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 제24회 전북청소년연극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낸
뜨거운 열정의 시간
글 오지윤 극단 자루 대표
무대라는 공간 속에서 자신들이 펼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희망의 날개를 펼치고자 했던 그들. 코로나19라는 불청객 덕분에 우리의 일상은 달라졌고, 사회적 거리를 두며 비대면, 비접촉이 의무화되어 가는 시기가 왔으며, 이는 곧 직접 교감하고 소통해야 하는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엄청난 위기가 왔다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느껴야 하는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삭막함을 넘어 막막함이 몰려온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혹여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는 건 아닐까 불안과 근심으로 기다렸고, 기다린 만큼 무대에 오르고픈 그들의 욕구는 더 강해졌으며, 결국 그 열정이 무대 위에서 뜨겁게 펼쳐졌다.
연극의 요소에서 빠질 수 없는 관객, 그 관객을 포기하고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들을 현장에 모실 수 없는 ‘무관중’을 원칙으로 진행하였고, 대신 ‘온라인 생중계’라는 새로운 공연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집행부, 학교, 그리고 학생들의 충분한 협의 끝에 선택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인다.
‘온라인 스트리밍’이라는 낯선 관람을 시작해 본다
첫날 펼쳐진 전주제일고등학교 ‘까멜레온’ 팀의 <행복한 집의 아이를 구해주세요>
창작 초연으로 가정폭력이라는 주제의 작품이었다. 사회적인 문제이며,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꼭 되돌아봐야 하는 소재였다.
주인공이 학교에서 가정폭력의 사실을 악착같이 숨겨야만 하는 현실, 그 거짓 인생 속에서 갈등하면서도 실장을 도맡으며 모범적인 학교생활. 그 이중적인 삶 속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학생이 직접 쓴 작품이어서 매우 놀라웠고, 그래서인지 교실 장면 등은 현실적으로 표현되며, 학생다움이 많이 느껴졌다. 특히 주요 인물들의 감정 표현 연기가 좋았으며 1교시를 시작으로 하교까지의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의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갈등의 문제를 꿈속의 상황으로 접근하고, 이 모든 과정을 겪고 극복한 주인공이 훗날 작가가 되어 자신의 아픔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세상에 소리치며 용기 내는 부분의 드라마적 구조가 좋았다. 친구들의 동정이 싫어서, 친구들의 화목한 가정이 부러워서 밝히긴 싫었던 진실. ‘세상에 혼자가 아니며, 도움을 손길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고 속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를 내보자’ 그 의도가 충분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둘째 날 펼쳐진 전주대학교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산목’ 팀의 <아카시아 꽃잎은 떨어지고>
청소년연극제의 단골 출품작이라 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희곡의 힘은 이미 검증됐다. 이런 작품을 선택했을 때에는 어떻게 작품을 해석하고 표현하느냐에 이목이 집중된다. 그런 부담을 느꼈던 탓인지 기존의 작품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 매끄럽지 않아 보였다.
사투리 연기를 감정을 넣어 맛깔스럽게 표현 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사투리 느낌에 치중하다보니 대사의 의미 전달이 되지 못하고 나열식 대사 낭독의 느낌이 컸다. 배우들 간의 호흡과 조명, 음향의 큐들이 어긋나면서 극의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또한 무대 공간 활용 또한 아쉬움이 많았다. 교실 장면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책상의 배열이 뒷줄의 학생들은 잘 보이지 않았고, 선생님이 등장했을 때도 배우들의 얼굴 표정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몇몇 장면들은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관객들이 있었다면 서로 반응하며 보다 극대화된 장면이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극을 마무리하면서 ‘친구’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제대로 된 친구, 변치 않는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멋진 걸’이라는 가사로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했다.
셋째 날 펼쳐진 지평선고등학교 ‘아파시오나토’ 팀의 <비행기를 날리다>
바람잡이가 나와 약 5분간의 독백이 이어진다. 다소 산만한 움직임을 보이긴 했으나,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갖고 잘 이끌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격적인 이야기. 우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구, 혜성, 운하, 중원. 촌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친구 ‘지구’가 전학을 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이유 없는 괴롭힘을 종이비행기를 접어 ‘지구’를 향해 던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 괴롭힘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지구’ 그런 모습에 괴롭히는 친구는 더 안달한다. 특히 괴롭히는 과정 중에 SNS 계정으로 공격하는 모습은 현재의 학교폭력의 현실을 잘 반영되어 표현된 것 같다. 다른 학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수의 출연진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진지하게 극을 잘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극의 처음에 보였던 바람잡이 장면, 우주의 느낌을 주는 등장인물들의 이름들, 종이비행기. 이 모든 것의 연계성과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넷째 날 펼쳐진 전주상업정보고등학교 ‘ING’ 팀의 <그날의 외침>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 그중에서도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에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만든 창작 초연의 작품이다. 다른 팀과 색다른 부분이 많았다. 객석으로 등장을 시작하면서 다이내믹한 장면들과 군무, 음악의 강렬함 속에서 느껴지는 긴박함 등 다른 팀과는 차별화된 느낌이었다. 특히나 무대 세트는 물론, 공간에 대한 활용이 잘 이루어져 다양한 장면 연출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각각의 배우들의 발성도 좋았고, 1인 다역으로 표현하는 한 배우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개성 넘치는 감초 연기를 연달아 표현해야 했음에도, 안정적이면서 맛깔스럽게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든, 일본군이든 자신의 역할에 흠뻑 빠져 놀라운 집중력과 표현력의 넓은 폭에 놀라웠다. 일본군들에게 핍박을 받는 장면, 일본군을 시해하는 장면들이 청소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꽤나 높은 수준으로 표현됐다. 그러나 몇몇 장면은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느낌이 들면서 청소년 연극제와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도 들었다. 매년 강렬한 연기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ING'팀의 색깔은 계속 유지되어 있는 것 같아 좋았고 작품의 주제도 잘 표현된 것 같다.
관객의 부재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함께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방구석 1열을 지키며 높은 접속자 수와 실시간 댓글 참여의 폭발적 반응에 뭉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상이 가진 한계와 더불어 연극과의 괴리감으로 관람은 답답했고, 음질의 상태도 좋지 않았으며, 현장에 가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졌던 사명감, 책임감 그리고 그들이 느꼈을 성취감. 현장감만 빠진 감동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