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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 | 문화이슈 [문화이슈]
천년 빗장 푼 전라감영
전라도 천년, 그 역사의 깊고 웅장함을 담다
김하람(2020-11-06 15:00:53)

천년 빗장 푼 전라감영

전라도 천년, 그 역사의 깊고 웅장함을 담다



큰 기대 속에서 진행되어온 전라감영 복원공사가 마무리 됐다.
지난 10월 7일, 70년여 년 만에 옛 모습을 되찾은 전라감영이 위용을 드러냈다.
1400년대 태종과 세종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던 호남 최고의 지방 통치기관이다. 감영의 공간 역시 1만 2,000여 평에 달하는 부지에 40동 이상의 건물이 있는 거대한 규모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선화당 등을 일본의 청사로 쓰면서 많은 건물이 철거되어 선화당, 작청, 진휼청, 통인청만 남게 되었고, 1951년 폭발사고로 남은 건물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이듬해인 1952년 전라감영 터 위에 전북도청사가 지어지면서 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전라감영은 땅속에 묻히게 됐다.


그러나 1996년 전북도청사의 이전 계획과 함께 전라감영 복원에 대한 논의가 제기됐다. 숱한 논의 끝에 2017년부터 총사업비 104억 원을 투입해 구도청사를 철거하고 복원 작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2020년 10월, 조선시대 때의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전라감사가 업무를 본 선화당 등 전라감영 동편의 건물들이 20여 년 만에 복원됐다.  김하람 기자


전라감영 복원 과정은 지난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대한민국 최고의 무형문화재와 장인들의 기술로 복원된 전라감영은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선화당(감사 집무실)의 위치를 찾는 일에 공을 들였다. 일제 강점기 때 남겨진 선화당 도면과 19세기 후반 고지도,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구도청 건물 도면을 참고했지만,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다행히 발굴 과정에서 우물이 발견되면서 우물을 기준으로 실제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됐으며, 정확한 위치에 복원할 수 있게 됐다. 선화당 건물은 구한말 미국에서 파견 온 공사 포크가 찍은 사진을 참고했다.


다른 지역의 감영과 달리 단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은 만큼 위치의 역사적 의미가 깊은 전라감영이 정확한 위치에 복원되어 공간의 원형성과 진정성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라감영 복원은 단지 건축물 복원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전주의 정신과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라며 “동학농민혁명 등 근대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이자 전라도 번영의 상징이었던 전라감영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핵심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시키겠다”고 전했다.


호남의 정치·문화의 중심지, 전라감영
전라도를 관할한 전라감영.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친 말인데, 전라감영이 나주가 아닌 전주에 설치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세종실록에는 ‘평안도 평양감영, 전라도 전주감영, 강원도 원주감영, 황해도 해주감영 등이 모두 서울에서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전주가 나주보다 한양에서 가까웠던 게 그 이유라는 것.


전주가 교통의 요지이자 생산물이 풍부했다는 것도 이유였다. ‘감영을 설립할 곳으로 나주는 하도(下道)에 치우쳐 있어 온편치 못하고 전주는 상도(上道)에 치우쳐 있으나 영남과의 접경이 멀지 않으며 호서와도 가깝고 물력(物力)도 나은 듯하다’는 선조실록 기록이 있다.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것도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전주는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李翰) 등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다. 비슷한 예로 함경감영이 있다. 함경감영은 함흥에 설치됐다 영흥을 거쳐 다시 함흥으로 옮겨졌는데, 함흥은 태조가 살았던 곳이고, 영흥은 태조가 태어난 곳이다.


감영은 조선시대 각 도에 파견된 지방 행정의 최고 책임자가 거처하는 관청이다. 이곳에서 관찰사, 도백(道伯) 등으로도 불렸던 감사가 행정권은 물론이고 군사권과 사법권까지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다.


전라감영에는 전라감사가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한 선화당과 연신당, 감사 가족들이 지낸 내아와 내아 행랑, 비서실장 격인 예방비장이 일하는 응청당, 보좌관 격인 비장들의 집무실인 비장청 등이 있었다.


관찰사 심부름꾼이자 전주대사습놀이 주역으로 알려진 통인들 대기소인 통인청, 약재를 다루는 심약당, 법률을 다루는 검률당, 한지를 만드는 지소, 책을 출간하는 인출방, 진상품 부채를 만드는 선자청도 있었다.




