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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 | 기획 [기획 연재]
마을의 변화를 이끈 문화의 힘 | 방랑싸롱, 길거리 책방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③
오민정(2021-03-04 10:43:14)

기획 |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 방랑싸롱, 길거리 책방


마을의 변화를 이끈 문화의 힘

오민정 편집위원


도시가 바뀌어 가는 이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도시를 계획하고, 개발하는 근원적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도시를 개발하고, 사람들이 도시의 ‘발전’을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궁극적 목적은 ‘삶의 행복’일 것이다. 삶의 터전이 되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시민들이 행복한 삶의 여건과 환경을 갖추기 위한 것. 하지만 공간이나 물질적인 변화 외에 도시가 시민들의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그 사례를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순창에서 찾아봤다.


순창은 인구 3만 명이 안 되는 작은 소도시다. 아마 ‘고추장’이라고 하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표 도시가 바로 순창일 것이다. 대기업에서 지역명을 통한 상품 브랜딩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어쨌든 순창은 이후 체험관 및 마을조성, 축제, 사업소 조성 등 전통 장류를 중심으로 도시를 특화해 왔다. 하지만 도시의 유명세와 인지도, 장류로 대표되는 콘텐츠의 성장에 비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문화실험의 경험이 순창의 문화정책으로 반영되다 : 방랑싸롱

2016년은 순창에 귀촌 주민을 중심으로 지역에 새로운 문화실험의 싹이 튼 해였다. 순창에서 재즈를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기획을 시작한 카페 ‘방랑싸롱’과 한 달에 한 번, 주민중심의 프리마켓을 이어오고 있는 ‘촌시장’이 시작됐다. 이 중 처음 금산여관의 옆에서 시작한 ‘방랑싸롱’은 20년 넘게 여행업에 종사하던 장재영 씨가 순창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여태까지의 자신의 여행 경험을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그는 순창에 내려와 고추장 이외에도 사람들이 순창에 와서 어떤 콘텐츠로든 건전하게 소비하고 가는 여행을 오게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를 거점으로 자체사업 및 다양한 공모사업과 연계하여 ‘순창 VIBE’, ‘순창 재즈 페스티벌’, ‘청소년 독서문화캠프’, ‘인생나눔학교’, ‘청순밥상’ ‘할미넴’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은 이전의 장류중심, 관광객중심의 도시콘텐츠가 아니라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고 참여하는 순창만의 문화콘텐츠가 됐다. 특히 마을 초창기부터 뮤직 페스티벌을 꿈꾸며 카페를 중심으로 진행했던 소규모 정기 재즈 공연은 주민들, 특히 지역 할머니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여 이후 주민들의 다양한 음악적 수요를 확인하고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모여 문화가 되고, 문화예술육성정책에 반영되었으며 도시재생 사례가 됐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문화기획을 해야겠다’고 정해놓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지난 4년 반 동안의 경험으로 예상치 못한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까지는 지역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으로 시작한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문화기획이 되고 도시재생이 됐던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어떤 분야로 국한해서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자유롭게 넘나들며 스펙트럼을 키워가고 싶어요. 그리고 이 방랑싸롱은 주민들과 소통하는 공간이자 공간과 경험을 기반으로 지역 청년들에게 다양한 문화활동을 실험해보고 기회를 열어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장재영 씨의 바람처럼 방랑싸롱은 지역 청년들에게도 활동의 거점이 되고 있다. 2020년 방랑싸롱에서 진행했던 활동들을 기반으로 순창 최초의 음악 밴드가 결성되기도 했다. 작곡•작사부터 공연까지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밴드 ‘페이지(page)’는 순창에서 나고 자란 이덕현(25), 김관우(26)씨로 결성됐다. 올해 방랑싸롱을 기반으로 ‘방랑싸운드’라는 타이틀로 직접 기획공연과 다양한 공모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 순창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에요. 이전에는 서울에 가서 음악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지역에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죠. 정말 순창에서 밴드를 결성하리라고는 상상해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방랑싸롱 같은 공간이 생기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지역 뮤지션들과도 네트워크가 생기고 하니까 여기에서 시작해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서울에서는 기회를 마냥 기다려야 했지만, 여기서는 만들어가는 기분이에요. 네트워크도 경쟁이라기보다 더 끈끈한 느낌도 들고요. 1집 앨범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올해는 ‘방랑싸운드’라는 이름으로 방랑싸롱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구상해보고 있어요. 무슈(장재영의 별칭)가 저희가 기획하는데 공간적인 도움이나 활용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거든요. 현재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약간 유희열의 스케치북 느낌으로 생각했는데, 이것 말고도 라이브 송출도 하고 유튜브도 준비해 보려고요.” (이덕현)


