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감독 김태경 인터뷰]
글 박진희 영화연구자
[영화 두번째장례]
영화는 언제부터 예술로 불렸을까? 영화는 예술이기 전에 기술의 영역이었고, 산업의 영역이었다. 세계 최초의 영화 촬영 및 상영용 카메라 ‘시네마토그래프’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세계 첫 영화를 상영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뤼미에르 형제조차 이 흥미로운 발견물이 단시간적으로 돈벌이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사람들의 흥미가 떨어져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영화의 창시자들에 따르면, 영화는 예술이기보다는 대상물의 재현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도구이거나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도구, 그저 도구였던 셈이다. 하지만 뤼미에르 형제의 예견과는 달리 영화는 단순히 흥미로운 신기술이나 산업적으로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돈벌이 수단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영화가 수많은 이야기로 가득 찬 우리의 현실을 계속해서 관찰하고, 반영하고, 흉내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한, 계속해서 우리의 현실을 흉내 내는 거울로서 존재하겠다는, 그 끊임없는 생명력을 끝끝내 주장할 것만 같은 태도로 여전히 영화는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 탄생 100주년, 디지털 영화 기술의 탄생을 기점으로 많은 학자들이 예측한 ‘영화의 죽음’이라는 상징적 프레이즈는 영화의 어떤 영역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건 바로 영화가 ‘이야기’를 담는 매체라는 영역이다.
올해 열리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전북의 영화와 영화인을 대상으로 한 섹션인 ‘지역 공모 선정작’에 선정된 <두번째 장례>의 김태경 감독 역시, 한 명의 새내기 감독으로서 ‘이야기’를 향한 앞으로의 여정을 걸어갈 채비를 끝내고 있다. 올해 1월 겨울에 단 5회 차로 촬영해 완성한 <두번째 장례>는 앞으로 그가 영화감독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본격적인 첫 단추를 끼우는 작품으로써 그가 어떤 영화 세계를 지향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주인공 수현의 집 촬영 현장]
세상을 떠난 미술가 남자친구 종훈을 아직 잊지 못한 채로 남겨진 여자친구 수현과, 종훈의 남동생 지훈, 종훈의 영혼결혼식을 시켜주려는 종훈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꾸려진 <두번째 장례>는 망자를 떠나보내는 각기 다른 방식에 대해 보여준다. 그 가운데에는 ‘가족’ 혹은 ‘유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혹은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다양한 감정적 균열들이 담겨져 있다. 이들의 감정이 상충 혹은 화합하며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고즈넉한 사찰이나 전통적 한옥 가옥, 외로운 느낌의 납골당, 쌀쌀한 느낌의 겨울 거리 등의 로케이션에 힘입어 더더욱 보는 이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28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 속에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숏들을 나열한, 밀도 높은 구성이 눈에 띈다.
실질적으로 이 영화에서 로케이션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인물들이 놓인 상황을 단번에 보여줘야 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 촬영은 단 5회 차로 끝났지만 마음에 드는 공간을 촬영하기 위해 촬영팀이 전남 장흥과 전주, 충남 서천, 서울 북촌을 오가는 꽤나 빡센(?) 여정이 펼쳐졌다.
“국토 저 아래에서부터 서울까지 쭉 훑어 올라갔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공간들을 찍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불가피하게 그렇게 된 면도 있고요. 장소 부분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요.”
특히 이 중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납골당을 찍을 때는 부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두번째 장례>가 감독의 삼촌이자 부친의 남동생인 故 김동하 작가로부터 영감을 받은, 일종의 가족사를 다룬 이야기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김태경 감독이 영화 일을 하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가 아들의 작업을 도와주며 아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줬다는 것이 큰 변화였다. “영화 해서 뭐 먹고살 거냐고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그래도 꿋꿋이 제가 이 길을 걷는 것을 보시고는 이제는 그렇게 뭐라고는 안 하십니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먼저 ‘영화 마무리됐으면 보여달라’라고 넌지시 말씀하셔서 부친에게 영화 파일을 보내드렸다는 김 감독. 아버지의 반응이 어땠냐는 질문에 “아무 말씀 없으셨다”고 말하며 빙긋 웃는다.
울산에서 태어난 김태경 감독은 부친의 직업상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학창시절만큼은 줄곧 전주에서 보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덕분에 디즈니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보았고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등 TV에서 해주는 영화도 빼놓지 않고 섭렵했다. 그러다 중학생 시절 어느 날, 동네에서 영화 찍는 현장을 보게 됐다.
"송천동 전라고 앞에서 <공공의 적> 2편의 촬영 현장을 보게 됐어요. 학생들이 싸움하는 장면이었는데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 보고 났더니 새벽 3시가 되어 있었어요.”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는 드라마틱한 결심은 없었지만 이날 목격한 영화 촬영 현장의 활력과 에너지가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있었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자연스럽게 진로를 영화과로 정하게 됐다고.
