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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 | 인터뷰 [여성, 사회를 바꾸다]
차별없는 세상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설 것
동화작가 박예분 인터뷰
김하람 기자(2021-05-07 12:01:28)

여성, 사회를 바꾸다 | 동화작가 박예분


차별없는 세상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설 것

[동화작가 박예분 인터뷰]


김하람 기자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먼지들. 우리 주변을 떠돌다 쌓이고 쌓이다 보면 마침내 우리 눈에도 보이게 되는 먼지들처럼 오랜 시간 우리 주변에서 머물며 차곡차곡 쌓인 차별을 이제는 인식하기 시작했다. 말버릇처럼 사용하던 속담 속에, 자연스럽게 여기던 사회적 통념 속에, 남들 다 사용하는 말이니 툭툭 내뱉은 내 말속에 자리 잡은 차별이 누군가를 찌르고 아프게 했다는 사실, 그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것이 차별인지도 모르고 서로에게 상처 주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가 박예분은 차별로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가족들과 함께 차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책을 썼다. 동화 ‘달이의 신랑감은 누구일까?’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동화


올해 1월 출간한 ‘달이의 신랑감은 누구일까?’는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동화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 주인공 달이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이야. 달이는 숲에서 가시덤불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는 다람쥐를 구해주고 친구가 된다. 달이는 아버지가 정해주는 이웃 마을 청년과 결혼을 해야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때에 마음에 드는 신랑감과 결혼하기를 원한다. 달이 혼자서 감당하기는 힘든 상황을 다람쥐와 함께 유쾌하고 지혜롭게 해결해 나간다. 


주인공 달이와 다람쥐는 사회적 약자예요. 인간으로서도 가장 약자인 어린이와 동물로서도 작은 다람쥐예요. 사회적 약자를 등장시켜서 그들이 오래된 관습이나 불합리한 시스템을 단박에 바꾸지는 못하지만, 약자끼리 지혜를 모아서 집단지성의 힘으로 자기들 앞에 놓인 위험이나 부당한 문제를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달이의 신랑감은 누구일까?’는 2020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통해 익산여성의전화에서 ‘기록된 또는 기록되지 못한 여성’을 주제로 개최한 전시 ‘내 방 네 방展’에 참여하면서 쓴 책이다. 2017년도에도 같은 사업에 참여했던 작가는 그때 ‘먼지차별’이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먼지차별일상에서 성별, 나이, 인종, 성 정체성, 장애 등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를 담은 표현을 말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15년부터 외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microaggression’이라는 용어를 차용하여, 이러한 일상 속의 차별을 ‘먼지차별’이라 명명했다. 


“우리 호흡하는 공간에 떠도는 먼지, 보이지 않지만 누적이 되고 쌓이면 생활에 불편을 주는 먼지. 그런 먼지와 같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2017년도에는 못썼어요. 작년에 이 사업을 준비하면서 꼭 이번에는 먼지차별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 기회에 아이들과 먼지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겪고 있는 차별은 어떤 것인지 아이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똑똑 두드려보고 싶었어요.”



차별적 표현을 직시하다


책의 기획에서부터 편집까지 작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작가는 앞뒤 면지 구성에 특별히 신경 썼다. 면지에는 차별에 대한 표현을 회색 글씨로 마치 먼지가 쌓인 것처럼 빼곡히 배치했다. 앞 면지에는 여성에 관한 속담을 담았다. 속담은 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록 중 하나다. 


“많은 속담들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게 아니라 달걀을 낳죠. (웃음) 이런 차별적 표현을 일상에서 당연하게 사용하다 보니 항의하지 못하고, 묵묵히 넘겨야 하고, 그러다 보니 화가 되고, 분노로 표출되기도 해요. 이런 속담이나 차별적인 표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여성차별적인 표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뒷면지에는 더욱 다양한 차별적 표현들을 담았다. 앞 면지에 비해 뒤 면지에는 숨이 턱에 찰 만큼 빼곡하게 차별적인 표현들이 적혀있다. 점점 차별의 빈도가 높아져 우리 사회에 일상에 존재하는 먼지처럼 희미하게 차곡차곡 쌓인 것을 표현했다.


