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PD가 만난 청년 | 소리꾼 정민영
관객과
조금 더
가까이,
마당창극의
매력에 빠지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온 인생,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조금은 늦었지만, 그만큼 행복했던 인생. 판소리는 물론 문화판 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소리꾼 정민영(45)을 만나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민영은 어떤 사람인가요
“소리꾼 정민영입니다. 판소리 전공이지만 한국무용, 사물놀이, 연극과 관련된 경험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돌고 돌아서 조금 늦게 소리꾼의 자리로 찾아오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전주의 자랑 마당창극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해왔던 일들 중에 창극이 가장 중요한 장르인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 소리가 부족하다 깨닫고, 현재는 판소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판소리를 좋아했었나요
“군산과 서천 사이에 있는 섬, 개야도에서 태어났습니다. 너무 작은 섬이라 꿈을 가져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육지와 달리 발전이 더딘 외딴곳이라 오히려 토속 신앙이나 전통문화가 남아있었습니다. 섬이라 그랬는지 이상하게 굿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때만 되면 동네 어른들이 풍물놀이를 즐겨 하셨고, 상여 나가는 모습도 여러 번 지켜보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민속악이나 전통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풍물놀이하시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고, 그 음악이 좋았습니다. 할머니와 한 집에 살았는데, 동네 어른들하고 민요 부르고 장구 치시며 노시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민요를 따라 부를 수 있었고, 할머니의 애장품인 카세트테이프를 통해서 판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판소리를 정말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판소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워낙에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딱 두 달 다니고 자퇴를 했습니다. 그길로 평소 좋아하던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군산에 계셨던 최란수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열일곱, 그렇게 판소리 인생이 시작되었는데, 선생님이 목을 다치셔서 다른 스승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당시 군산에는 군산국악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소개를 받고 그곳에 갔던 날 우연히 보게 된 한국무용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판소리를 배우러 갔다가 무작정 무용반에 등록을 하고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운명적인 순간 같습니다.”
그 이후 무용을 계속 배우셨나요
“군산국악원에서 무용을 배우다 18살 때, 군산 선생님의 소개로 서울에 계시는 임이조 선생님을 알게 되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마포에 있는 선생님 학원에서 버텼습니다. 학원 일도 봐주고, 먹고 자기를 2년 했습니다. 춤은 임이조 선생님뿐만 아니라 대학생 누나들에게 더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누나들하고 단체로 연습을 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때 대학을 다녀야겠다는 자극을 받고 검정고시를 봐서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20살이 넘어가니 서울 생활이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고향인 군산으로 내려왔는데, 군산국악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동남풍 조상훈 대표를 만나 함께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동남풍에서 장구를 쳤습니다. 한 번은 임동창 선생님이 고창 대산초에서 합숙을 한다고 하기에 동남풍 멤버들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임동창 선생님으로부터 호흡하는 법, 사물놀이 구성 방법, 음악의 기본 원리, 무대에서 배우가 몸을 사용하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음악과 무대에 대한 생각을 바로잡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물놀이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소리에 대한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혼자 동남풍 연습실에서 소리 연습을 하는데, 판소리 전공이었던 조상훈 대표도 같이 소리 연습을 하고는 했습니다. 판소리에는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소리를 다시 하게 되었나요
“소리가 너무 하고 싶어서 동남풍 활동을 하면서 소리 선생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주에 계시던 정미옥 선생님을 소개받고 소리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돈 없고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선생님이 많이 배려해 주시고, 예뻐해 주셨습니다. 특히 전수장학생으로 받아주셔서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장학금으로 레슨비가 해결됐습니다. 그렇게 2년을 배우다 정미옥 선생님의 소개로 조소녀 선생님에게 가게 되고, 선생님의 지도로 2002년 늦은 나이에 전북대학교 한국음악과에 판소리 전공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먼 길 돌아 다시 판소리로 돌아온 예술인 정민영, 그에게 운명적인 순간이 찾아오게 되는데,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기획한 창극 <다시 만난 토끼와 자라>를 통해 “판소리”가 아닌 “창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와의 만남을 하게 되고 그의 새로운 인생도 시작되게 된다.
