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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 |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박형진, 이현배(2021-06-10 13:52:13)

벗에게 시간을 묻다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모항 박형진 시인께



요새 저는 주먹만한알단지 빚고 있습니다. 이게 묘한 물건입니다. 옹기에서자가 들어가는 그릇들은 농사에서씨알같은 물건입니다. 씨알이 자체로 온전하듯이자가 붙은 그릇들 또한 비록 크기는 작지만 크기만으로는 말할 없는 온전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그릇입니다. ‘ 들어가는 그릇들을 익힐 거의 기합받는 수준이었는데 크기를 욕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일로 붙든 옹기일의 의미를 크기에서 찾으면서 직장이었던 서울힐튼호텔 로비에 있던 헨리 무어의 조각품여인와상女人臥像 1982’ 186.2cm보다 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옹기는 커도 보이지 않아야 하고, 작아도 작아 보이지 않는. 사람만큼이어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좋은 삶의 방식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 삶이 완성형으로 이루어지는 ’ ‘ 단위가 단위 정도도 좋겠다 주신 말씀에 공감합니다. 또한 순임금을 조상으로 여기는 옹기장이로의 삶과, 우임금을 표징하는 솥내마을에서 살다보니 국가주의에 대한 회의가 있습니다. 마을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지역재생을 위한 여러 활동이 있었습니다만 그게 공동체성 회복을 지향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농촌 마을의 현실이 이미 사회구성체가 깨져있기에 오늘날에 맞는 재구성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공동체 사회의 적정규모를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규모를 단위로 두고 문화를 매개로 하여 재구성을 위한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2007 유한킴벌리의 사회발전기금을 활용한 마을문화조사사업을 기반으로 것이었는데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국가주의의 행정행위로 인한 한계로 여겨지다 보니 다시 저의 자격인 옹기장이로 시조인 순임금으로까지 소급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순임금 시대와 우임금 시대가 오늘날로 보면 단위를 벗어나는 시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가에서 이상향으로 여기는 요순시대를 도가에서는 오히려 타락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것입니다. 


구체적인 지역적 삶이 전통적으로는 농경문화에 기반한 마을 단위의 삶으로 가능했던 것을 오늘날에는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를 찾아야 것입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지방자치의 구현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기반하여 도시 사회에는 회사공동체, 아파트의 주거공동체 등의 모색도 기대할 있을 것입니다. 가능성을 인디언 사회를 연구하는 여치헌의 『인디언 마을공화국』에서 이야기한연합 연방의 조직 원리와 결합한 소국분할의 지혜 『인디언 자치공화국』에서 이야기한장소에 뿌리박은 토착의 삶에 대한 존중, 공적인 것에 바탕을 한계선의 설정, 세상 만물에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적 사고에서 우러나오는 절제를 가능케 하는 공화주의의 토대인 공동자산에서 엿볼 있었습니다. 


올봄에 사회학자 이철승의 『쌀 재난 국가』를 놀랍게 접했습니다. ‘벼농사 체제 바탕으로 성장한 동아시아 국가에 남아있는벼농사 체제 유산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도 좋았고 유산의 해석에 있어효과적인 재난 시스템심화된 불평등 구조와 복지국가의 발전 잔재로 읽어내는 것에서 우리 농촌 사회를 다시 들여다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는 동아시아 국가의 기원을 벼농사 체제의 출현과 재난에 있다고 보면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씨족이 모여 사는 마을 공동체가 탄생했고, 유독 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벼농사를 생산 수단으로 채택했기 때문에 국가가 재난의 시기에 나서 백성을 구휼하고 재난을 수습하고 다음 재난을 대비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걸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로 꼽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벼농사 체제의 잔재는 씨족 공동체를 형성하여 협업을 통해 효율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만 닫힌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공동생산-개별 소유라는 이중구조 때문에 경쟁과 질시가 팽배해졌고 이로 말미암아 높은 불신의 사회를 형성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벼농사 지대의 협업이 신뢰 없는 협업과 불신으로 인해 서로 감시하는 일상은 피곤을 낳고 개인을 불행에 빠뜨리기 쉽다는 겁니다. 또한 벼농사 체제가강하고 효율적인 국가 필요로 하면서 강력한 국가의 출현은 중앙집권화된 권력을 소유하게 되고 그들과 가까운 자에게만 권력을 나눠주기에 국가의 존재 자체가 불평등을 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나이기 벼슬 연공제를 버리고 벼농사 체제의 유산인협업 통해 여성의 사회 진출을 지지하고 역할을 늘리는 길이 한국형 위계 구조의 개혁의 첫걸음이 것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브로델의 말을 인용하면서 서구는 밀로부터 자유로웠지만 동아시아는 쌀에갇혔다 하는데, 내용이 놀라워 지역 모임을 통해 독서토론으로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이론입니다.


