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창간33년, 문화저널이 지켜온 기록의 힘
전라도의춤 전라도의 가락
우리 소리와 우리춤, 가치발견과 맥 잇기
1992년,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과 지역 문화의 맥을 잇기위해 시작한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을 담은 문화저널 발간을 위해 지역 곳곳을 들여다본 편집위원들과 기자들은 소중한 우리 지역 문화유산인 춤과 가락이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현실을 목격했다. 그 안타까운 현실에 자랑스러운 우리 것들을 함께 지켜나가고자 수십 년 명맥을 이어온, 또는 잊혀가던 전통을 무대에 올렸다.
국악 공연이 흔치 않던 시절 명인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무대.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은 사라져가는 전라도 지역의 춤과 가락을 무대에 올려 지역 문화를 되살리고, 지역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명인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했다.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무대에 오른 전통문화예술 보유자들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지역 전통 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통로를 마련하는 성과를 이뤄냈으며, 전통의 계승뿐 아니라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창작 작업과 젊은 예술인들을 발굴했다. 무대에 초대됐던 숨어있는 명인들 중 세상을 떠난 이도 있지만 이 공연을 통해 그들이 남긴 전통예술의 멋과 정신은 이어졌다.
민간단체로는 유일하게 28년 동안 신념을 가지고 이어온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은 예향의 고장 전주에서의 공연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지금까지 200여 팀, 마흔 개의 춤과 마흔다섯 개의 가락 무대로 꾸며진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그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숨은 명인과의 만남
넓은 평지와 바다, 산을 모두 품고 있는 전라도는 풍요로운 땅을 기반으로 전통춤, 판소리, 농악, 산조, 민요, 시조, 민간풍류 등 다양한 춤과 가락이 발달했다. 특히 전주는 조선 후기 성행한 대사습 대회가 베풀어지던 곳으로,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대내외적 사정으로 단절됐지만 1974년 부활한 전주대사습놀이는 현재까지 전국 규모의 국악 경연대회로서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 국악 최고의 등용문으로 장원을 수상한 자들은 그 실력을 인정받고 폭넓은 활동 기회를 보장받기 때문에 수많은 예인들이 전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서양문화와 음악이 들어오고, 다양한 대중문화가 발달하며 전통은 어렵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취급되기 일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우리 것을 되살리기 위해 문화저널은 숨은 명인들을 발굴했다. 이전에 활발히 활동했으나 경력이 단절된 사람들, 무대에 본격적으로 서지 않은 사람들, 기능은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을 통해 다시 무대 위에 섰고 예술성과 기능을 가진 숨은 명인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강정열, 김일구, 나금추, 안숙선, 유명철, 장금도, 김무길, 이생강, 김일륜, 이태백 등 전라도의 예맥을 이어온 명인들과 함께 시작한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은 고창농악, 임실상여소리, 위도 띠뱃놀이와 배치기 소리, 이리향제줄풍류, 순창금과들소리, 전라좌우도 농악, 익산목발노래 등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속음악과 상쇠춤, 한량춤, 소고춤, 살풀이, 쌍채북춤, 승무 등 전통 춤, 민요와 범패, 영산작법, 소리까지 전통 가락 선보이며 우리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더욱 깊어진 춤과 가락
숨은 명인 발굴 10년, 그동안의 작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더했다. 숨어있는 예인 발굴에 이어,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통해 더 많은 무대와 명인들을 소개한 것.
2002년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열한 번째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퓨전국악 무대를 올렸다. 재즈M과 천지소리의 퓨전타악이 그것. 이후로 2005년 열네 번째 무대에서 퓨전그룹 오감도가 참여, 2013년 스물두 번째 무대에서는 ‘창조의 오늘, 전통의 미래’라는 주제로 가야금 연주자 백은선과 기타 연주자 안태상의 무대나, 인디밴드 스타피쉬와 소리꾼 이용선의 만남 등 전통 음악에 현대 음악을 더한 퓨전을 시도했다. 특히 2013년도 공연은 전라남•북도에서 전통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젊은 예인들과 이의 현대적 변용을 추구하는 창조적 계승자들의 무대로 이제까지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이 지켜내고자 했던 사라져가는 전통을 지켜내는 꾸준한 노력과, 젊은 시선으로 전통을 바라보는 시도를 통해 국악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줬다.