대학 시절은 어떠셨나요
“전북대 다니던 2003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에서 <다시 만난 토끼와 자라>라는 창극을 제작하게 되었고, 당시 전북대에 출강하셨던 곽병창 선생님의 추천으로 주인공인 자라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창극이었지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판소리를 넘어서 새로운 즐거움이 있는 장르가 창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대에서 스폿 조명을 받는데, 환상적이었습니다. 판소리 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느낌이 잊히지 않아서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조명을 계속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답은 연극이었습니다. 고민할 필요 없이 연극을 하기로 결심하고 창작극회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연극이었지만 너무 좋았습니다. 그냥 무대에 오르고 조명을 받는 게 좋았습니다.”
연극인의 삶은 어떠셨나요
“그때는 연극이 가장 소중했습니다. 창작극회에서 작품도 많이 했습니다. 다양한 경험은 물론 연기에 대한 공부도 하게 되었고, 지금의 아내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활동하다 남원시립국악단에 객원으로 참여하게 되고, 이난초 선생님을 만나 판소리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다른 장르에 몰두하다가도 판소리가 그리워지고는 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과 소리공부를 하는데, 주변 분들은 대부분 남원에 있는 국악단체의 단원이었습니다. ‘아, 나도 단체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깨달음을 갖고 자리를 찾아보다 2009년 충남부여국악단에 시험을 보고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사정이 있는지, 합격자 발표만 하고 몇 달째 발령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포기하고 창작극회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2010년 국립민속국악원에서 판소리 준단원을 뽑길래 지원을 하고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기학 연출을 만나 마당창극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판소리와는 다른 마당창극만이 갖고 있는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지나온 길들이 오직 창극을 위한 트레이닝 과정이었다 싶을 정도로 하나같이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무용이 그렇고 연극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소리가 부족하다는 사실 또한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창극이 연기만 가지고 되는 예술이 아닐진대, 가장 중요한 소리가 부족하다는 깨달음. 제가 남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되고 있습니다.”
전주 마당창극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오진욱 연출의 요청으로 2013년부터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주의 마당창극은 관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은 판소리이지만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관객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펼쳐집니다. 판소리가 갖고 있지 못한 부분을 마당창극이 보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주에서 상설공연으로 진행하는 마당창극은 매우 소중한 문화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년째 공연을 하다 보니 타 지역에서 매해 찾아오시는 분들과도 알고 지내고 있습니다. 마당창극을 보시러 전주에 오시는 분들입니다. 창극이 그렇습니다. 쉬워 보이나, 결코 쉽지 않은 장르. 마당창극은 전주의 문화 브랜드 자산으로 충분히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판소리가 아닌 창극 무대에 주력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 판단으로는 소리꾼들이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판소리를 너무 고급 예술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판소리의 고급화는 역으로 판소리가 재미 없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재미가 없는 예술, 대중이 좋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스승과 제자 관계, 계파로 나뉘어 전해지는 구전심수의 교육환경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술은 새롭게 변화해야만 하는데, 그러기에는 지금의 판소리는 너무 어려운 구조에 놓여있습니다. 재미가 떨어지고, 시대 흐름과도 멀어지니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마당창극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무대에서 관객들과 더 많이 교감하려고 합니다. 배우이지만 때로는 연출의 시각으로 공연의 완급조절을 하려고도 합니다. 이런 완급 조절이 실제 창극 무대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론 과하면 오히려 손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스스로 조절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까지 후배들이 잘 이해하는 때가 되면, 마당창극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으신지요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망이 제 몸 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공연, 다른 장르의 공연까지 많이 보고자 합니다. 새로운 공연을 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모습, 그들만의 스타일이나 철학에 대해서 배워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제가 갖고 있는 재능인 소리, 무용, 사물놀이, 연극을 바탕으로 모노드라마를 해보고 싶습니다. 연극과 창극의 중간 정도 지점이 될 거 같은데, 혼자 출연하는 ‘창극’일 것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고 기대가 됩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정체성을 지키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모색해보라 말해주고 싶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새 새로 들어온 후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노력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인생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이든 많이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공연을 할 때도, 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습니다. 조연이든 단역이든 다양한 역할을 해보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더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공연에 대한 시야가 넓어져야 멋진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좋은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젊을 시절에는 다양하게 해봐야 한다. 그게 기본이고 그 속에서 무언가 체득이 된다면 더 큰 꿈을 꿀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후배님들 포기하지 말고 잘 버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또라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광대 정민영, 후배들을 위해 마당창극 전용 예술단이 생기기를 희망한다는 그의 언제가 될지 모르는 또 다른 행보와 모습을 기대하며, 우리 지역이 갖고 있는 문화적 역량에 그와 같은 똘기가 합쳐져 새로운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