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 용머리여의주마을
우리가 만든 공간에서 차 한잔 함께 하실래요?
글 오민정 편집위원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공간이지만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변화한다는 점에서 유기체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그렇기에 도시정책은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실제 시민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종합적인 정책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간 개발중심의 도시정책과 기술의 진보는 도시를 외형적으로 변화시켰을 뿐 궁극적으로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개발과 확장으로 인해 도시공간은 기능적•장소적 균형을 잃어버렸으며, 오히려 불평등한 삶과 계급을 드러내는 구조가 됐다. 따라서 이후 도시의 전략은 개발이 아니라 재생으로 바뀌었으며 어떻게 도시를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이른바 도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뉴딜’은 물리적 환경개선과 더불어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공동체 문화와 같은 무형의 원동력을 통해 도시를 ‘종합재생’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용머리 여의주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뉴딜사업은 2018년 공모에 선정, 2021년까지 사업을 추진하게 되며 현재까지 전주에서 선정된 도시재생뉴딜사업 중 유일한 ‘우리동네 살리기’유형이다. ‘우리동네 살리기’는 도시재생뉴딜의 다른 사업유형과 달리 ‘빈집 및 소규모 주택정비에 관한 특별법’을 활용, 5만㎡ 이하 저층노후주택밀집지역의 빈집문제를 해결하고 동네 단위의 주민생활밀착형 공공시설을 공급하여 마을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소통과 주민역량강화로 만들어가는 용머리여의주마을의 도시재생
현재 180가구로 구성되어 있는 용머리여의주마을은 196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용머리고개 산비탈에 있던 공동묘지를 철거하고 당시 남문 주위의 주민들을 이주시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과거 완산교에서 용머리고개 사이에는 유기전이 있었다고 해서 현재 도로명 주소도 유기전길로 이름이 정해지기도 했다. 용머리여의주마을 또한 이후 여느 원도심과 같이 공간의 노후화 와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어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됐다.
하지만 공간의 노후화와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었다고 해서 모든 원도심이 도시재생의 대상지로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재생의 대상지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 외에도 주민협의체가 필수적으로 구성되어있어야 하며 주민역량강화를 통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용머리여의주마을은 쇠퇴지역이기는 해도 주민의 역량강화를 통해 재활성화의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인정된 셈이다. 따라서 현장지원센터에서도 실질적으로 공간의 재생에 중점을 뒀던 다른 재생사업과 달리 주민역량강화와 공동체 회복에 가장 중점을 뒀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무엇보다 주민들과 한 번이라도 더 만나 친화력을 높이고 주민들의 요구와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힘을 쏟았다.
특히 초기부터 중점을 둔 홍보분과 사업은 단순히 마을 소식지를 만든다는 개념을 넘어 주민 기자를 양성하여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변화를 기록하게 하였으며, 이를 매개로 주민과 소통의 접점을 넓혀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컸다. 2019년 4월호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매월 주민 기자들이 활동하며 마을소식지를 만들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다들 어려워했지만, 실제 마을의 현장을 기록하고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주민 기자들 스스로도 소식지를 통해 많이 성장했음을 느끼고 사명감도 느끼게 됐다. 이외에도 현장지원센터는 용머리여의주마을 주민 24명의 구술기록, 빈집에 대한 사진기록 등을 꾸준히 아카이브 하여 용머리여의주마을의 공간과 생활사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해도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소식지를 발행하면서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알게 됐어요. 서로 만나고 알아야 이웃과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그게 마을의 공간을 개선하는 일이 됐든, 공동사업을 도모하는 것이 됐든지 간에요.”(허나겸 용머리여의주마을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
마을 재생의 두 가지 원칙 :
거버넌스를 통한 추진과 공익 우선의 원칙
홍보분과 활동과 기록화사업 외에도 용머리여의주마을은 주민들과의 회의를 통해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실제 현재 조성된 ‘용머리 쉼터 1호’는 당초에는 사업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마을 입구의 시야를 확보하고 우회도로가 가장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사업을 변경하여, 반영한 부분이다. 현재 쉼터와 우회도로가 조성된 부분은 마을에 진입해 우회전을 하려면 마을 초입에 위치한 건물(구 용머리슈퍼) 때문에 시야가 가려 사고가 잦고 차량통행방해로 인해 2차 사고가 많이 나던 구역이었다.
