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공방 ③ 전라북도 동부권_추가지역(전주), 문화저널이 만나지 못한 공방들
오묘한 자연의 빛깔, 그 아름다움에 빠지는 시간
나전칠기장 최대규 <나전공예>
최근 공방을 전주시 대성동에서 풍남문 부근으로 이사한 나전칠기장 최대규 씨. 이전의 복잡한 공방 내부가 작업에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 장소를 알아보던 중 이곳에 자리 잡게 됐다. 주택을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거실과 주방을 응접실로 바꾸고, 방마다 옻칠하는 곳, 나전 오리는 곳, 휴게실 등으로 구성했다. 주로 내부에서 작업하지만 바깥에서도 재료를 다듬는 등 동작이 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어 수업 시간에 만화를 곧잘 그리곤 했던 장인. 아버지의 권유로 가구점에서 가서 당시 크게 유행했던 나전칠기의 도안 그리는 일을 시작했다. 장인의 작품은 여백의 미를 살린 것들이 많다. 문양의 경우 전통적으로 주로 사용하는 십장생, 꽃, 나비, 새, 사슴, 공작 등의 문양보다는 물고기, 곤충 같은 남들이 안 하는 스타일의 도안을 많이 시도한다.
매번 새롭게 구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안 제작에만 6개월가량 걸린다고 한다.
“전통은 옛날 선조들의 것을 답습하는 것으로 끝나요. 그런 것에는 생명이 없어요. 답습도 좋지만, 내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도안으로 봤을 때는 예뻤지만, 바탕색이 어두운 편이어서 오려 붙인 뒤 칠까지 완성하면 느낌이 달라져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아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완성된 도안대로 오려 놓고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
항상 부족해서 떳떳하게 보여줄 만한 작품이 드물다는 장인은 겸손한 마음으로 책임감을 갖고 작업에 임한다.
최근 장인은 액자 형태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소목소품의 경우 자개, 칠, 소목이 더해져 고가의 제품들이 많다. 하지만 액자는 쉽게 걸어 놓고 감상할 수 있고, 단가도 높지 않아서 나전칠기를 좀 더 대중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단다.
“바닥을 옻칠로 칠하고 자개를 붙여 회화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게 해보려고요. 10년 정도 연구해서 노력하면 봐줄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새로 얻은 이곳 공방에서 새로운 의욕으로 시작한 작업이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25-12 1층
쌍골죽, 구슬픈 소리를 품고 다시 태어나다
악기장 최종순 <고봉산방>
전주 평화동 주택가에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금을 만들어온 공방이 있다. 악기장 최종순 명장의 고봉산방이다. 공방은 1979년부터 장인이 대금을 만들어온 곳이다. 장인의 자택 안에 마련한 3평 남짓한 공방은 작지만 실용적으로 꾸며져 있다.
장인의 대금은 쌍골죽으로 만들어진다. 쌍골죽은 양쪽에 골이 파진 기형 대나무다. 기형 대나무는 보통 대나무보다 속이 차 있어 좋은 소리를 낸다. 쌍골죽을 대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형태를 바로 잡고 곧게 펴야 한다. 쌍골죽은 저마다 그 모양과 재질이 달라서 대를 펴는 작업은 가장 어려운 작업 중의 하나다. 알맞게 편 대는 구멍을 뚫는다. 투박한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구멍의 위치와 형태에 따라 대금의 소리가 변하기 때문에 세심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대금을 만드는 과정은 워낙 까다로워서, 장인의 손을 거쳐도 반 이상은 대금이 되지 못하고 버려진다.
