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활동가 송원
함께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그러니 함께 가자, 손잡고 가자
2018년, 전라북도를 넘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배우 송원 씨의 미투(#Me Too). 가해자인 극단 명태 대표 최경성 씨는 구속되고, 송 씨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전북 여성 예술인들의 소통을 위한 단체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의 활동가이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집중하고. 약자의 이야기를 예술로 대변하는 연극단체 배우다컴퍼니의 대표이면서, 자신의 신념을 좋은 작품으로 담아내고 싶은 연출가 송원 씨를 만나본다.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성차별에 함께 대응하다
“2018년도 미투 할 때 기자회견을 전라북도경찰청에서 했어요. 그때 함께 해줄 여자 선배들이 필요했어요. 무섭잖아요. 이런 과정들이 다 처음이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 자리에 함께 가준다는 것은 이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함께 목소리를 내준다는 의미여서 그런 언니들을 찾고, 제게 조언해 줄 예술인들을 찾았는데, 정말 많지 않았어요. 너무 없었고, 그때 상당히 외로웠어요.”
어떤 단체나 제도에 보호받지 못하고 피해자가 그 모든 풍파를 혼자서 견디며 싸워야 했던 경험은 자신 이후로는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송 씨. 함께 목소리를 내줄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를 발족하게 됐다.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여자들이 있으니 혹시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피해 예술인이 있다면,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문화 예술계 안에 오랫동안 수면에 깔려있던 성차별에 대해 개인이 대항하는 것은 힘들다. 먹고사는 일에 지쳐 모른 척하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삶에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이 든 송 씨는 성차별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싸우는 것을 넘어서서 정책화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 번도 이런 조직이, 연대체가 지역에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슈로 모야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어요. 아무도 안 만드니까... 필요한 사람이 우물 파는 거죠(웃음)”
2018년도 12월부터 모여야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공식 발족 일자는 2019년 3월 1일로 자체적으로 정했다. 현재 뜻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은 17명 정도. 발족은 했으나 여유가 없어 아직 어떤 루트를 통해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이 없지만, 알음알음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올해까지 단체 등록을 하고 정관을 마련하면 내년에는 공식으로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성폭력 사건, 과연 개인의 문제인가
지역문화예술계의 불평등 속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의 성폭력 사건을 놓고 봤을 때 단지 가해자의 인성이 나쁘다 어쩌다 하는 것은 일차적인 접근일 뿐,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꿰뚫어 봐야 한다. 이것이 가해자 한 사람의 처벌로만 사건을 종결시키면 안 되는 이유이다. 송 씨는 여기서 지역문화예술계의 구조에 대해서 말한다.
지역에는 문화예술계 시장이라고 하는 시장이 없다. 어떤 단체가 공연을 올렸을 때, 아무 지원 없이 티켓 판매만으로 공연이 유지되거나 흑자가 남을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단체들이 그런 방식으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다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조금을 누가 주느냐, 누가 받느냐, 그것을 누가 결정하느냐 하는 구조를 통해 우리가 누구에게 밉보이면 안 되는지, 누가 내 생계를 쥐고 흔드는 지가 아주 자연스럽게 인식돼요.”
대부분의 예술인들이 급여를 받지 않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다음 프로젝트를 해야 만이 생계든 커리어든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프로젝트로 가는 결정권은 누가 쥐고 있으며,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 기준점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통해 권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권력이 집중되고, 기준이 인맥과 품평이 되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발생하면 과연 누가 자기 문제를 나서서 말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위 밥줄이라고 말하는 것이 끊길까 두려워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불평등을 재생산 하는 구조 바꿀 수 있을까
처음에는 동료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했던 송 씨는 지역의 특수성을 본 뒤로부터는 관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과 관이 같이 가야 하는 것도 있지만, 지역에서는 관 먼저 가야 한다고 느껴요. 모두 다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관에서 하는 게 쉽기 때문이에요. 재단만 의지가 있어서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면, 여기는 재단만 바라보고 있는 아기 새 같기 때문에 따라가는 거예요.”
“지역의 미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 대 다수의 피해자, 가해자 한 명과 다수의 피해자인 방식이에요. 한 명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다수의 피해자들이 있었지만 함구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러면 사실 이 한 명에게 권력을 안 몰아주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렇게 안 하고 있는 거죠. 오히려 구조를 양성하고, 신진 예술인들을 현장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진입장벽을 높인다거나, 진입장벽을 결정할 수 있게 누군가에게 권력을 계속 준다거나, 한 번 받았던 단체가 또다시 받을 수 있게 한다거나, 이렇게 계속 편한 방식으로 가는 거예요.”
관이 의지를 갖도록 하는 일은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민에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따라서 관과 민이 함께 가야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4일부터 매주 둘째, 넷째 화요일에 열리는 가진 전북 여성 문화예술인의 수다회 ‘여기 우리가 있다’는 민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의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 여성 예술인들이 자기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고, 얘기하다 보면 분명히 성차별이 있었고, 성폭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성이라는 자매애를 가지고 여성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지 않느냐. 술자리나 사적인 자리 말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얘기해보자. 황무지 같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았고, 살아갈 것인지. 그렇게 해서 판을 만든 것이에요”
‘여기 우리가 있다’는 여성 예술인으로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 자각하고,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어떤 활동들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좋을 것인지를 나누는 자리다. 송 씨는 12회를 만나고 마지막에 예술제에 참여해 결과물로 완성시켜가면서 자연스럽게 불평등에 대해 자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가 지역에서 느끼는 것은, 여기는 권리를 요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워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마치 엄청난 큰 변혁을 하는 것처럼 개혁을 하는 것처럼 생각해요. 나 먹고살게 좀 해달라는 얘기 왜 못하지? 사실은 그런 정책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전면으로 나서기에는 지역사회가 너무 폐쇄적이고,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올 것 같고,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 나를 괴롭힐 것 같다고.
“실제로 미투 하기 전에는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어요. 저희가 연극 협회에 가입한다고 했을 때 막기도 하고, 저희를 형편없는 단체로 취급하기도 했고요. 거기서 두려움을 학습하게 돼요. 그런데 ‘못하게 하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어’, ‘나 이제 얘기할 거야, 나 괴롭히지 마’하니까 그때부터는 오히려 괴롭힘이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웃긴 거예요. 아, 상대를 봐가면서 하는구나. 치사하게.”
학습되는 두려움이 걷히고 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거짓으로 힘을 과시한 것이며, 정작 나의 삶에 실제 피해를 주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두려움이라는 실체 없는 것들이 한 꺼풀 벗겨지면 손을 잡고 나아갈 힘이 생긴다.
#With You
때로는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활동가로서, 때로는 배우다컴퍼니 대표로서 때로는 연출가로서, 그리고 피해 생존자로서 어느 위치에서라도 더 이상 불평등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고, 목소리를 내고, 손을 잡아주는 일을 변함없이 해나가겠다는 송 씨.
“제게 마이크가 올 때마다 다시 이 마이크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성심성의껏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면 누구 한 명은 듣지 않을까요. 저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게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여성들이 저에게 굉장히 힘이 돼줬고, 위드유(#With You)가 저를 회복하게, 그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있게 해줬기 때문에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그런 것을 다 넘어서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예술가로서의 욕심도 여전히 있다.
“좋은 작품으로 제 이야기, 신념들을 담아내고 싶어요. 그게 가장 최후의 목적 달성이고, 그게 될 수 있다고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거 말고는 사실 바라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혼자 가면 두렵고 무서운 길. 함께 손을 잡고 간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다.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모여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도록, 사회를 바꿔 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쳐 주저앉지 않도록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