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공방 ③ 전라북도 동부권_남원
옻칠을 생활 속으로 들여오다
옻칠장 박강용 <목운공예사>
1,300년이라는 긴 목공예 역사를 가진 남원. 그만큼 다른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부한 목공예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자원을 바탕으로 남원에 자리 잡은 박강용 장인은 옻칠을 생활 속에 들여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천연 재료인 만큼 옻칠처럼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옻칠 목기라 해도 열과 습도에 약할 것 같은 목기를 컵, 밥그릇, 접시 등의 식기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실제로 생칠의 경우 수분이 65%이상 이어서 60도 이상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색이 변하게 된다. 장인이 옻칠을 식기류에 적용하면서 가장 크게 어려웠던 점 역시 이것이다. 하지만 스승인 국가무형문화재 칠장 정수화 씨에게 정제기술을 배우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정제기술로 열에도 강한 옻칠 목기를 만들 수 있게 됐으며, 옻칠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하게 됐다.
정제된 칠에 다양한 색을 섞으면 기존의 어두운 고동색 목기뿐만 아니라 어디에 두어도 어울리며, 어떤 음식을 담아도 아름다운 목기를 만들 수 있다. 장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유화 물감처럼 사용할 수 있는 옻칠 물감을 개발하고 있다. 옻칠은 예로부터 1,000년을 간다고 할 만큼 옻칠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색이 변할 일이 없으니, 그 우수성은 굳이 과장할 필요가 없다.
장인의 공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치 현대미술가 잭슨 폴록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이 화려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다. 장인이 개발한 옻칠 터치 기법으로 꾸민 것이다. 교칠 기법중 하나로, 우연의 기법에 근거한 만큼 항상 결과가 달라 장인은 만들 때마다 기대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자개나 금박 같은 부재료 없이 오로지 옻칠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장인의 교칠 목기는 그야말로 전통과 현대, 둘 다 살린 장인만의 특색 있는 작품이다.
옻칠 목기는 아무리 뜨거운 것을 담아도 잡는 데에 무리가 없다. 가벼우면서도 사람과 자연에 무해한 옻칠이야 말로 환경과 건강을 중시하는 요즘 시대에 걸맞는 것이지 않을까.
전북 남원시 요천로 1230-9 목운공예사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다
목기장 박수태 <운봉목기공방>
남원에 있는 목기장 박수태 장인의 운봉목기공방을 찾았다. 공방은 지리산과 람천 사이에 있는 운봉읍에 자리 잡고 있다. 공방은 장인과 그의 아들 박상화 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박상화 씨는 전시관에 있는 목기를 보여주고, 공방으로 안내했다.
공방에 들어서자 삼림욕에 온 것처럼 진한 나무향이 느껴졌다. 독특한 형태의 기계와 도구가 눈에 들어왔다. 장인이 다루는 기계는 원통 모양의 틀을 앞쪽에 배치하고 판자를 결합해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고, 도구는 일반적인 조각칼과 그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그 크기가 워낙 커서 사람 팔뚝만 했다. 이름과 쓰임새가 궁금했다. 박상화 씨는 기계에 올라가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이 기계를 우리는 족탁기라고 불러요. 발을 굴러서 이 원통 모양의 틀, 목기갈이틀을 구동하는 거죠. 이 도구는 목기칼인데, 주문제작한 철로 만들어서 주문쇠라고도 부릅니다.”
목기장의 일은 좋은 나무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과거 산림청에서 벌목을 엄격하게 통제했기 때문에, 장인은 목기갈이틀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베고 목기를 만들었다. 갈이를 마친 목기는 알맞은 장소에서 건조해야 하는데, 건조 과정에서 형태가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장소를 찾는 일을 중요시했다. 건조를 마치면 쓰임에 따라 마감해 작업을 마무리한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공방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작업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관광 상품으로 인기가 많았던 함지박의 주문이 워낙 많아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족탁기를 만들어 사용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주문이 거의 없어서, 창고에 목기가 쌓여 있지만, 장인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장인은 자신의 목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무를 고르는 것부터 옻칠하는 것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공정에 들어가는 모든 기계와 도구들도 제가 만든 것이죠. 그래서 제가 만든 목기를 믿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창고에 쌓여 있지만, 모두 언젠가는 주인을 찾아가 쓰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장인은 19세에 그의 아버지로부터 목기 만드는 일을 배웠고, 그의 기술은 아들 박상화 씨에게 이어지고 있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삼산길 2
섬세하고 정갈한 손길로 장인의 혼을 담다
옻칠장 안곤 <정일품공방>
오묘하고 향기로운 옻칠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곳. 옻칠장 안곤 장인의 공방이다. 공방에 들어서면 전통 공예품 외에도 제기, 생활용품, 소품 등 현대 생활에서도 위화감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전시장과 이어져 있는 사무실 너머에는 완성한 기물 위에 색 옻칠로 그림을 그리는 채화실, 칠 작업장, 건조장, 사포장 등 작업 공간이 나누어져 있다.
특이한 점은 전시장에 창이 없는 것이다. 공예품의 경우 보통 길가에서도 작품이 보이도록 큰 유리창을 내지만,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옻칠이 먼지와 햇빛에 약하기 때문이란다. 옻칠은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점점 변하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데, 햇빛을 받으면 그곳만 색이 빠르게 변하게 되어 아름다움이 훼손된다.
천연 도료인 옻칠은 살균, 방습, 방충 등에 뛰어나 최고의 도료임에 틀림이 없지만, 칠을 하는 과정은 굉장히 민감하며 세심하다. 똑같은 칠을 해도 오늘 한 것과 내일 한 것이 다를 수 있고, 계절이나 건조 시간에 따라 광택 상태가 다르기도 해 하면 할수록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옻칠이다. 그런 경험을 거쳐야만 칠을 제대로 알고 쓸 수 있게 된다. 특히 건조할 때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장인은 공방 2층에 거주공간을 두고 수시로 건조 상황을 살펴보곤 한다.
“작업하는 사람은 건조장과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업 마치고 퇴근하면 건조장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없잖아요. 옻칠이 민감해서 특히 겨울에는 시간별로 수분 체크도 해야 돼요. 꼭 그렇게 안 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아무래도 세심하게 보려면 같이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옻칠은 아주 정교하고 정갈하며, 정적인 작업이다. 미세한 먼지가 와서 앉아도 작품은 다시 칠을 해야만 한다.
“개인적으로는 칠을 집중해서 하다 보면 무아지경으로 하다 보니 그 속에 풀 빠져서 작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 연고 없이 옻칠을 시작하게 됐지만, 하면 할수록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는 장인. 이제는 옻칠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단다.
전북 남원시 요천로 1268 정일품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