역시 여자라서 섬세하시네요.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란색이지. 남자는 우는 거 아냐. 너는 조금만 살 빼면 예쁘겠다. 장애인 여러분 희망을 가지세요. 한국말 잘 하네? 절름발이 정책. 어린 게 뭘 안다고? 학생답게 하고 다녀라. 나이 먹으면 다 저렇다니까.

흔히 하는 말이니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거나 찜찜하더라도 바로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고 먼지처럼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되어 오랜 세월 괴롭히기도 한다. 


먼지차별은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처럼 주위에 먼지차별이 쌓이지 않도록 그때그때 해결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어린이들이 편견과 차별 없는 사회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며 건강하게 자신의 꿈을 키우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책을 썼습니다.”


마지막 장에는 말풍선을 배치해 책을 읽은 뒤 내 안에 쌓인 먼지 차별은 없는지, 또는 내가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용어를 사용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며 속 시원하게 탈탈 털어낼 수 있는 활동의 공간을 마련했다. 먼지차별은 가정과 학교, 이웃이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0세에서 100세까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 독자는 물론이고 어른 독자와도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고자 한 작가의 고민이 녹아 있다.





바른 가치관을 가진 아이로

자라기 바라는 마음으로


동화에는 보편적 가치가 들어있다. 기쁨, 희망, 용기, 슬픔, 두려움, 나눔, 배려, 차별, 생명에 대한 존엄성, 자연, 죽음, 꿈, 사랑 등 삶의 보편적인 가치를 동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성장하게 된다.


“어린이들이 동시나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꿈을 담아 캐릭터를 재창조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이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달이가 아버지에게 저항하면서 다람쥐와 약자끼리 힘을 합쳐 헤쳐나간 것처럼 제2의 현재를 살아가는 달이는 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등불을 밝히며 나아가겠죠. 그래서 동시와 동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자신과 접목시켜서 자기가 원하는 꿈과 희망을 넣어 캐릭터를 재창조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일부러 동시나 동화에 차별과 폭력, 가부장제 이념 등이 담긴 스토리를 넣기도 한다. 그런 스토리를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걸러내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짧은 동시 한편을 쓰더라도 어휘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아동문학은 어린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전인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아동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는 갈등과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등장인물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죠. 작품을 통해 아동의 권리를 찾아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중요성과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줍니다. 어린아이들이 인종, 문화, 종교, 장애, 성차별에 따른 편견이나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아동문학 작품을 통해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스토리에 감동과 재미를 더해줘야 어린아이들이 공감하겠죠. 어린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쓰고 싶은 글,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생계형 작가로서 많은 책을 낸 박예분 작가.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것을 통해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이 연간 8백만 명이나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는 기사를 접한 작가는 현장 취재와 생존자 증언을 통해 뼈아픈 역사를 생생히 느끼게 됐다. 해저 탄광에 끌려갔다가 탄광이 무너지면서 차디찬 바다 밑에 아직도 누워 있는 136명의 조선인들. 작가는 그 이야기를 논픽션 동화로 엮어 냈다. 


“그들의 억울함, 원통함을 풀어주고 싶었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작가로서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쓴 책이 ‘뿔난 바다’예요. 그 뒤로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고 자꾸 관심을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고 있어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펜의 힘을 깨닫게 된 작가는 사회 참여형 작가로서 사회의 불합리한 점이나 부당함에 대해 자꾸 표현하고, 알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올해 ‘달이의 신랑감은 누구일까?’를 비롯해 새로운 동시집과 동화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코로나19로 저자와의 만남이나 문학 강연 활동이 거의 전무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작가와 출판사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그럼에도 어린이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니까 어린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주고 그들과 소통하고 어루만져 주는 작가가 되기 위해 쓰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또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문제들도 참여 작가로서 관심을 가지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작가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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