씨의 작업장 ‘남강석재’에서 석불의 깊은 경지를 엿본다.


“중국 불상은 크고 준엄한 것이 많고, 일본 불상은 웃음을 기본으로 한 것들이 많아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 불상은 준엄하지도, 화사한 미소를 띄고 있지도 않습니다. 보는 이들의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웃는 모습으로도, 꾸짓는 모습으로도 보이죠. 부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포용하는 자애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기계 사용이 당연해진 요즘에도 그는 모든 작업을 정과 망치로 대신한다. 석불의 포용력 있는 표정을 온전히 담아 내기 위해선 장인도 그에 걸맞는 정성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굳은 신념 때문이다. 덕분에 기계를 사용하면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을 작업이 세 달도 넘게 걸린다. 그러나 쏟은 정성만큼 작품엔 깊은 의미가 배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인자한 부처의 표정이 완성된다.


“돌을 깎는 과정이 부처님의 득도 과정과 같다”는 장인의 말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온다. 욕심과 욕망을 버리며 오장을 비게 하는 득도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돌을 깎는 작업 역시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 가면서 바위에 담긴 부처를 남기는 작업이다. 스스로를 깎아 내며 진리를 찾는 과정. 그래서 그가 조각한 부처의 표정엔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대부분의 전통이 값싼 중국산 제품에 위협을 받듯이 석공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마이산 탑사 미륵불과 관세음보살, 전남 장성군 백양사 약사암 해수관음상, 전남 여수 석천사 천불전, 전남 승주군 금둔사 마애불 등 수많은 석불상을 깎아 온 그이지만, 최근에는 작업을 의뢰받는 일이 줄어 돌 작업만으로는 먹고사는 일이 힘에 부친다. 점점 명맥을 잃어 가고 있는 전통이 못내 아쉽다.
익산시 익산대로 634


전통 공예 속 숨은 조력자, 옻칠
나전칠기장인 김창진 <장산공예사>



여러 빛깔로 빛나는 조개껍데기의 안쪽을 얇게 갈아 오려 붙인 뒤 옻칠로 마감하는 나전칠기는 오묘한 색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인정받아 여러 가구에 활용됐으며, 특산품으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고 가구회사가 들어오면서 그 수요가 많이 줄었고, 그에 따라 나전칠기를 하는 곳이 감소한 것은 당연지사. 익산만 해도 17~18곳이 있었지만, 이제는 김창진 씨가 운영하는 공방 하나만 남았다.


이전에는 자개농을 많이 만들었지만, 이제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주로 옻칠 위주로 작업하고 있다. 전국에서 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의뢰뿐만 아니라, 문화재 관련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데, 왕궁리 박물관의 어좌, 지금은 역사박물관에 있지만 이전 경기전 어진박물관의 포토존이었던 어좌의 옻칠도 그의 솜씨이며, 서울 동관왕묘 운룡도 모사도 수리 같은 한지에 옻칠하는 작업도 맡아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순창에 위치하고 있는 훈몽재에서 주렴계 선생 탄생 1천 주기를 기념해 위패와 전통 향사에 옻칠을 다시 하는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한지는 천년을 가고, 거기에 옻칠을 하면 2천년을 간다는 말이 있다. 내열성, 방부성, 방수성, 방충성, 절연성이 뛰어나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보존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옻칠은 그야말로 한지나 나무로 만든 작품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럼에도 최근에 들어 옻칠을 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익산에는 그 한 명뿐이며, 전주에도 무형문화재 옻칠장 이의식 씨뿐이고, 남원도 목기 때문에 조금 남아있는 정도다.


“이제는 가르치는 대학도, 공모전도 사라졌어요. 그래서 전국에서도 옻칠하는 사람이 적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이에요.” 이제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취미로 배우는 정도만 남아있고 그들이 없으면 전멸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 그러는 가운데 가짜 옻칠이 늘어서 더욱 안타깝다. 전통 기술의 보존과 안정적인 생활 유지라는 딜레마 속에서 계속해서 답을 찾아가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과제로 남아있다.
익산시 평동로 17길 7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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