또한 다양한 주제로 무대를 짜임새 있게 기획했는데, 2004년 열세 번째 무대 ‘전라 좌우도 풍물굿의 만남’은 처음으로 전라 좌우도 풍물굿을 한자리에 선보인 의미 깊은 공연이었다.
춤과 가락을 한 자리에서 소개하던 기존의 틀을 벗어나 춤만 집중적으로 소개한 2009년 열여덟 번째 무대나 산조만을 조명한 2010년 열아홉 번째 무대도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은 ‘산조의 밤’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악기와 다양한 유파의 산조를 선보였다.
전통예술, 대를 잇다
전통문화의 맥을 잇기 위해 시작한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이 대를 잇는 젊은 예인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국악의 대중화나 새로운 작업에도 열정을 기울여 젊은 예인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젊은 명인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2005년과 2006년에 진행한 ‘스승과 제자, 창조의 아름다움’ 무대, 2012년에 진행한 ‘대를 잇다’ 무대에서는 스승과 제자를 한 무대에서 소개하며 혈연과 사제관계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국악의 허리 세대, 중견 예인들을 조명했다.
명인의 아들•딸, 명인의 계승자라는 것은 단순히 기능을 배우는 것이 아닌 사람에서 사람으로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역사를 간직한 기능을 배우는 것. 이전 세대의 화려한 영광을 이어받아 그것을 발전시키고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감, 새로운 세대에게 그 역사를 전달하겠다는 의무감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짐을 지고 험난한 수련의 길을 통해 국악의 오늘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가락, 우리 춤의 현재이다.
국악의 대중화, 건강한 통로를 열다
초반에는 숨어있는 명인 발굴에 집중했다면, 회차를 거듭해 갈수록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익히 알려진 명인들을 무대에 올려 접근성을 높였다. 그뿐만 아니라 2004년, 2006년, 2014년에는 서울로, 2008년에는 남원으로 무대를 확장시켜 더욱 많은 시민들에게 우리 전통의 멋과 흥을 알렸다. 김무길, 이일주, 강정열, 장금도, 유명철, 나금추, 김광숙 등 내로라하는 명인들이 최고의 소리와 가락, 몸짓으로 무대에 섰다.
허튼가락 산조의 발견 혹은 확장
전라북도는 판소리의 본거지였으며, 좌우도 농악의 본산이고, 전북의 완제시조, 줄풍류는 전국적으로 그 위상이 높다. 풍부한 음악 유산을 가지고 있는 전북은 산조 역시 많은 명인들을 배출했으나, 오늘날 산조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산조의 밤’을 주제로 전라도에 뿌리를 둔 산조에 집중했다.
기악독주곡 중 하나인 산조는 그 한자를 풀어 ‘허튼 가락’, ‘흩은 가락’아라고 부르는데, 가락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흐트러져 있는 산조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정형화된 장단 속에서 즉흥적으로 흐트러지는 산조는 좋은 스승 밑에서 오랜 시간 배우고 실력을 갈고닦아야 완성되는 음악인만큼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매우 특별하다. ‘산조의 밤’은 각 악기 산조별 명인들의 농익은 연주에 새로움을 더해가는 젊은 연주자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무대로 꾸몄다.
또한 마당을 무대 삼아 관객과 소통해온 국악의 일상성을 되살리기 위해 정형화된 무대와 형식을 탈피한 ‘하우스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하여 산조의 특성을 부각시키고, 연주자와 더 가까이 소통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