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고 일하며 성장하는 공유 공간
글 조재원 공일스튜디오 소장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 연구 소장의 9월 17일 자 인터뷰 기사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코로나가 발발한 이후 현재 시점까지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방역의 가장 핵심이 되는 원칙이 되었다. 사람들은 거리두기의 상황이 일시적일 것으로, 일정한 시간이 지나 종료될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다가, 지금은 이 상황이 끝이 나기는커녕 새로운 국면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종결된다고 해도 지금 멀어진 사회적인 거리가 이전과 같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미래학자의 예견이 나오는 지금, 공유공간에 대한 논의는 이제까지 익히 보고 들어왔던 현상과 개념에서 벗어나 더욱 근본적인 데서 논의의 출발점을 다시 찾아야 한다. 버블을 지우고 핵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핵심은 ‘공유’가 지향할 만한 가치이기 전에 절실한 ‘필요’에 근거하고, 물리적 공간일 뿐 아니라 규범이라는 점이다.
공유공간이 현대 도시에 필연적인 선택지로 등장한 데에는 도시의 중심에 집중되기 마련인 기반 시설과 그에 따른 편중된 부동산 가치와 소유구조에 있다.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소유구조는 부동산을 상품으로서 교환하기 용이하도록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높은 지가의 도시에서 한 사람이 혹은 한 가족이 사용하는 최소의 공간 기준들은 점점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개인 공간을 축소하는 대신 함께 쓰는 공용부를 느슨한 공동체의 거실이자 시간을 나눠 때때로 나의 거실이 되는 공유주거, 책상 하나로 내 개인 소유가 줄어드는 대신 회의실과 휴게실 등 다양한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정보를 나누는 공유오피스가 확산된 배경에는 이런 필요가 존재한다. 공간을 나누어 쓰지만 독서실을 공유공간이라고 부르지 않듯, 공간을 물리적으로만 나누어 쓴다고 해서 공유공간인 것은 아니다. 농업 시대에는 생산을 위해 땅이 필수자원이었듯이, 정보화 시대에는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더하여 인적 네트워크가 필수자원이 된다. 공유공간을 함께 쓰는 구성원들은 한 공간을 나누어 쓰는 규범을 함께 만들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고 문화를 발전시켜나가는 느슨한 공동체를 이룬다. 한 공유공간을 다른 그것과 다르게 만드는 정체성은 물리적 공간의 구조와 함께 유기적으로 조직되고 성장하는 공유의 규범과 가치다.
사진제공 진효숙_건축전문사진작가
필자가 계획했던 서울시 성수동의 공유오피스 카우앤독은 소셜벤처의 협업공간으로 계획되고 운영되고 있다.
CoW는 Co Work, DoG는 Do Good을 의미한다. 재무적인 이윤뿐 아니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향하는 소셜벤처 창업자들이 동료를 만나 협업하고, 투자자를 만나고, 성장하는 거점으로 계획되었고, 건물이 완공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건물뿐 아니라 주변 지역으로 소셜벤처와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가 확장되었다.
일층은 누구나 머물 수 있는 코워킹카페, 이층은 개발자 커뮤니티의 공간, 삼층과 사층은 공유오피스로 책상 단위, 작은 구획 공간 단위로 사무실을 임대하여, 회의실, 켄틴 등을 공유한다. 공유공간으로서 카우앤독 공간을 계획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어느 공간도 인접한 공간과 완벽하게 차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시각적으로 소리로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간섭하지 않는 정도로 주변과 공유된다. 구획된 공간을 시간을 나누어 사용할 수 있지만, 독점할 수 없고, 서로의 활동을 간섭하고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정보의 흐름, 개방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한 공간을 개인과 그룹의 의도에 맞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패턴으로 이합집산 가능한 일련의 유닛가구를 계획하기도 했다.
