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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 |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인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②
벗에게 시간을 묻다
이현배(2021-03-04 10:49:25)

벗에게 시간을 묻다 |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②




모항 박형진 시인께


간밤에 단단히 추웠습니다.  

태생이 잠이 많은 사람인데도 꼭두새벽에 

작업장에 불을 피워야 했습니다.


제가 습관적으로 ‘불을 피웠다’고 했는데, 온풍기를 틀었다고 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입니다. 작업장(독막)을 새로 지으면서 연통 설치를 놓치고는 그 일이 커 나무난로를 놓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옹기장이로 좋은 땔감은 그릇을 굽는데 쓰게 되다 보니 다른 용도로 땔감을 쓰는 것에는 인색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그렇지만 옹기장이로 그릇을 굽는다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을 아닙니다. 옹기가마는 길게는 이레 정도  불을 지피기에 나무를 워낙 많이 태운답니다. [열하일기] 도강록편에 연암선생의 적나라한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마는 한 개 누울 가마라고나 할가 가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가마는 길기만 하고 높지는 않으므로 불꽂이 타오르들 못하고 불꽂이 타오를 수 없고 보니 불기운이 없고 불기운이 없고 보니 반드시 소나무 장작을 때여 불길을 억세게 해야만 되고 소나무 장작을 때여 불길을 억세게 하고 보니 불길이 고르지 못하고


소나무 송진 불길은 다른 장작보다 불길이 세다. 소나무는 한번 베면 다시 돋지 않는 나무로서 옹기점을 한번 잘못 만나고 보면 사방의 산은 발가벗게 되고 백 년을 길러 하루아침에 없애게 되매 옹기점은 또다시 소나무 있는 곳을 따라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우리나라 옹기점들의 가마 제도는 먼저 가마 궁리는 하지 않고 큼직한 산판을 끼지 않으면 옹기점을 못 벌릴 줄만 안다. 질그릇은 없앨 수 없는 물건이요 소나무인즉 한정이 있는 물건이니 부득불 먼저 가마 제도부터 고쳐 량편이 다 리롭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열하일기] 리상호역, 1955, 국립출판사


옹기일을 익힐 때는 연암 박지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땔감을 줄이려 해봤습니다. 하여 문경 사기가마가 초벌 열 시간, 재벌 열 시간만에 그릇을 굽는다는 말에 문경에 가서 반년을 살기도 했습니다. 꼭 그렇게 가마를 지어 옹기를 구웠다가 낭패를 보고 가마를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그때서야 어른들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옹기는 구울 때도 뜸 들이듯이 지긋하게 구워야 보다 좋은 발효 기능을 하는 거였습니다. 그래 옹기장이로는 ‘나무 백정(?)이 숙명이구나‘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나무 한 짐의 삶이 그립습니다. 

그 한 짐으로 삼시 세끼에 하룻밤을 날 수 있는 정취가 부러운 것입니다. 그릇을 굽는 것은 굽는 것이고 삼시 세끼에 하룻밤은 별도이니 나무 한 짐을 짊어져도 좋으련만 옹기일 만으로 벅찬 삶이기에 나무짐이 집채만 해야 한다는 것에 인이 박혀있답니다. 하여 읍내를 가면 구두수선공의 공간을 많이 들여다봅니다.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압축된 작업 공간이 꿈이 되었습니다. 


신축년 새해 박 선생님의 편지를 기쁘게 맞이하였습니다. 

박 선생님께 편지를 받고서야 아내에게 박 선생님과 펜팔(?)을 하게 되었노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평소 아내는 제가 쓰는 글은 사전검열을 해야 한다는 주의자입니다. 제가 학업에 늘 불성실했기에 실수가 많습니다. 하여 저야말로 아내에게 ‘무식이’ 소릴 자주 듣는답니다. 하지만 저는 박 선생님께 앞으로도 검열(?)없이 편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무식이 보이더라도 아량으로 넘겨주시고 

날것으로 받아주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2021. 01. 09

옹기장이 

이현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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