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 이랑아동발달통합지원센터
수많은 다름 속에서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보다
글 김하람 기자
완주군 봉동읍. 차도 옆 작은 표지판에 따라 구불구불 들어가다 보면 탁 트인 공간에 자리 잡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발달 지연 및 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자연 친화적인 환경과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곳. 특수교육을 전공한 김성일, 채경석, 최대희 씨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랑아동발달통합지원센터다.
특수교육과를 졸업한 세 친구, 이랑을 만들다
이랑아동발달통합지원센터는 2013년 이랑협동조합법인으로 시작해, 2014년 5월 이랑협동조합법인의 지점으로 문을 열었다. 대표는 김성일, 채경석, 최대희 씨가 2~3년마다 돌아가면서 맡고 있으며, 현재는 채경석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이랑’은 갈아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두둑과 고랑처럼 서로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그것이 이랑의 바람이다.
“저희 세 명이 다 특수교육과 출신이에요. 특수교육과를 나오면 보통 특수학급이나 특수학교에서 특수교사로 활동을 합니다. 저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꼭 이 길 말고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마다 필요한 영역이나 능력치가 다 다르지만 학교에서는 학급에 아이들을 모아 함께 수업을 하다 보니 개별적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치료센터들이 시 단위의 도시에 위치해 있으니 시골 지역 아이들은 치료받을 여건이 마땅치 않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고, 뜻을 모으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완주군 봉동읍에 센터를 만들게 됐다.
전체 직원은 12명. 그중 가르치는 교사는 11명이다. 출장 수업을 받는 아이들까지 합치면 대략 150~160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센터에서는 언어치료, 미술치료, 심리운동치료, 음악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이 이뤄진다. 언어치료는 가장 대표적 치료로, 언어치료 안에서도 다양한 영역이 있지만 주로 아동들을 대상으로 언어 발달에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지연된 아이들, 말더듬이나 발음, 조음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다.
미술치료나 음악치료, 심리운동치료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치료다. 활동을 통해 속에 갇혀 있는 것들을 스스로 해소하고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 것을 돕는다.
감각통합치료는 자극을 받아들일 때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폐 아이들이 외부 자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치료다.
이외에 특정 행동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행동 치료, 놀이 활동을 통해서 정서적인 안정도 찾고 말투도 배우고 상대방과의 교감을 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놀이치료 등 개별 아동에 맞는 치료를 적용하여 가르치고 있다.
교육은 대부분 1 대 1로 이루어지지만, 심리운동치료 같은 경우에는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 수준이 맞는 아이들, 목표가 비슷한 아이들을 묶어서 그룹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아동과 부모님을 위한 전문상담치료기관, 이랑
이랑아동발달통합지원센터만의 특징이라면 시골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센터에 왔을 때 답답한 빌딩 같은 느낌이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주고 싶어 어느 정도 도시와의 접근성이 좋으면서 주변에 산이 있고, 밭이 있는 곳을 택했다. 교통편이 불편하지만 처음부터 차량 운행 지원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교육 기관이지만 전문성만큼은 다른 기관 못지않다. 11명의 교사 중 8명이 특수교육을 전공한 뒤 치료를 별도로 공부했다. 대부분 미술이나 음악, 심리를 전공한 사람들이 치료사 자격증을 따는 것을 생각할 때, 특수교육을 전공한 치료사가 특수아동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랑은 장애 아동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주말농장과,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한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가 와서 치료를 하고 공부를 하고 성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도 만족할 수 있는 활동,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가 장애가 있거나 발달이 느리면 가정에도 분명 영향이 있거든요. 이곳에 와서 아이뿐 아니라 가족이 다 함께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양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편견 없는 시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등록장애인은 261만 8천 명, 전체인구 대비 5.1%다. 적지 않은 수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배제되고 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분리되어 살아가다 보니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은 낯설고 어려운 존재다.
“장애 아동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저희 아이들,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좀 발달이 느린 아이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편견을 버리고 일반 아이들을 대하듯이 똑같이 가서 인사하고 똑같이 가서 물어보면 돼요. 대신에 말을 하다 보면 질문을 했을 때 대답이 안 올 수도 있고, 돌발행동을 해서 당황스럽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에 대해 지식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유치원 때부터 특수아동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간을 교육과정에 넣어 많이 보고 듣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아이에 맞는 개별적인 교육도 중요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가면서 배워나가는 통합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특수아동들에게 친구들과 같은 학급에서 어울리고 40분을 앉아서 수업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유럽 같은 곳처럼 한 학급에 두 명의 교사가 배치되어 특수아동을 위한 교사가 상주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교육이 이뤄지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통합교육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해요. 초중고에서는 어느 정도 통합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유치원에서는 특수유치원과 일반유치원이 나눠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유치원들끼리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통합반을 운영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드물어요. 그런 부분들은 앞으로 차차 나아지겠죠.“
사회를 바꾸는 작은 시도
“솔직히 어렵기도 해요...”
돌발행동을 하기도 하고, 고집도 세며, 열 번을 가르쳐줘도 잘 모르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지만 과격하거나 날 것의 반응 속에서 순수함을 발견하게 될 때, 자신이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될 때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고쳐주면서 친구가 되는 기분들이 좋아요. 그리고 행동들이 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볼 때 가장 힘이 나요. 행동이나 말이 과격해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눈에 보이면 ‘그러니까 내가 힘들어도 이 일을 못 그만두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부모님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봤을 때도, 웃음을 보이면서 고맙다고, 믿고 있다고 눈빛으로 말씀해주시거든요. 그럴 때는 보람이 있습니다.”
사교육 기관에서 개별 아이의 행동을 교정할 수는 있지만,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 해도 아이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다치지 않고 즐겁게 수업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보고 싶다.
“아직은 힘들지만,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진다면 수영 활동이라든지 논밭체험, 동물체험 등 더 좋은 시설을 갖춰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게 하고 싶어요. 저희 세 명이 많이 싸우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사이좋게 잘 운영하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