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 서학동예술마을

예술마을의 실험, 공간의 변화를 이끌어내다

글 오민정 편집위원

도시 일상의 변화

코로나19로 인한 생활의 변화에 따라, 도시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여가를 즐기는 ‘로컬택트(Localtact)’가 부상하고 있다. 일상도, 여행도 이제는 지역생활권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지역생활권의 변화로는 요즘 특히 주목받고 있는 ‘슬세권’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슬세권’이란 슬리퍼와 세권의 합성어로 슬리퍼를 신고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권역을 뜻한다. 유사한 신조어로 ‘배세권’, ‘편세권’ 등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이러한 ‘신조어’가 아니라 그것이 뜻하는 현상, 즉 도시의 일상이 변화하고 있고 그러한 변화가 앞으로 얼마나 유지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한 도시의 문화가 어떻게 바뀌고 공간이 재편될 것인가이다.

오래된 주거지, 일상에서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동네로 변신하다

얼마 전, 뉴스에서 서학동예술마을에 대한 뉴스를 접했다. 올해 주민들과 예술가들을 위한 거점 공간 확충과 더불어 예술테마거리 조성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현재 서학동예술마을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뉴딜사업은 ‘일반근린형’으로 주거지를 개선하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여러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학동은 전주시 원도심에 인접하여 자연적으로 발달한 주거지로 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정비된 지역이다. 노후 건축물, 인구감소, 고령화 등에 지역쇠퇴가 심화되고 있으나 전주교대, 한옥마을, 무형문화유산원 등이 인접하고 있어 재생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며 2010년대 들어 예술인들이 유입되면서 도시재생의 대상지로 주목받게 됐다. 이후 2017년 도시재생뉴딜 시범사업(일반근린형) 공모에 선정, 2018년부터 2021년 올해까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집수리 지원 및 골목길 정비 등 노후 주거지 정비 및 공공서비스 기반 구축, 예술테마거리, 창작레지던시 플라자 조성 등 지역자산을 활용한 매력적 공간 창출, 마을정원화사업 등 주민친화적 마을 조성, 주민역량강화 및 거버넌스 구축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개소한 2019년부터 하드웨어 중심의 공간개선사업과 더불어 서학동 내 지역자원 조사·기록화 사업 및 주민협의체 구성 및 주민공동체 활성화 지원을 중점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서학동예술마을에서 ‘예술가’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주민이기도 해요. 서학동예술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며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그 점이었죠. 그래서 공방 활성화 사업이나 ‘나도 작가’와 같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혹시라도 다른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거리감이나 이질감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들의 공방이 주민들에게 동떨어진 섬 같은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그래야 서로 생각이 달라도 함께 마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또 ‘예술’이 마을에서 낯선 일이 되지 않아요. 서학동예술마을에서는 주민들이 2019년부터 주민들이 제안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서학동에 있는 공방과 작가들이 만드는 동네 거리마켓, 공유도서관 만들기, 어르신 손맛 배우기 등 때론 전문적이기도 하고 때론 소소한 프로젝트들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서학동, 예술마을의 문화로 자리 잡아야죠.” (고남수,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

현재진행형인 예술마을의 재생과정은 애로사항도 많았다. 노후 주택이 많은 주택단지이다 보니, 길을 정비하는 데만도 실제 예산의 상당 부분이 소요됐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사업지연 뿐 아니라 현재 서학동예술마을은 타 부처 및 지자체 연계사업과 많은 부분 연계되어 있는데 연계사업의 지연으로 인해 전체 사업이 지연되기도 하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길을 조성하는데 예산이 많이 투여됐는데, 왜 길에다가 투자를 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이 곳이 오래된 주거지역이니만큼 무엇보다 필요한 게 기간시설에 대한 투자였어요. 뉴딜사업은 실제로 지역에서 필요한 부분을 시도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예술거리조성을 통해서 관광적 효과를 창출하는 부분도 있지만 길을 조성하는 사업은 서학동 내 타 사업과의 연계를 통한 시너지 창출, 주민들의 주거환경개선 만족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진행되지 못했던 부분들이 진행될 예정이에요.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복합 커뮤니티 공간 ‘행복플러스센터’, 공공임대상가와 체험공간·판매장이 갖춰진 복합문화공간, 예술인들을 위한 공동창작공간 및 주거 공간인 ‘창작레지던스 플라자’의 조성이 이뤄집니다. 또 예술거리 조성과 더불어 집수리 지원 사업, 주거환경개선도 지속적으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이 시설들을 주민들이 운영할 수 있도록 마을관리회사를 육성하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고남수)

15분 도시와 20분 이웃, 변화하는 도시문화에 따른 공간의 재편

도시의 생성과 확장은 도로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차량과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비례하여 생활권이 형성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생활권’의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슬세권’처럼 걸어서 도달 가능한 거리인 ‘15분 도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15분 도시’란 걷거나 자전거 등을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공간(평균적으로 1km 이내 ~ 3km 이내) 안에 주거, 복지, 교육, 여가 등 도시의 서비스와 인프라를 누릴 수 있도록 공간을 재편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걸을 수 있는 환경과 일상의 수요를 충족할 ‘20분 이웃’도 있다. 

15분 도시와 20분 이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거리가 변화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변화에 맞춰 도시의 문화가 바뀌고, 도시의 공간이 개편되기 시작했다. 

그런 관점에서 서학동 예술마을의 도시재생 과정을 바라본다면, 처음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15분 도시의’ 조건(생태, 근접성, 연대, 참여)을 모두 갖추고 있다. 빗물시범사업, 마을정원화사업을 통한 녹지조성, 인근의 전주천이 갖추어져 있으며 주민제안과 문화를 통한 이웃 간의 연결고리, 그리고 주민협의체 및 마을관리회사 등 지속가능하기 위한 주민참여의 노력이 이루어진다는 것. 어쩌면 이러한 방향은 비단 코로나19로 인한 도시공간의 일시적 회복 뿐 아니라 향후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필요한 조건일지도 모른다. 적정한 생활의 거리, 더 많은 공공 공간의 제공, 공동체 의식 강화와 생활부터 일, 돌봄, 배움, 즐김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서학동예술마을의 실험을 앞으로도 관심 있게 보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