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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 | 연재 [보는영화 읽는영화]
치매로 뒤틀린 시공간 속에서의 간절한 몸부림
김경태 영화평론가(2021-06-10 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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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뒤틀린 시공간 속에서의 간절한 몸부림

김경태 영화평론가



노년의안소니(안소니 홉킨스)’ 치매 환자로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올리비아 콜맨)’ 보낸 간병인을 시계 도둑으로 몰아 그만두게 만들고는 혼자서도 지낼 있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인과 함께 파리로 떠날 예정인 앤의 입장에서는 그를 돌봐줄 간병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다음 , 주방에 있던 안소니는 인기척을 듣고 경계하며 거실로 나간다. 낯선 남자가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다. 자신을 사위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집이 자기 집이라고 주장한다. 때마침, 장을 보고 앤조차도 전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심지어, 그녀는 파리에 가서 거라는 말을 적도 없으며, 그가 방금 만난 폴과는 이미 5 전에 이혼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안소니는 점차 위축되어 간다.         


안소니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현실과 기억, 그리고 꿈이 혼재되어 등장하며 경계조차 명확하지 않다. 그의 주변 인물들은 매번 말을 바꾸고, 선형적 시간과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조금씩 미세하게 뒤틀린다. 안소니는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창밖을 내려다본다. 자신을 둘러싼 인물과 공간을 신뢰할 없을 , 창밖의 익숙한 풍경은 지금 있는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확인시켜준다. 관객 역시 안소니의 시각에서 혼돈 속을 헤맨다. 그처럼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하며 영화를 보는 내내 앞에서의 상황들을 반추하며, 치매의 뒤엉킨 시공간을 체험한다. 모두가 쉬이 앞으로 발을 내디딜 수가 없다.



치매는 가까운 사람조차 낯설게 만들고, 낯선 사람의 얼굴에서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평소 안소니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사위는 타인의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다. 한편, 죽은 둘째 딸에 대한 그리움은 간병인으로 로라 밝게 웃는 얼굴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게 만들고, 친근함을 바탕으로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안소니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주변 인물들과의 심리적/정서적 거리가 이런 식으로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치매로 퇴화한 인지력의 자리를 심연의 본능적 감각이 차지하고 있다.       


영화는 불현듯,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는 의문스러운 순간들을 보여준다. 그의 불완전한 기억력에 기대어 가족들이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표출하는 듯한 장면들이다. 앤은 침대에 누운 안소니의 목을 조르고, 폴은 언제까지 자신들을 힘들게 거냐며 그의 뺨을 여러 차례 때린다. 그는 거기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다. 그의 망상일 수도 있지만, 설사 사실이라도 자신의 말을 믿어줄 이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자기도 자신의 기억을 믿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상 자신의 인지력과 기억력에 의지한 자아를 구축해갈 없을 ,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안소니는 불안에 떨며 간호사에게나는 정확히 누구인가요?”라고 묻는다.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아마도 간호사에게 수없이 되풀이해서 던졌던 질문일지도 모른다. 간호사는 다정하게안소니요라고 대답한다. 영화가 지닌 미덕들 하나는 관객으로 하여금 타인이 체험하는 다른 시공간을 감각적으로 재현해낸다는 것이다. 치매 환자처럼 규범적이고 논리적인 시공간성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을 영화적 시공간성을 전유해서 대리해낼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뒤처진 삶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스며들도록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조금 느리고 가끔씩 갈피를 잡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보폭에 맞춰 걸을 있기를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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