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⑤
공간을 변화시키는 힘, 사람에게서 찾다.
공간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중심 도심의 이동으로 쇠퇴하게 된 원도심,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시골 마을들. 변화의 요인을 주로 불가항력적인 외적 요인에서 찾게 된다.
하지만 공간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변화한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마을을 일구며
공동체를 회복할 때 공간은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문화저널은 소통과 공동체 회복을 통해 진정한 로컬의 미래를 보여준 두 사례를 들여다봤다.
전주 용머리여의주마을은 196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용머리고개 산비탈에 있던 공동묘지를 철거하고 당시 남문 주위의 주민들을 이주시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공간의 노후화와 인구의 고령화로 쇠퇴된 공간이었으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용머리여의주마을 도시재생 사업의 특징은 주민역량강화와 공동체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 도시재생센터는 시간이 걸려도 주민들의 필요성을 적극 반영해 계획을 변경•추진하고 있다. 마을의 크고 작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마을 공간을 만들고 가꾸는 일에 주저 없이 나서게 된 주민들. 재생공간과 마을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성장한 주민들 통해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보게 된다.
지리산 산내면은 귀농귀촌한 인구가 전체의 25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다른 시골 마을과 달리 젊은 세대가 많은 만큼 풍부한 삶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부산에서 귀촌한 임현택 씨는 이러한 움직임들을 연결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바로 지리산 이음과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다. 작은 소모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을은 힘을 가지게 되고, 주민들 스스로 시민의식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는 그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돕는 것으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기획 연재 |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 지리산 이음
사람과 사람을 이어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다
글 김하람 기자
지리산 산내면. 앞으로는 천왕봉이, 뒤로는 뱀사골 계곡이 이어지는 산골 마을이 북적북적하다. 90년대에 생긴 귀농 귀촌학교로 인해 많은 귀농 귀촌 인구가 들어선 마을. 다른 마을에 비해 귀농 귀촌이 활성화 되다 보니 젊은 세대가 많다. 일하는 사람도, 문화적 활동도 많은 이곳이 지리산권을 잇는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12년 마을카페 토닥으로 시작한 사회적 협동조합 이음은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를 설립,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사람과 마을, 지리산권, 우리 사회를 연결하는 지점을 찾아 나가고 있다.
이음, 서로 다른 소리(異音)를 잇다
지리산이음의 대표이자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임현택 씨는 부산에서 시민단체를 기반으로 한 직장에 다니다 십여 년 전 자연도 좋고, 좋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소문과 정보에 지리산 산내면에 귀촌했다. 마을에 관한 고민이나 풀뿌리 운동에 관한 고민을 안고 있었던 그는 이곳에서 마을 커뮤니티나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시작했다. 주변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이야기 나누고, 문화행사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으며,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마을카페 토닥’이다. 기존에 마을에서 이뤄지던 소모임들이 자연스럽게 마을 카페로 모이게 됐고, 인디 밴드를 초청해 공연도 올리면서 마을카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마을에 귀농학교라는 기본적인 틀이 있었지만, 선한 의지를 가지고 마을활동을 한다거나 공익적인 활동이나 교육을 위한 활동, 생태 문화적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이 마을에 모이게 됐어요. 이런 활동들을 보면서 지리산권 내에 다른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점은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런 마을들을 찾아보고, 서로 연결하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연결이 지리산권 내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담아서 우리 사회 전반에 의미들을 전달하고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고민으로 시작한 것이 ‘지리산 이음 프로젝트’예요.”
아름다운재단에서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에 선정돼 진행한 ‘지리산 이음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실험적인 활동들을 지역 내에서 시도했다. 교육, 워크숍 프로그램, 지역에서 새로운 대안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책으로 내는 작업뿐만 아니라, 농사기술을 기반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교육하고, 관련 지원 방법을 찾아주는 귀농귀촌학교와는 달리 시골에 먼저 들어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골살이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 임 씨는 그런 활동들을 지속해서 이어가기 위해 2016년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 이음을 만들었다.
“마을에서의 다양성, 대안적인 활동들을 연결하고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지리산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 저희들의 미션이에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지리산 포럼을 개최해서 새로운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리산에 모여서 지리산의 기운을 받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어요.”
지리산권 다섯 개 시군을 잇다
교육, 포럼, 민박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지리산이음은 다시 한번 아름다운 재단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슈들을 찾아서 지원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은 대부분 대도시나 서울 경기 중심에서 사업에 지원을 많이 하다 보니 활동에 다양성이 떨어짐을 15년간 재단을 운영하면서 스스로 느끼게 됐다. 재단은 지역에 변화지원조직을 만들어서 지역사회의 변화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있는 작은 소도시의 활동들을 연결하는 지원조직을 지역에 몇 군데 만들고자 했고, 아름다운 재단과 인연이 있으며, 이미 지리산권을 연결하는 활동을 이어온 지리산 이음과 그 활동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은 남원뿐만 아니라 함양, 산천, 구례, 하동 다섯 개의 시군을 연결해 공간과 지리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형태의 지원 조직인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를 만들었다. 2017년 센터를 조성한 첫해에는 지역조사를 통해 지역에 어떤 주체들이 있는지 찾는 활동을 했으며,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은변화지원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공모사업이나 중간지원조직에서 사업을 지원하는 것과는 달리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작은변화활동가를 선정하고 매달 일정 정도의 활동비를 지원한다. 현재 활동 하고 있는 작은변화활동가는 14명. 이들에 대해 활동비 지원뿐만 아니라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에 관해서 서로 꾸준히 이야기하고, 활동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활동을 지역의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계속 찾아주고 연결해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희는 아예 활동비만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공모사업에서도 50퍼센트까지 활동비로 사용할 수 있어요. 저희는 활동에서 사람을 통해 이뤄지는 일이 반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활동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죠. 지원 금액을 다 사업비로 써버리면 사업 자체는 더 풍성해질 수는 있지만, 사람을 남기는 데 어떤 의미를 가질지 의문이 생겨요. 사업비를 주고 나서도 단순히 현장점검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어떻게 연계하고 있는지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네트워크 하는 모임을 통해서 현장점검을 해요. 지원받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좋은 점이 있고, 지역과 같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요.”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향하는 점은 여러 네트워크 간의 연결점, 즉 플랫폼의 역할이다. 어떤 사업의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나가기보다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하고 싶은 활동들을 지원하며, 지역사회의 작은 변화를 꿈꾸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 나누고, 방법을 찾고, 고민하는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들이 원활히 연결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공모사업이나 이런 것을 본인들의 의지를 가지고 뭔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일정 기간에 저희에게 신청하고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하지만, 지역에서 필요한 일이 무엇이 있는 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열린 플랫폼으로 운영하고자 합니다.”
작은 변화를 이어 만드는 사회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를 통해서는 지리산권의 공동체와 마을,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가진 활동, 시민사회 활동을 지원하며 연결하고, 지리산 이음을 통해서는 지리산 포럼과 같이 그동안 이어온 활동으로 사회와 소통하며, 마을카페 토닥을 통해서는 마을의 다양한 활동에 필요한 공간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활동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지리산 이음. 최근에는 누구든 지리산에 와서 일할 수 있는 공유오피스를 만들고 있다. 5월에 오픈 예정인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이다.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는 공간으로, 지리산권뿐만 아니라 시민활동이나 공익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편하게 지리산에 와서 자연과 함께 쉬면서 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안쪽으로는 워크숍이나 포럼,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조성했다.
“이 공간을 통해 기존 해왔던 활동에 더해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잘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 우리를 많이 불러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앞으로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작은변화지원센터를 인식하는 활동을 이어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