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 문화를 더하고 문화를 나누다 | 정읍 쌍화차 거리
이야기를 품은 공간의 가치에 주목하다
글 오민정 편집위원
비 오는 일요일 오후, 쌍화차 거리의 풍경은 인스타그램이나 뉴스와는 사뭇 달랐다. 물론 날씨와 코로나19 여파의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거니는 거리 양옆으로 차들이 빼곡하게 주차가 되어 있는 길은 ‘특화 거리’라기 보다는 작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인근의 시장도 쉬는 날이어서 그런지 더욱 한산한 느낌이었다. 구절초 축제나 단풍철, 쌍화차 축제 등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인파로 북적이던 풍경이 머릿속을 잠깐 스쳐 지나갔다. 길을 따라 안 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찻집이었던 공간을 6월 중순 떡볶이 가게로 변경하는 인테리어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관광을 중심으로 한 중심 시가지의 상권 활성화 전략
‘특화거리 조성’은 많은 지자체에서 쓰이는 도시재생방법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특정 분야를 집중 배치하여 거리의 상권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한때 유명했던 ‘예술의 거리’나 지역특산물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OO 거리’ 등이 다 이러한 유형에 해당한다. 이는 과거에도 소위 ‘핫’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여러 도시재생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유형 중에서도 원도심의 공공서비스 저하와 상권의 쇠퇴가 심각한 지역의 활력을 증진하기 위한 ‘중심시가지형’에서 주로 쓰이고 있는 방법이며, 여전히 유효한 지역활성화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지자체들은 너도나도 관광객을 유치해 올 더 ‘특별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쌍화차 거리에서 만난 관광객 A 씨는 이곳에 종종 들르는 편이라고 말한다. (A 씨는 현재 광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다소 쑥스럽다며 이름이나 다른 개인정보를 밝히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는 이곳이 광주권에서 다소 가까운 편이기 때문에 근교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가족과 함께 들른다. 재작년에는 쌍화차 축제를 하는 기간과 구절초 축제를 하는 기간에 방문했었는데, 사람이 많아 아직 어린 자녀들과 같이 걷기에는 차라리 조용한 지금이 낫다고 생각한다. 특화된 거리 조성에 대해 쌍화차는 집 근처에도 있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나들이도 하고 몸도 챙길 겸 더 들르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전설의 쌍화차 거리’가 조성되기까지
정읍 쌍화차 거리의 정식 명칭은 ‘전설의 쌍화차 거리’다. ‘전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신선이 마셨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정읍이 쌍화차로 유래가 깊기 때문이다. 옛 문헌에도 정읍의 진상품으로 차(茶)가 기록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정읍은 차 중에서도 유독 쌍화차 문화가 번성했는데, 이는 쌍화차인 주재료인 숙지황이 정읍에서 가장 많이 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쌍화차가 발달했다고 한다.
‘전설의 쌍화차 거리’는 세무서와 경찰서, 시청이 집결한 장명동 일대의 중심가에 조성되어 있다. 정읍경찰서에서 세무서까지 이어지는 350m 남짓한 길이다. 조선 시대부터 이 자리에는 정읍현 6방의 현청과 동헌, 형방청 등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던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적 의미의 관광서인 정읍지청과 법원, 경찰서, 사무실 등이 들어서게 됐으며, 그러한 관공서 민원인을 상대하는 찻집과 다방이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2006년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이 이전함에 따라 원도심 자체가 공동화되기 시작했고, 2016년 도시재생사업 중 ‘시민창안 3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때 원도심을 대표하는 거리였지만 낙후되고 방문객 감소로 쇠퇴해져 가는 쌍화차 거리를 정비하게 됐다. 그리고 2017년 국토교통부의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에 선정된데 이어 2018년에는 행정안전부 주관 골목경제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이에 따라 경관 및 업소 인테리어 개선, 골목환경개선, 도로정비사업, 지중화사업, 쌍화차 축제 개최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골목활성화를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상가들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내몰리는 일을 방지하고자 정읍시와 세입자, 쌍화차 업종 건물주 간 임대료 안정화를 위한 상생 협약식을 체결하기도 했다.
