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③
모항 박형진 시인께
딸애가 대문간에서 우편물을 가져다주길래 방으로 들어와 박 선생님의 편지를 먼저 보았습니다. 아내의 밥 먹자는 소리에 나가며 박 선생님께 편지가 왔다고 했더니 ‘그래서 기분이 좋구나’ 합니다. 딸애는 ‘엄마가 아빠 뺐기는 거 아냐’했습니다.
지금은 옹기점에서 저희 부부와 첫째 아들, 둘째 딸이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 딸이 있는데 혼인을 하여 전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미혼입니다. 저희 부부는 62년 범띠 동갑이고, 첫째는 88년생 용띠, 둘째는 90년생 말띠로 서울 살 때 낳았고, 셋째는 옹기일을 익힐 때 낳아 92년생 잔나비띠로 전남 벌교 태생입니다.
변산공동체학교라면 박 선생님과 진즉 인연이 닿을 뻔했습니다. 변산공동체학교를 꾸릴 때 입주를 생각했었다가 주저앉았으니까요. 입주를 생각한 것은 아이들(학업) 때문이었고 주저앉은 것은 발원지, 무진장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 사회문화잡지 [뿌리깊은나무]는 삶의 교과서였고, 옹기일 또한 뿌리깊은나무사를 통해 익혔습니다. 그러기에 [뿌리깊은나무]의 초대 편집장이셨던 윤구병 선생께서 공동체학교를 꾸린다했을 때 아이들의 삶을 의탁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이기적으로 이 삶의 동기로 주저앉았습니다.
[뿌리깊은나무]와의 처음 인연은 고2 때 서울로 가출한 상황에서였고, 작정하고 보기 시작한 것은 83년도 말부터 1년 정도 고물장사를 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폐간이 되었을 때라 창간호에서 폐간호까지 한 질을 중고서점을 통해 구해 봤습니다. 그러다 발행된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 또한 저에게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옹기일을 붙들게 된 것도 민중자서전 [남도옹기쟁이 박나섭의 한평생, 나 즉으믄 이걸로 끄쳐 버리지]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중학교 동창입니다. 그냥 중학교 동창이기만 한 것이고 사회에서 만나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양가에서 다 반대를 하였기에 저희끼리 산에 가서 말 그대로 물 떠놓고 예를 갖춰야 했습니다. 87년도였는데 아내는 졸업하기 직전이었고 저는 호텔에서 초콜릿 만드는 일을 할 때였습니다. 명분은 거창했습니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라고. 실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도입 논리를 주워다 쓴 것입니다. 느닷없이 결혼을 시켜달라고 했더니만 그 자체도 어이없어하다가 처자의 사주가 육십이 년 정월 초엿새 인시생이라는 말에 아버지께서 혀를 차시더니 ‘범이 셋이면 너 잡혀먹는다’ 하시더군요. ‘하루를 데리고 살아도 이런 여자랑 살아야지요’라며 호기를 부렸는데 돌이켜 보면 어른들의 말씀은 언제나 옳은 듯합니다... 하여 ‘딱 하루만 살았어야’했는데 하다가 아내에게 혼나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생활이 여전히 어렵습니다. 하여 제가 두고 쓰는 말이 있습니다. 가끔 예수님의 결혼 여부가 뉴스가 될 때 저는 결혼을 했었을 거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 백미인 사랑, 그 사랑 중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안 살아보고는 할 수 없는 말이라고... 그 말은 도무지 머리로 발상할 수 없는 말이라고, 오직 살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막내가 공부를 하겠다고 전주로 나갔다가 느닷없이 결혼을 해야겠다고, ‘엄마 아빠도 그랬잖아요’하는 걸로 품앗이를 하였습니다, 결혼식을 하는데 식순에 따라 제가 덕담을 해야 했습니다. 딱히 덕담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그동안 옹기장이로 장인 정신이라는 말이 불편했는데 이 친구들 덕분에 장인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장인 정신으로다가 옹기일을 잘 하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외손주 덕에 그야말로 독 짓는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요새 독을 지을 때 쓰는 연장을 깎으려고 또 그 연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많이 쓰는 것이 수레, 조막, 방망이인데 조선소나무를 깎아 만든답니다. 애써 갖추는 게 자귀입니다. 자귀 중에서도 벌교에서 ‘도꼬마리짜구’라고 익힌 자귀가 있습니다. 이게 일본 말인지 창이자라고도 하는 독고마리에서 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화재로 그 연장들을 잃어버리고 맵시 있는 연장들을 다시 못 만나고 있습니다. 솜씨 없는 놈이 연장 탓만 한다고 제가 딱 그렇습니다. 연장 욕심만 많습니다.
그 단단했던 추위가 가고 갑자기 포근해지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하기만 합니다. 이 수상한 겨울에 건강 잘 챙기시어 봄일에 땅심과 한껏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2021.01.23.
옹기장이 이현배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