전주대학교 영화방송학과에 진학하면서는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게 됐다. “전주는 영화 하기 좋은 곳이에요. 찍을 수 있는 좋은 장소도 많고, 전주영상위원회나 전북독립영화협회에서 하는 좋은 수업들이 많아서 학교 공부와 병행하면서 저만의 영화 시나리오 쓰기 방법도 터득할 수 있었어요.”
김 감독은 전주대 시절 다양한 선후배들과 함께 워크숍 작품을 찍거나 개인 작업을 할 수 있었고,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당시 은사인 강국현 감독의 조언을 듣고 졸업 직전에 <끝까지 간다>(김성훈, 2013)의 조명부에 들어가 현장 경험도 쌓았다. 각종 무거운 장비를 날라야 하고 촬영팀과 거의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고충이 있는 조명팀에서 일을 했는데도 김 감독은 “조명팀 완전 좋아요. 영화 촬영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거든요”라며 조명팀의 장점을 먼저 꼽는다.
[궁리포구 촬영현장]
실제로 김 감독은 연출 전공 출신이지만 조명 파트나 촬영 파트, 제작 파트에도 능해서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시간 외에는 영화 조명 스태프, 촬영 스태프, 제작 스태프로 일을 하며 생활비를 충당할 정도로 능력을 갖춘 올라운드 영화인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다. 무엇보다 조명과 촬영을 이해하는 것은 연출을 하는 데도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조명과 촬영을 이해하고 있으면 정말 편해요. 영화를 좀 더 빠르게 찍을 수 있거든요.”
실제로 추운 겨울 단 5회 차 촬영에, 코로나 감염병 창궐 시대에 전국 각지를 오가는 로케이션을 소화한 <두번째 장례> 같은 악조건(?)의 영화가 깔끔한 미장센 처리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이유도 김 감독의 이러한 조명과 촬영 파트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주대에 재학 중일 때는 사건 중심의 영화도 찍어 보고, 인물 중심의 영화도 찍어 보고, 장르물 같은 영화도 찍어 보며 다양한 도전을 했다면,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제작석사에 입학한 2016년 후로는 좀 더 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하는 과정으로 삼았다는 김 감독.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입학할 때는 그동안의 작품을 모은 포트폴리오와 시나리오를 제출해야 했는데, 전주대를 졸업한 후 전주영상위원회나 전북독립영화협회에서 들었던 시나리오 수업 때 해놨던 작업들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 시나리오 덕분에 중앙대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전주대 친구들 중 영화 쪽으로 계속 커리어를 쌓으려는 친구들은 서울 여기저기에 올라와 있어요. 전주대에서 함께 작업했었고, 지금도 서로 도움을 주며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고요. 저는 중앙대로 오게 됐는데, 최근에도 전주대에서 후배가 한 명 중앙대에 입학했더라고요.”
중앙대는 워낙 각 분야에서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인 친구들이 입학하기에 서로 ‘품앗이’라는 형식으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김 감독 또한 중앙대 졸업 작품이기도 한 <두번째 장례>에 도움을 받은 만큼, 앞으로 품앗이해야 할 작품이 줄줄이 밀려있다고.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할리우드 영화 <시카리오>(2015, 2018)의 각본을 쓴 테일러 쉐리던을 좋아한다는 그는 앞으로도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유골함을 들고 어디론가 떠나는 수현의 모습을 찍은 버스 안 촬영 현장]
“영화의 소재는 주로 신문에서 얻어요. 전주대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던 <나도 살고 싶다>(2014)는 기러기 아빠에 관한 비극적인 기사를 읽고 만들었던 영화이고, 중앙대에서 만든 <강낭콩 한살이>(2017)는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시스템에 대한 기사를 읽고 만들게 됐어요. 최근에 만든 중앙대 졸업 작품 <두번째 장례>는 저희 집안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합을 생각해볼 수 있게끔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이렇게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현재 장편 영화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는 김태경 감독. 올해는 장편 영화 시나리오 작업과 동료들 작품 품앗이하기, 그 외에도 다른 작품 스태프 참여 일정으로 정신없이 흘러갈 것 같다는 그는 느긋하면서도 매우 성실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우직함이 돋보이는 새내기 감독이었다. 하나하나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추구하는 감독으로서의 길을 걸어 나갈 것 같은,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 거라고 생각해요.”라며 미래를 ‘희망’보다는 ‘약속’들로 채워나갈 것 같은 태도로 영화를 대하는 그에게서 영화의 힘과 이야기의 힘을 신뢰하는 영화주의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김태경 영화감독
<잡아>(2012)•<나도 살고 싶다>(2014)•<스케치북>(2016)•<해우>(2016)•<강낭콩 한살이>(2017)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두번째 장례>(2021)
•박진희 영화연구자
전북대에서 국문학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한 후
현재 전주에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