센터는 이러한 주민들의 필요성을 적극 반영하여 계획을 변경•추진했으며 사업추진이 지연되더라도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듣고 설득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모두가 만족하고 합의한 쉼터를 조성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주민들과 센터는 조금 더디더라도 도시재생의 방식은 거버넌스(민관협의체)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 공익과 사익이 부딪힐 때 공익을 우선해야 하는 두 가지 원칙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소방도로를 확보하고 두 번째 쉼터(여의주 쉼터)를 조성할 때는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모두가 힘을 합해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다.
주민들과 센터의 이러한 원칙은 단지 쉼터나 공용공간의 조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노후주택정비사업에도 이러한 원칙이 적용됐다. 노후주택정비사업은 주민들의 입장에서 수혜의 측면이 큰 사업으로 인식돼 선정과정에서 가장 갈등이 유발되고 민원이 제기되는 사업 중 하나다. 용머리여의주마을의 경우에도 노후주택정비사업 모집에 39가구가 신청, 29개 가구를 선발해야 하는 센터의 입장에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9년부터 지속해서 주민들과 소통하고, 면밀하게 현장을 파악한 덕분에 민원 한 건 없이 현재까지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초기부터 저를 포함한 센터직원들이 마을의 모든 가구를 다 만나봤어요. 그래서 가구마다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지, 누가 살고 있는지, 어떤 집에서 뭐가 제일 필요한지 알고 있죠. 센터가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가구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아야 하는 것은 당연해요. 한정된 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주민들에게 누구네 집이 지원이 더 필요한지를 설득하려면 센터가 마을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있어야 하죠.”(허나겸 용머리여의주마을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
용머리여의주마을, 미래를 위한 질문을 시작하다
용머리여의주마을은 2019년 사업 시작 이후 크고 작은 사업들을 많이 진행해왔다. 사업을 시작하며 주민들과 도시재생계획을 처음 함께 이야기하던 ‘마을 구상 워크숍’부터 주민협의체 구성, 폐가 철거, 쉼터 공사, 경관개선사업, 어르신 장수사진 촬영, 공동체 꽃밭 조성, 용머리 베이커리, 주택에너지 효율개선사업, ‘짜장파티’, ‘김치찌개파티’ 등등 마을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소통하는 자리를 이어왔다.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19 세계유행’으로 인해 많은 재생사업들이 지연되는 와중에서도 센터는 주민들과 도시락을 배달해가면서 지속적인 소통을 이어왔다. 올해는 음식을 주제로 한 ‘용머리음식디미방’사업도 추진될 예정이다. 마을 가정식이나 가정 고유의 음식을 조사 기록하고 이를 공동체의 문화자본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눈인사만 겨우 주고받던 주민들이 이제는 팔짱을 끼고 차를 마시러 가는 사이가 됐고, 마을 공간을 만들고 가꾸는 일에는 주저 없이 나와 함께 이야기하는 사이가 됐다.
용머리여의주마을의 ‘우리동네 살리기’는 올해까지 사업을 진행하며 물리적 사업 진행으로 주민을 위한 생태숲 공원 조성을 앞두고 있다. 대상 사업지는 그간 잡목이 무성해 주민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공간으로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와 단풍 숲, 운동 시설과 도서관이 포함된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주민들은 공간 조성 이후 그 공간을 어떻게 잘 이용하고 가꿀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용머리여의주마을이 공간의 일회적 재생에 그치지 않고 재생공간과 마을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주민들이 성장하고 있고, 나아가 마을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동력으로 도시를 개발하던 시대가 저물었다. 합계출산율이 0.86명인 한국 사회에서는 이제 더 이상 도시가 외연으로 확장하고 성장할 수 없다. 도시를 산업화 시대의 재개발 논리로는 재생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도시공간의 재구성과 공동체관계에 대한 새로운 합의(뉴딜)가 필요하다. 이를 기초로 어떻게 모든 시민이 힘을 합쳐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실현하는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재생이 아닐까 싶다. 사족 하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이라는 공모사업이 있었다. 사실 이 공모사업명은 동어반복이다. 모든 도시재생은 문화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도시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이고 그 공간에 새로운 장소성을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가 바로 ‘문화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