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 군산 ‘우체통 거리’
주민들이 만드는
특별한 힘
글 오민정 편집위원
개발과 재생에 대한 시선
최근 나름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인 질문을 받았다. 누군가 “도시재생과 재개발의 차이”에 대해 물음을 던져왔던 것이다. 물론, 그는 도시재생과 재개발의 사전적 정의를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의미를 알면서도 내가 아는 선에서 도시재생과 재개발의 사전적인 차이(거기에 덧붙여 약간의 근거법령을 들먹이며)를 씁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 며칠 동안 그 물음은 뇌리 속에 오래 남았다. 비록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냉담하다고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아마도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수많은 도시재생사업들이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상흔을 도시재생의 동력으로
전북에서 도시재생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한 곳이 바로 군산이다. 군산은 2009년부터 쇠퇴한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과 도시재생선도지역 활성화사업을 추진해왔다. 2013년까지 추진한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은 근대 역사박물관 주변 문화재를 대상으로 근대문화벨트화 사업과 일제강점기 주거지역을 대상으로 한 경관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2014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 월명동 도시재생선도사업, 중앙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산북동 장전•해이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 및 유관사업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도시재생을 통한 원도심 살리기에 투자를 해왔다.
군산이 이렇게까지 도시재생과 원도심 살리기에 투자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군산은 내항 기능이 이전되면서 원도심의 인구가 감소하고 상권의 침체가 일어났다. 인구의 74%가 감소했다고 나오는 자료는 짐작건대 아마도 도시재생사업이 시작하기 전, 내항이 활성화되었을 때에 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활성화되던 시기에 비해 원도심에 살던 사람의 4명 중 3명이 떠난 셈이다. 2019년 도시재생활성화지역 지표 기준(읍•면•동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도 약 96%로 진단됐다. 그만큼 지역적으로 도시재생의 필요성이 절실했고, 지자체와 중간지원조직이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노력해왔던 과제였다.
군산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성과로는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이다.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이 많은 도시다.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도 경상 쪽의 근대문화유산이 일제저항중심의 유산이라면, 전라 쪽의 근대문화유산은 대부분 일제 약탈의 상흔이다. 군산은 예로부터 호남평야에서 수확한 곡물이 모이던 곳이다. 그래서 모인 곡물들을 저장하던 ‘군산창’과 이를 지키기 위한 수군기지인 ‘군산진’이 있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곡물을 일본으로 운송하는 주요 반출항으로 이용되며 일제 수탈의 근거지가 됐다. 당시 1만 명가량의 일본인들이 거주하였다고 하며, 인천과 마찬가지로 세관과 은행을 비롯하여 발산리 구 일본인 농장 창고(창고가 아니라 ‘금고’였다고 한다), 일본식 가옥(히로쓰가옥), 이영춘 가옥, 동국사 등의 근대건축물을 비롯한 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있다. 군산은 이러한 유산을 철거하는 대신 도시재생을 위한 근간으로 활용했다. 비록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의 근대문화유산의 활용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다크 투어리즘’ 등의 일환으로 보존과 활용의 가치가 커진 덕분이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시재생 노력은 통계로도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데, 2016년 기준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유치, 관광객들이 근대역사를 체험하고 이를 지역 상권과도 연결해 새로운 활력을 마련하고 있다.
주민들이 만드는 특별한 힘 “우체통 거리”
하지만 도시재생에도 위험요인이 있다. 특히 군산과 같이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 중심의 콘텐츠를 형성한 도시재생의 경우, 문화적 트렌드나 여가 등으로 인해 공간 선호도가 변화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적 위험에 취약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더해져 많은 도시들이 진행했던 관광 콘텐츠 중심의 재생과 활성화는 이전에 비해 동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산의 힘을 믿는 데에는 ‘주민들의 힘’이 있다. 월명동은 군산시청 이전으로 상가가 황폐화되었던 지역이다. 하지만 해망굴이나 월명공원 등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지역자원이나 역사적 인물, 스토리가 있는 골목 하나 없었다. 이에 상가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활성화를 위해 ‘도란도란 공동체’를 결성,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1950년부터 자리한 군산 우체국 본점에서 착안하여 우체국과 협력하여 폐우체통에 그림을 그려 거리를 꾸미고 활동을 시작했다. 우체통 거리가 중요한 이유는 다름 아닌 ‘주민들의 힘’이다.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바꿔 전문가들의 안목과 스토리텔링이 아닌 주민들의 시선에서 출발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운영해나가는 동력으로 마련했다는 점이다. 처음 자발적인 모임에서부터 시작했던 활동은 이후 주민 스스로 ‘도란도란 우체통 거리 경관협정 운영회’를 결성하고 운영, 2018년부터 비용과 프로그램 등을 직접 마련한 ‘손편지 축제’를 열기도 했다. 행정의 도움 없이 주민들이 만든 거리와 축제는 어느새 군산의 자랑이 됐고 입소문을 통해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혹자는 그리 세련되지 않고, 특별할 것 없는 거리라고 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처음에 이 사례를 접할 때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향수를 콘셉트로 한 비슷한 관광사업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사업의 진행과정을 보며 주민들이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고, 직접 지역의 자원을 탐색하고 연대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콘텐츠의 독특함이나 세련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힘이야말로 도시재생의 특별한 힘이자, 궁극적 목표라는 생각을 했다. 대다수 관주도의 관광형 재생사례들이 그러하듯 방문객의 수치, 그럴듯한 성과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 재생의 방향을 주민에게 돌리는 것, 그것이 바로 우체통 거리를 만든 주민들의 힘이다.
재생, 함께 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
군산의 도시재생은 현재진행형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도시재생의 성과들과 연계하여 근대문화유산과 연계한 경관재생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폐철도, 수협창고 등 핵심 유휴부지를 문화적 거점으로 개발하고,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주환경의 개선과 주민역량강화를 위한 사업에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군산의 도시재생 과정은 빠른 속도만을 우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많은 도시재생 사례들이 거쳤던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빠른 성과를 내는 도시재생지역 중 젠트리피케이션에 발목을 잡혀 재생사업 이후 오히려 쇠락하는 사례를 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행정과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재생사업이라 하더라도 기한이 정해져 있는 사업이기에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예산이나 시기의 문제로 한정 짓지 않고 최선의 아이디어가 아니라면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추진 과정과 특별한 콘텐츠 개발을 통한 활성화와 관광객, 경제적 수치로 대치되는 계량적이고 획일적인 지표 대신 지역에 맞는 자원의 활용과 더불어 ‘주민의 삶’에 집중하고, 재생의 과정을 주민 동의의 과정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야말로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도시재생의 힘이다. 기존의 도시재생이 지역자원을 활용한 경관개선에서 출발, 관광형 콘텐츠를 구축했다면 이후 변화에 따른 위험요소를 대비하며 좀 더 주민들의 생활권으로, 문화에 집중하며 조금씩 도시를 바꾸어 나가는 힘. 그것이 바로 앞으로의 도시재생의 방향, 지속가능한 도시의 힘이자 또한 군산의 힘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