역시 필자가 임팩트 부동산 투자사 공공그라운드의 의뢰를 받아 계획한 공공일호도 공유공간이다. 서울시 혜화동의 유서 깊은 근대건축물 ‘샘터사옥’을 리노베이션 한 건축물이다. 교육과 미디어의 혁신적인 플레이어들이 생태계가 자라날 수 있는 거점으로 계획되었다. 현재 공공일호는 학생 주도의 프로젝트 베이스 교육이 이루어지는 실험학교인 거꾸로 캠퍼스와 혁신교육의 자료들을 아카이브 하는 아카이브 도서관이자 교육자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온더레코드’, 샘터사옥의 전통을 이어가 실험적인 공연을 지원하는 ‘파랑새소극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의 공공일 스테이지와 파랑새극장, 루프탑의 공공일 테라스는 이 공유공간이 도시에 내보내는 메시지들을 발신하고, 이 공간이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많은 콘텐츠들이 도시와 만나는 접점이 된다. 이처럼 공유공간은 내부의 구성원에만 열린 공간이 아닌 도시와 공감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공이 조성하지 않더라도 도시 공유지의 역할을 한다.
사진제공 진효숙_건축전문사진작가
이런 점에서 공유주거도 예외가 아니다. ‘함께 살고 일하며 성장합니다’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 하여 공유 오피스와 공유주거를 공급하고 있는 로컬스티치라는 기업의 모토다. 공간의 입지에 따라서, 리노베이션 하는 건물의 구조에 따라서 풍부하고 다양한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도시의 창작자들의 라이프스타일 커뮤니티 또한 성장한다.
위쿡은 공유주방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으로 위쿡이라는 공유공간을 운영한다. 다양한 방문자들에게 열린 카페와 라운지, 루프탑과 공유오피스 그리고 주용도인 공유 주방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음식을 중심으로 협업,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위에 예시로 든 사례 공간들 외에도 공유가 필요한 필수적인 기능 공간, 모임, 교류, 소통을 위한 공간들을 기반 시설로 하여 다양한 공유공간들이 개인과 공동체의 일상 공간의 선택지를 풍요롭게 만들고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첫 문장을 다시 환기하자면, 필자는 토마스 프레이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가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으로 인해 더욱 부각되었다고 생각한다. 일터와 학교, 상업적인 공간인 카페, 식당 등 식음 공간을 비롯, 공공시설인 전시관, 도서관 등이 모두 문을 닫고 사회적인 활동량이 최소화된 채로 살아온 지난 몇 달간의 경험을 상기해 보자. 교육은 인터넷 강의로 대체되고, 각종 업무회의도 줌 등의 온라인 협업 툴을 이용하여 대체되고, 외식은 배달서비스를 이용한 식사로 해결하고, 온라인 버추얼 전시로 전시장의 콘텐츠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던 많은 것들이 결핍된 시간이었다.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됨으로써 느끼던 소속감과 정체성, 일터와 학교 혹은 거리에서의 우연한 만남에서 받는 영감과 자극, 함께 먹고 마시는 식탁에서 느끼던 시간과 공간,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서야 이들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언택트로는 대체할 수 없는 도시의 생명력인 것이다.
지난 몇 달, 가족과 가까운 지인만을 만나는 집과 거주지 근처로 활동의 영역이 줄어들었다. 일하고 공부하고 쉬기에 넉넉한 물리적 여유 공간을 갖춘 ‘집’을 소유한 개인이나 가구는 매우 드물다. 공간이 확보된다고 해도 사회적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원룸, 고시원 등의 최소의 공간에서 거주하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이 시간은 특히 고통스러운 시간일 수밖에 없다.
도시 공유지로서 공유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공동의 자치규범과 문화라는 점은 여기에서 중요하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공공간이 방역을 위해 불가피하게 문을 닫게 되더라도 공유공간의 경우, 느슨하기는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가 규범을 조율하여 감염 위험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개인 공간에 갇히는 대신 여전히 안전한 거리를 두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거실과 주방, 넓은 사무실의 기반 시설을 나의 것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앞당긴 미래의 위기들은 결코 개인이, 한 가족이 대응할 수 없다. 기후 위기며, 양극화의 문제, 노동과 고용의 문제, 혁신의 숙제들은 함께 지혜를 모아 대응할 수밖에 없다. 함께 살고 일하며 성장하는 공유 공간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일 수 있는, 함께 모여 이 숙제들을 풀 수 있는 도시의 마지막 보루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