거창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 인용이 많았습니다. 

너른 이해를 구하며 이만 줄입니다.


2021. 05. 12

옹기장이 이현배드림





손내 선생님께


지난 보내주신 글로 상중이신 알았습니다. 그것도 아버님에 이어 어머님까지 겹상인 셈이라 마음이 많이 허우룩하실 같군요. 늦게나마 분의 명복을 빌며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10남매의(셋은 어릴 적에 죽어서 실제로는 7남매) 막둥이여선지 아니면 아버지의 명이 짧아서인지 나이 열세 쉰아홉의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러니까 51 전이군요. 당시엔 기대수명이 60세나 되었을까요? 환갑 넘기면 오래 살았다 하던 때였어요. 아홉 차이 나는 어머니는 여든 되던 해인 2000년도에 돌아가셨답니다. 저와는 열아홉 차이 나는 누님도 매형과는 아홉 차이인데 매형 죽은 삼우젯날 죽어서 저희 남은 형제들은 일주일 내내 서울에 머물려 상을 치러야 했지요. 누님 내외가 금슬이 좋았는지는 모르지만 병중이었다고는 하나 사흘거리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것을 여러 가지 생각이 엇갈렸습니다. 선생님의 부모님도 사십구젯날 그러셨다니 생각키우는 바가 달랐겠군요. 이로써 저나 선생님이나 기어이 고아가 셈이나 자식 되는 일이 부모 되는 일이니 고애자 일지라도 마음을 빨리 추스르소서.


사월 들어 농사일은 조금 바빠졌습니다. 과수 축산 시설하우스농사라면 연중 틈이 거의 없겠지만 일반 관행농에서는 사월부터는 많이 바빠지는 달입니다. 밭에서는 고추 심는 일을 중심으로 해서 월동작물인 양파 마늘 보리밭을 관리해야 하고 못자리 준비에는 특히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수확을 앞둔 작물들을 돌봐야 하는 일들로, 여름 농사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들로 사월은 어찌 보면 연중 가장 중요한 달이지 싶습니다. 사월 하면 으레껏 떠오르는 일들이 4.19였는데 동안은 세월호의 4.16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올해로 7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자식 가진 부모로서의 아픔은 비록 타인일지라도 바래지지 않습니다. 농사일 바쁜 것이나 가슴 아픈 사연이나 꽃피고 새우는 계절이라 더욱 애닳고 짠한 것이겠지요. 생각하면 사월은 여러 가지로 범연하게는 넘길 없을 계절이기는 하나 요즈음은 이런 것의 구분이나 기억도 점점 흐려지는 같습니다.


특히 농사를 놓고 말한다면 농사의 종류나 농법이 다양해져서 예전의 기억과 맞추어보는 자체가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들판을 바퀴 돌아보면 <숨어사는 외톨박이 농군>들이 많아요. 누가 뭐라고 하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관계치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일들이 아직도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때맞춰서 밭을 달달해서 작물을 심어놓은 솜씨를 보면 금방 있습니다. 마당은 삐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랬다는 어떤 시인의 말처럼 밭주인과 품앗이하기 힘들겠다 생각이 절로 들지요. 그렇기는 하나 농사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각각의 농부가 실현되는 것이므로 어떤 방법을 농부에게 천년 일률로 강요할 수도 뺏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마저도 맘대로 하면 세상 무슨 재미로 농사하리요 것입니다.


저는 어느 정도 꼼꼼쟁이냐구요? 저도 물론 못지않은 점이 있었습니다만 인제는 대강대강 설렁설렁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자기 기준이 몹시 완화되었다고나 할까, 원인이 순전히 힘에 부쳐서입니다. 예전 힘만 가늠대고 하던 가락대로 한나절이라도 일을 한다 치면 곱곱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대니 일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가짐도 서서히 변해가서 이렇듯 사뭇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농사에서만 그런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그런 변화가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결론지어 말하면 조여졌던 나사가 느슨히 풀어지고 어딘가엣것 하나가 빠졌는데도 굴러가는 모양새, 나쁘게 말하면 푼수처럼 것이고 좋게 말하면 조금 여유롭고 넉넉해졌다 정도로 말할 있겠지요. 어찌 보면 이대로가자연의 일부에 알맞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연간 자신의 변화를 바라보고 느끼는 것도 심심한 일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아침마다 방송국의 휴먼다큐라는 것을 보는데 거기에 옹기쟁이가 나와서 재밌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떠올리곤 했는데 자꾸만 비교 불가의 대상을 비교하는 못된 버르장머리가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별명처럼 선생님은 진지함이 너무 넘치고 그이는 꾸밈(재미) 너무 지나치다고 혼자 머리를 끄덕입니다. 용서하소서.

함께 보냅니다. 오랜만에 썼습니다. 그럼. 


2021.04.30

박형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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