장인에게 공방은 어떤 의미일까. 장인은 자신이 쓰던 대금을 보여줬다. 검붉은색을 띈 대금은 장인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쓰던 것이다. 장인에게 대금 연주는 제작만큼 의미 있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 상경했던 이유도 대금 연주를 배우기 위해서였고, 대금 제작을 배운 계기도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더 이상 대금을 연주할 수 없게 됐다. 안타까움이 크지만 이제 장인은 대금을 만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금을 만들어내는 이곳 공방을 보람 넘치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장인은 스물다섯 살 때 대금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8년 동안 이수덕, 이정화 선생에게 대금 제작법을 사사 받았다. 1979년 전주 평화동의 자택에 만든 공방은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장인의 기술은 아들 성규 씨에게 전수돼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꽃밭정1길 7-10
문화저널이 만나지 못한 공방들
세 달간 장인의 공방을 진행하는 가운데 이사나 리모델링, 장인의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취재를 진행하지 못한 곳들이 있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간략하게 장인과 그 공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도예가 강의석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단국대학교 도예과 대학원을 졸업한 강의석 씨는 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사기장 이은규 씨의 전수장학생으로 2011년부터 부안청자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부안은 고려 시대부터 청자를 많이 생산하던 곳으로, 학생 시절 파편을 보러 답사도 자주 왔던 곳이다. 이에 영향을 받아 청자를 시작한 장인은 작품을 만들 때 청자의 재현과 현대적인 디자인과 기능 부분에 신경 쓰고 있다. 최근에는 재현에 바탕을 두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가오리 871
옻칠장 김영돌
김영돌 장인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옻칠장이다. 장인은 옻칠을 한 후 연마하거나 광택을 내지 않고 자연미를 살려 마감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장인의 기법과 기술은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행했던 옻칠 기법이다. 장인의 공방 금강목기는 지난 2017년까지 운영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칠기 주문량이 줄고, 장인의 건강이 나빠져 현재는 잠시 문을 닫은 상태다. 장인의 기술은 아들 환옥 씨에게 전수돼 명맥을 잇고 있다. 환옥 씨는 남원시 이백면에 공장, ‘금강옻칠공예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 아영면 서갈길 5-42 <금강목기>
목판서화가 안준영
합천 해인사 대장경 제작 과정 재현, 불타 없어진 최초의 한글문화유산인 용비어천가 목판 복원,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목판 복원, 심청가 등 완판본 소설의 목판 복원, 부모은중경, 훈민정음 언해본 복원 등 목판으로 된 우리 문화유산 복원에 힘쓴 목판서화가 안준영 씨. 복원을 하면서 목판 한글 글꼴의 아름다움에 빠진 그는 현재 전주목판서화체험관 관장으로서 ‘완판본 맥 이어가기’ 등 다양한 목판인쇄문화와 관련된 체험 통해 전주 완판본을 알리며 기록문화의 맥을 잇고 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동로 46번지 <전주목판서화체험관>
부채 장인 최수봉
남원 조산동은 예로부터 부채 만들던 사람들이 모여 있던 마을로, 최수봉 씨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부채를 만들게 됐다. 하지만 지금 남원부채(쌍죽선)를 만드는 사람은 최수봉 씨, 김복남 씨 부부뿐이다. 쌍죽선은 전주 합죽선과 달리 손잡이 부분과 부챗살이 일체형인 부채다. 대나무를 갈라 살을 만들다 보니 합죽선보다 가볍고, 부챗살이 얇고 유연해 그 다른 부채보다 더욱 시원한 바람이 분다. 50년 이상 쌍죽선을 만들고 있는 장인은 여전히 모든 제작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살 깎는 솜씨가 뛰어나 정확하고 빨라 생활의 달인에도 출연한 적 있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많은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 요천로 1339-5 <남원최수봉부채공예>
한지장 홍춘수
홍춘수 장인은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이다. 장인은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나 부친이 운영하던 종이 공장에서 처음 한지를 접했고, 열아홉 살에 아버지와 함께 임실군 청웅면에 공방을 차려 한지를 만들어왔다. 공방은 60년 동안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한지를 만들어온 장인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공방이 노후돼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인은 임실군 문화체육과와 공방을 철거 후 재건축하는 것으로 협의했다. 공방은 올해 8월 4일자로 철거를 완료하고, 12월 완공을 목표로 건설이 진행 중이다. 다시 태어날 장인의 공방과 그곳에서 만들어질 전통 한지의 모습이 기대된다.
전북 임실군 청웅면 구고6길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