“이전에 대학교 때문에 목포에서 밴드 경험이 있어요. 2016년도, 2017년도였는데 그때 목포가 순창하고는 많이 달라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랄까. 목포에서는 버스킹을 해도 자유롭고 그랬는데 순창에서는 달랐거든요. 당시에 순창에서는 공연문화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히지 않아서 공연은 동네잔치이거나 아니면 무대는 함부로 올라갈 수 없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버스킹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죠. 그런데 지난해에는 문화활동에 대한 인식개선이 됐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어요. 방랑싸롱에서 공모사업을 통해 ‘순창 VIBE’사업을 한 것도 순창에서는 큰 화제가 됐고, 네트워크도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이런 활동이 이전에는 순창에서는 아예 없었거든요. ‘로컬 뮤지션’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죠. 저희가 1호입니다.” (김관우)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지역을 연결하다 : 길거리 책방

순창에는 금요일마다 열리는 특별한 책방이 있다. 바로 김영연 씨가 운영하는 ‘길거리 책방’이다. 주민들에게 ‘길책 주인장’으로 불리는 김영연 씨는 매주 금요일, 빨간모자와 해바라기가 그려진 에이프런을 입고 120 여권의 책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난다. 순창에 온 지는 1년 1개월, ‘길거리 책방’을 운영한 지는 벌써 5개월이 됐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 도서관, 책방을 하거나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김영연 씨는 퇴직 후 귀촌한 순창에서 이사하면서 가지고 온 많은 책이 아까워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집 한 칸을 내어 동네 도서관을 만들까도 고민했지만, 아이들이 적은 순창의 특성상 차에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팝업 형태로 책방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까지 창림동 문화마을의 공방 마당을 빌려서 금요일마다 진행했으나,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요일 부엌 ‘마슬’의 실내공간을 빌려 진행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면 단위의 초등학교 앞에서 책방을 열고 싶은 계획도 가지고 있다. 꼭 판매 목적이 아니더라도 많은 아이들이 책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이 길책 주인장의 바람이다.


“책방에 오시는 손님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귀농귀촌한 분들이 더 많이 찾아주시는 편이에요. 찾아오시는 분들이 매번 많지는 않지만 찾아주셨던 분들이 단골이 많이 됐어요. 아이들과 함께 찾아오시기도 하고, 의외로 40대~50대 분들이 많이 찾아주세요. 그리고 예쁜 그림책을 많이 찾으시는 편이에요. 지역 특색 같기도 하고, 그림책이 주는 특별한 감동 때문인 것 같아요.” 


책방을 하면서 처음에는 개인적인 꿈을 이루는 것, 가지고 있는 책과 보여주고 싶은 책 위주로 책을 선정하고 나눴는데 5개월이 지난 지금은 손님들에게 선보일 책을 고민할 때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떠올리게 됐다. 


“길거리 책방을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책의 필요성보다도 이걸 가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에요. 가끔은 직접 배송을 해주기도 하는데, 이런 활동을 통해 사람을 사귀고, 연결해 나가는 것 같아요. 귀촌 청년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주민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필요한 캠프 같은 정보도 공유해요. 그렇게 길거리 책방을 하면서 저도 책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책을 통해 지역의 니즈를 보게 되는 거죠. 사람들이 왜 책이 낯설까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책의 내용이 거의 서울, 수도권 중심이라는 게 보였어요.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더라도 우리가 친근한 동네 골목이 아니라 세련된 서울의 골목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그래서 지역에서 필요한 이야기, 지역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최근에는 생태, 지속 가능한 삶, 로컬 등의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내용을 담은 그림책을 찾아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노력 중이에요.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SNS로 보내던 뉴스레터 말고도 올해 월간 소식지까지 만들게 됐죠. 이번엔 매주 책을 사 가시던 손님이 사진과 글을 보내주셔서 독자투고도 진행하게 됐어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제 귀촌하신 지 일 년도 안 돼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크셨던 것 같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니 정말 좋아하셨어요.”


문화, 사람을 잇고 지역의 자부심이 되기까지

방랑싸롱과 길거리 책방의 사례는 한 사람의 진정성이 도시와 커뮤니티를 어떻게 변화시켜가는지, 그리고 그 변화의 원천인 문화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상기하게 해준다. 아직은 작은 변화이기는 하지만 주민들이 자랑할 거리가 오로지 ‘고추장’밖에는 없었던 작은 도시가 문화로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자부심을 느껴간다는 것은 변화의 크기를 넘어 의미 있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시의 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개발이익 이면에 시민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바로 이런 분위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책으로, 음악으로 자유로운 소통과 문화를 통해 지역이 달라지는 것을 몸소 느끼고 변화를 위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힘. 몇 년간의 문화적 실험을 통해 지역 청년들과 성장의 기반을 만들어가고, 주민들과 소통을 시작한 작은 팝업 책방의 소식이 계속 기다려지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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