전라감영, 옛 위용 드러내다
복원된 건물은 전라감영 동쪽 부지의 선화당 및 관풍각, 연신당, 내아, 내아행랑, 외행랑 등 7개의 핵심건물이다.


웅장한 외관과 우아한 곡선의 팔작지붕이 돋보이는 선화당은 관찰사 집무실로 ‘임금의 덕을 널리 베푼다’는 의미이다. 선화당 내부에는 1884년 전라감영을 방문한 미국 공사관 무관인 조지 클레이튼 포크(George Clayton Foulk)의 사진자료를 재현한 6폭의 디지털 병풍이 있다. 선화당 동쪽에는 관찰사가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인 관풍각이, 선화당 북쪽에서는 200년 된 회화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회화나무 근처에는 관찰사가 휴식을 취하던 연신당, 관찰사 가족들이 지내던 내아와 내아행랑이 있다. 다가공원에 있던 전라감사 선정비도 이곳으로 옮겨졌다.



찬란한 꽃, 천년의 열매
10월 7일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 기념식은 코로나19 여파로 행사 규모가 최소화됐으나, 유튜브 라이브로 생중계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송하진 전북도지사, 김영록 전남도지사, 송지용 전라북도의회 의장, 김승수 전주시장, 강동화 전주시의회 의장, 이명우 전라감영재창조위원회 위원장, 진교훈 전북경찰청장, 김정렬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 이정린 전라북도의회 문화건설안전위원장, 김승섭 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원장, 이재운 전라북도 문화재위원장, 최기영 국가무형문화재 대목장이 참석했다.


‘찬란한 꽃, 천년의 열매 - 전라감영’을 주제로 열린 기념식은 1884년 전라감영을 다녀간 미국 대리공사 조지 클레이튼 포크 (George Clayton Foulk, 1856-1893)의 사진 속에 담겨진 승전무(국가무형문화재 21호)와 전라감사 교대식 공연으로 시작됐다.


이후 복원사업 경과보고와 기념사, 환영사, 축사, 희망보감 전달식, 현판 제막식 등이 이어졌다. 현판은 일제 강점기 때 찍은 사진 속에 존재하는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조명해 판각해낸 현판이다.


부대행사로 200년간 전라감영을 지켜온 회화나무 씨앗과 전라감영 흙을 드론 3대에 매달아 동학농민혁명 발원지인 정읍과 고창, 6·25 전쟁 피해 지역이자 드론활용센터기 유치되는 남원, 전북의 새로운 미래인 새만금으로 날려 보내는 등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행사는 전라감영 청소년 문화유산 해설사들의 현장투어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전라감영, 과거와 미래를 잇다
전라감영은 현재 서쪽 부지 등에 대한 2단계 복원을 검토 중이며, 활용방안이 정리되기 전까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비할 방침이다. 기념식 이후 10월 14일,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함에 따라 70년 만에 복원한 전라감영을 시민과 관광객에게 개방했다.


전라감영은 하절기로 구분되는 이달 말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방역관리요원 3명을 배치하고, 입장인원을 250명으로 제한하며, 출입구도 내삼문 한곳만 운영한다.


다시 태어난 전라감영에서는 역사와 문화를 담은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진행된다. 전라감영의 역사와 건축 등의 내용을 전문가로부터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전라감사 지식투어’,  전라감영의 진상품인 부채, 한지 등을 만들고 체험할 수 있는 ‘전라감영 진상품 만들기’와 같은 과거 조선시대를 엿볼 수 있는 활동과 더불어 전라감영의 창건과 역사적 변화 등을 주제로 한 ‘전라감영 미디어파사드’와 같은 현대적 예술이 한 장소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11월부터는 전라감영 역사추리 수사게임 형식의 ‘전라감영 엑스파일’과 전라감영 건물의 숨겨진 내용을 담은 ‘전라감영 보물찾기’등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전라감영에 상주하는 해설사들을 통해 하루 3차례(11:00, 14:00, 16:00) 전라감영의 역사와 문화 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주말에는 청소년 문화유산 해설사들이 설명에 나선다.


복원된 전라감영 건물에서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등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실감형 콘텐츠도 만나볼 수 있다. 선화당 건물에는 전라감영의 역할을, 관풍각에서는 전라감사의 순행 장면을, 연신당에서는 전라감사 중 특별한 인물과 감영 건축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내아 행랑에는 아직 복원되지 않은 선자청과 지소, 통인청의 콘텐츠 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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