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현의 책이야기|마광수 <생각>
'마광수' 라는 텍스트
글 이휘현 KBS전주 PD
지은이 마광수
출판사 책읽는귀족
마광수의 <생각>을 꺼내 읽었다. 총 8개의 장으로 나누어 각 장마다 또 10개의 생각을 풀어낸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 속에는 모두 80개에 이르는 마광수의 생각이 담겨있다. 분야는 다양하다.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성 등등.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난 후 책장을 덮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역시 천재였다고.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이자, 도덕과 윤리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대한민국의 위선 앞에서 욕망의 의미를 올곧게 응시한 혁명가였다고. 이념과 집단의 논리에 함몰된 한국 사회에서 어느 날 괴물처럼 나타난 진정한 개인주의자이자 외로운 투사였다고.
‘모난 돌’은 ‘나쁜 돌’이 아니라 ‘좋은 돌’이다. ‘모난 돌’이란 개성을 갖고서 앞서가거나 튀는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마광수, <생각>, 117쪽-
마광수에 관한 내 첫 기억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아침 토크쇼를 보는데, 깡마른 교수 한 명이 초빙되어 이런저런 얘기를 방청객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무슨 얘긴가 싶어 곰곰이 듣다 보니 당시 그가 쓴 책이 서점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지 않은가? 그런데 제목이 참 해괴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도덕과 윤리의 전통사상에 철저히 무장되어 있던 열여섯 살 고등학생은 그 제목을 납득할 수 없었다.
1992년 마광수 교수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나는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신문기사 속 포승줄에 묶인 그의 사진을 보고 나는 쌤통이다 싶었다. 그래도 세상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지는 않는구나! 순결의 숭고함을 폄훼하고 자유라는 언술로 성적 방종을 조장하는 그런 음란마귀는 처벌받는 게 정의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책이 옆에 있다면 가져다가 화형식이라도 거행하고 싶었다.
운동권이랍시고 대학 노래패 활동을 하며 이런저런 시위에 참여하고 애국이니 민족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들을 스스럼없이 말하던 그 시절, 나는 시대의 전위에 서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도덕과 윤리라는 관념의 포로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1998년 겨울 마광수 교수의 신간 <자유에의 용기>라는 에세이집을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다. 마광수 교수 특유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치부를 까발린 그 책을 읽고 나는 그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를 내 마음의 스승으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그간 써왔던 책을 닥치는 대로 구해다 읽었다.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출세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읽어보니, 글쎄 <자유에의 용기>와 거의 비슷한 논조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변한 건 마광수 교수가 아니라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를 변태성욕자 정도로 여겨왔던 내가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사이 무슨 곡절을 겪었기에 그렇게 정반대의 인식 전환으로 태세를 바꾸게 된 것일까. 26개월의 군대 생활, 두 번의 연애 실패, 그리고 적당히 눈 뜨게 된 성적 즐거움 등등이 변화의 토대였을까.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간 나는 애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거대담론에 심한 회의를 느끼고, 대신 ‘개인’이라는 의미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근대’ 혹은 ‘계몽’이라는 의미를 역사학적으로 파헤치다 보니 그 안에 고갱이처럼 ‘개인’이라는 의미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마광수는 거대담론이 해일처럼 휩쓸고 간 자리의 변방에서 끊임없이 개인의 의미를 무기로 꺼내 들고, 이 견고한 대한민국 사회의 빙벽과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그가 최초의 개인주의자는 아니겠지만, 대한민국의 공론장에서 용감하게 스스로 개인주의자임을 커밍아웃한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 인식의 밑바탕에는 개인의 쾌락을 긍정하고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의 솔직함이 자리 잡고 있었을 터이고.
2014년에 펴낸 마광수의 에세이집 <생각>은 개인주의자로서 그리고 쾌락주의자로서의 그의 면모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그의 다른 에세이들을 열심히 읽어 온 독자라면 좀 김이 빠질 수도 있다. 1980년대부터 그가 끊임없이 주장해왔던 이야기들이 별다른 변화 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생각>을 읽고 곧이어 그가 1990년에 펴낸 에세이집 <사랑받지 못하여>를 읽었는데, 동시대에 두 권의 책이 쓰였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내용이 비슷했다. 1년을 1백 년처럼 사는 속도전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사반세기가 무색하게 일관된 주장을 펼치다니! 마광수라는 사람 이렇게 세상의 변화에 둔감해도 되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거꾸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히 변한 대한민국인데 왜 유독 마광수라는 개인은 여전히 받아주지 못했던 것일까. 왜 그토록 그에게 끊임없이 집단적 린치를 가했던 것일까.
말벌이 뱀의 머리 위에 앉아 침으로 계속 쏘아댔으므로 / 뱀은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복수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밑에 자기 머리를 집어넣어 / 말벌과 함께 죽어버렸다 - 마광수, ‘서시’, <생각>, 5쪽 -
마광수의 생은 2017년 9월 마감되었다. 사인은 자살로 추정된다. 유서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전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교수들 사이에 왕따였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퇴임 후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얻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죽기 전 몇 해 동안 엄청난 창작력을 과시했다. 한국 사회를 둘러싼 윤리적 도그마, 그 안에 음험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위선과 이중성, 그리고 모럴 테러리즘을 향해 그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계란을 받아내는 대한민국이라는 빙벽은 견고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마지막 계란을 날렸다. 바로 죽음이라는 계란을. 수십 년 저작 활동을 마무리하는 그의 마지막 텍스트는 어쩌면 그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그가 세상을 떠나고 만 3년이 되었다. 이제 마광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회 어딘가에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마광수(들)은 그를 기억해 줄 것이다. 그가 쉬지 않고 내었던 외로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줄 것이다. 그들이(그리고 내가!) 뜨거운 연대의 목소리로 욕망의 찬란함을, 쾌락의 숭고함을 떠들 날이 오길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