‘관광상품화’된 콘텐츠의 이면
정읍이 고향인 B 씨는 현재 전주에 살지만 한 달에 한 두 번, 부모님을 뵈러 갈 때마다 쌍화차 거리를 들른다. 그는 쌍화차 거리 조성이 전체적인 입장에서 볼 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원도심으로 쇠락해가던 이전에 비해 미관상으로도 좋아졌고, 편리해지기도 했다. 또 정읍의 다양한 관광자원(내장산, 구절초 축제 등)과도 연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관광자원을 발굴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쉬운 점도 있죠. 전에 우리한테 쌍화차 거리는 가족들과 저녁 먹고 산책을 나가면서 차 한잔하는 그런 장소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만남의 장소보다는 관광객 위주의 장소가 됐어요. 원래는 쌍화차 거리에 단골집이 있었는데, 사람이 밀리니까 좋기는 한데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예전에는 가게마다 특색이 굉장히 강했는데, 서비스가 상향평준화 된 것인지는 몰라도 집집마다 특색이 있다고는 하는데 오히려 어쩐지 다 비슷해진 느낌도 들어요.”
우리는 쇠락하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서 흔히 관광을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광은 도시의 경쟁력에 있어 지금까지 유효한 전략이었고, 코로나로 인한 위기로 인해 한동안 어려움을 겪기는 하겠지만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광을 유치하는 많은 도시 중 일부는 성공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계에 봉착한다. 관광 중심의 활성화는 외부의 투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사회환경변화나 여가·생활 트렌드의 변화, 공간선호도의 변화 등의 예측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에 의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다시, 자생력을 가진 문화콘텐츠로 거듭나기
최근 정읍은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골목 경제 회복지원 공모사업’에 ‘주향(酒香) 거리 조성사업’에 선정됐다. ‘골목경제 회복지원사업’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피해가 집중된 지역골목 경제 회복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역자원 활용을 통해 골목경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특별교부세(4억 원)가 지급되는 사업이다. 정읍시는 이를 지역농산물인 쌀을 활용한 막걸리와 전통주를 개발해 주점 창업을 유도하고, ‘쌍화차’ 거리와 연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방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정 배경을 생각해보면, 관광중심의 콘텐츠들이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사실 정읍은 전북에서 도시재생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도시재생의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다. 비교적 초창기부터 시민창안대회, 도시재생대학, 공동체활동지원 등이 활발하게 이뤄져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이해가 높을 뿐 아니라 원도심을 중심으로 각 유형의 도시재생사업 및 유관사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현재도 쌍화차 거리 이외에 다양한 유형과 규모의 도시재생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추진지역에 맞는 주거환경 재생 및 생활인프라 개선 등의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지역자원을 활용한 문화적 콘텐츠로서 다른 자원과 연계할 수 있는 ‘쌍화차’라는 콘텐츠를 발굴한 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또한 이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지역특산물로 자연스레 발달한 문화를 상품화시키고 브랜딩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를 활성화 시키는 과정에서 이를 위해 상가, 건물주, 행정 간 상생 협약을 이끌어내는 등의 노력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겪으면서 불가항력적인 외부요인으로 인한 변화에 맞닥뜨렸다. 이를 위해 요즈음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를 필두로 활성화를 위해 상인들의 SNS 활용 교육 등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외부 요인 보다 문화콘텐츠의 자생적 구조를 갖추는 일이 병행되어야 하는 시점은 아닐까 싶다. 고향에 찾아올 때마다 쌍화차 거리에 들르는 B 씨의 말처럼, 관광객이 오지 않을 때는 주민들이 문화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자생적 문화콘텐츠의 소비구조가 동시에 형성이 되어야 한다. 지역주민이 혜택을 누리는 순환경제구조는 외부 요인의 변화에도 자생력이 강하다. 관광지나 휴양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거주지, 더 나은 일터, 더 나은 삶의 공간으로서 문화의 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