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마당•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공동기획 도시문화기행 | 나주
문화유산으로 재생을 꿈꾸는 도시
글 오민정 편집위원
연일 계속되던 지긋한 장마가 끝나고 이제부터 폭염이 시작된다는 뉴스가 나오던 8월 15일, 지난달 광주권역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연기됐던 도시문화기행을 떠났다. 물론, 이날 서울에서 진행된 대규모 집회로 인해 지금 코로나 확산세가 몹시 심각한 국면을 맞았기에 한편으로는 차라리 확산 이전에 다녀왔던 이번 기행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번 기행의 목적지는 나주.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이번에도 소규모로,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나주는 ‘전라도’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말할 때 전주와 함께 꼽히는 도시다. 옛 지명이나 지역사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나주는 번창한 도시였다. 나주평야라는 드넓은 곡창지대가 있었고, 항구를 통한 장시가 발달했으며 근대에 이르러 광주로 이전하기 전까지 전라남도 행정중심지였던 곳.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항구도시와 행정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말이다.
문화유산을 통해 재생을 꿈꾸다
우리가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나주 정미소였다. 정미소의 첫인상은 거칠지만 꽤나 예쁜 건물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군데군데 아직 리모델링이 이루어지지 않은 황폐화된 모습이 눈에 띄긴 했으나 붉은 벽돌과 파란 담쟁이가 퍽 인상적이었다. 나주 정미소는 1920년대 무렵 호남지역의 쌀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이후 주민들의 쌀을 책임짐과 동시에 나주학생만세시위 등 항일운동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다. 김종순 나주시 문화재관리팀장님께서 설명해 주신 바에 따르면, 이곳은 나주학생만세시위 등 항일운동의 주역들이 모여 회의를 하던 역사적 장소였으며,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 창립자 고(故) 박인천회장이 운영한 곳이기도 했다. 매각 후 다른 소유주의 손을 거쳐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나 사회적 변화와 함께 점차 쇠락, 종국에는 정미소의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 그러다 최근 도시재생(나주읍성권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가공시설에서 문화시설로의 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나주 정미소는 쌀을 가공한다는 의미의 정미소(精米所)에서 정과 맛을 간직한 장소라는 ‘정미소(情味笑)’로 의미를 부여하고, 광주MBC의 ‘문화콘서트 난장’의 전용 공연장인 ‘난장곡간’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비록 아직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제외하고는 아직 리모델링을 많이 진행해야 하지만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동행해서 정미소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시고 일 년 후에 꼭 다시 방문해서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달라는 주민협의체 대표님 덕분에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통해 어떤 기대감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미소를 뒤로하고 우리가 둘러본 곳은 옛 읍성을 복원한 일대였다. 김종순 팀장님이 그간 진행했던 복원에 대해 설명해 주시며 일대를 거닐었는데, 폭염과 지난 장마로 인해 곳곳에서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터라 당초 계획보다 조금 단축해서 고샅길을 돌아봤다. 고샅은 본디 ‘좁은 골짜기’를 뜻하는 말인데, 오늘날에는 마을의 좁은 길목을 뜻하는 말로 통한다고 한다. 고샅길을 걷다가 서성문 성벽에 오르니 한눈에 나주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남아있는 한옥 건물을 비롯해 단층 건물들이 주를 이루는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잔잔한 여운을 줬다. 복원된 성벽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여기가 왜 성벽을 지었던 곳인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다른 도시의 고층 전망대보다 이렇게 바라보는 풍경이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일부 구간을 복원한 서성문은 완벽한 복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철저한 고증을 통해 문화재를 재건하려는 나주시의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복원된 서상문 앞, 고삿길에 지어지는 한옥들이 2층짜리 상가건물로 지어진 곳들이 있어 다소 이질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도 이미 겪었던 일이기도 하지만 성문에 서서 새로 지은 2층짜리 한옥상가건물들을 바라보는 것은 어쩐지 좀 씁쓸했다.
다음으로 돌아본 곳은 나주 나빌레라문화센터였다. 2014년 폐산업시설문화재생사업을 통해 과거 잠사 공장이었던 시설을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바꾼 곳이다. 이곳의 잠사는 지역에 뽕나무가 많아 비단으로 유명했던 나주의 지역적 특색을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일제강점기 시대에 이르러 군수산업의 일환으로 잠사 공장이 설치됐으며 엄청난 양의 명주실을 생산했던 곳이기도 했다. 1990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이후 20년 넘게 비어있던 곳이었다가 잠사의 구조를 살려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현재 강연, 전시, 공연 등 주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나주시는 2016년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2014년부터 폐산업시설문화재생사업에 이어 문화도시조성사업, 문화재청의 문화유산 활용사업, 도시재생 뉴딜사업(읍성권)에 이르기까지 문화를 통해 다시금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노력하고 있다.
초고령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도시재생
점심 이후 방문한 곳은 영산동, 과거 영산포 선창이었던 일대였다. 2019년 승인되어 올해부터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영산동 도시재생뉴딜사업은 일반 근린형으로, “근대유산과 더불어 상생하는 영산포”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총예산 189억 원, 4년간 진행되는 이번 사업을 통해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급격하게 쇠락한 영산포를 생활 정비와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시재생을 통해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나주의 영산포 선창은 한 때 손에 꼽히던 항구 중 하나로, 내륙에 등대(수위 측정과 등대의 기능)가 있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중의 하나였으니, 그 위상이 어땠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 문서고, 일본인 지주 가옥이 있었을 정도로 가장 번화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게 되면서 영산포는 완벽한 몰락을 맞이하게 됐다. 오늘날의 영산포는 초고령화 지역이다. 따라서 지역민 주도의 재생사업을 하려 해도, 다른 도시처럼 지역 청년들을 발굴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역 할머니들로 구성된 활동가의 모습이었다. 영산동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어벤저스’라며 소개를 하는 사진들은 다른 도시들처럼 화려하거나 몇몇 청년들이 주도하는 신선함과 활기찬 느낌은 없었지만 현장밀착형 도시재생사업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도시재생사업이 어떻게 주민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지역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무더위 속에서도 센터로 활용되고 있는 영산포역사갤러리(구 식산은행)과 일본인 지주 가옥, 영산포 극장, 죽전 골목, 영산포 등대 등을 차례로 돌아보고 곳곳의 빈집들을 선순환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지역에 대한 고민이 깊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기에, 나주지역의 도시재생사업을 앞으로도 눈여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방 소도시의 도시재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들이 도시재생을 진행하는 것 같다. 도시재생뉴딜사업부터 문화, 문화재를 활용한 각종 도시재생사업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그래서인지 지자체끼리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재생의 현장을 돌아보며 한편으로는 도시재생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어떻게 각각이 차별화되고 특별해질 수 있는지 골몰하는 노력들이 대단하게도, 때로는 무색하게도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 도시재생은 어려운 사업이다. 가까운 일본의 사례만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됐지만, 실제 성공사례를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혹자는 도시재생이 일종의 ‘링거투혼’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인구감소와 쇠락으로 인해 침체되는, 그리 가망성이 높지 않음에도 소도시의 소멸을 막기 위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는 대안이라고. 누군가에게는 작은 소도시들의 도시재생의 풍경은 비슷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도시재생을 통해 관광객 유치를 지상 최대의 과제로 내세우고 활성화를 기대했던 방향에서 현장 중심, 주민 중심의 도시재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단순한 공모사업, 유행처럼 번지는 개발의 광풍이 아니라 지역의 가치, 현장 중심 사업의 가치들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앞으로도 건강한 흐름으로 순환하고 발전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