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습을 관행이라 부르지 말자
출처 표기 뒤에서 벌어지는 일
일 년 전 즈음 꽤 알려진 패션지에 나의 작품 이미지가 실렸다. 하지만 나는 그 이미지가 잡지에 게재된 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잡지가 발간된 후 글과 이미지가 웹으로 배포되어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심지어 온라인상에는 어떤 크레딧 표기도 되어 있지 않았고, 찾아본 잡지의 지면에는 ‘작가 제공(Courtesy of Artist)’이라고 버젓이 표기되어 있었다. 이 경우는 외부 필자가 이미지를 함부로 사용하는 실수에서 비롯되었는데, 창작물 이미지의 사용의 문제는 공동 창작의 경우 협업자 사이의 윤리 문제부터 기획자, 비평가, 미술기자 등 넓은 의미의 미술계 생산자들이 작품 이미지를 다루는 태도 그리고 잡지 등의 매체가 저작권 이미지를 사용하는 절차 등 논의해야 할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작품 이미지가 지면에 사용되는 경우는 보통 전시를 소개한다거나 작업을 의미 있게 인용하는 때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문제를 지적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 사전에 이미지 사용 허가를 받지 않았더라도 이런 경우, 작가의 입장에서는 감사한 마음이 먼저 앞서기도 하고 어떤 점이 문제인지 설명할 기준과 방법이 딱히 없기도 하다. 순수 예술이라는 장르적 특성 그리고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 구조가 대부분인 독립 예술가로서 작업을 알릴 방법이 한정적이기에 작가는 약자의 위치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제 막 작업을 소개하고 자신을 알리기 시작한 젊은 예술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인지 의아하겠지만, 시각예술 작가는 이런 일을 종종 경험한다.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작품이 지면에 실릴 때 이미지 사용료를 제대로 지불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내가 겪은 것처럼 매체나 필자가 매번 무분별하게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창작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용 허가를 받은 후 이미지를 받아 사용하고 ‘작가 제공’, ‘미술관 제공’ 등의 크레딧을 표시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크레딧을 달고도 작가의 저작권 심지어 초상권도 양해 없이 사용되곤 하는데, 이 사회에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예술인의 권리라는 헐거운 망, 도대체 그 어느 틈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걸까.
익숙해진 ‘관행’의 문제
문제 제기 후 잡지사로부터 이미지 출처의 정정 보도 등 최대한의 사과를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언론사가 ‘관행’이라고 여기는 방식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 이번 경우처럼 잡지사는 이미지가 필요한 원고를 의뢰할 때 필자에게 이미지도 함께 부탁한다. 만약 일반적으로 저작권 사용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나 사례비 요율이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작동한다면 창작자가 자신의 이미지 사용에 대해 모르고 넘어가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잡지사에서는 ‘OO 비엔날레와 OO 미술관 전시 보도자료에도 포함되어 있던 작품 이미지라, 프레스 배포용으로 받은 적이 있었기에 사용하는 것에 당연히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라고도 했다. 이런 ‘관행’으로 인해 많은 언론 매체들이 ‘OO 미술관 제공’이라는 말을 달아놓고, 과거에 받은 자료를 반복해서 사용하면서도 별 의심이 없었던 것이다. 예술가가 전시에 참여하고 보도자료를 통해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은 그 전시의 홍보를 위해서지 언제나 쓸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매체는 그렇게 받은 이미지를 손쉽게 필요할 때 꺼내 쓰면서, 처음 제공한 미술관의 이름을 달아놓는 것으로 윤리적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겪은 후, 미술관 등에서 보낸 전시 보도자료 배포 형식을 살펴보게 되었다. 해외 전시 중에는 ‘보도자료에 포함된 작품 이미지는 본 전시를 소개하는 기사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가 포함된 경우가 있었지만,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에서 배포한 자료에서는 저작권 이미지를 보호하는 특별한 안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한 국공립 미술관의 보도자료에 해당 문구를 포함하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다. 물론 시각 작품의 특성상 비평이나 글에 인용될 때 이미지가 글에 필요한 경우가 많고, 집필자의 표현의 자유와 함께 활발한 연구를 위한 인용의 유연함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2차 저작물에 대한 관용도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한 절차가 삭제되고 꼭 논의되어야 할 문제가 유보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긴 시간 반복되는 관행에 익숙해져 창작자의 권리에는 무감한 채 창작자와 창작물을 시혜적인 태도로 대해왔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어제가 아니라 내일의 기준을 위한 제안
현재 전시에서는 작가보수제도(아티스트 피, Artists’ Fee)가 조금씩 시행되고 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시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작가는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면서도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작품을 다루고 작품 이미지를 사용하는 언론 및 출판물 등으로 확장해서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출판물 제작을 위해 기여하는 모든 이들이 인건비를 받지만, 작가는 이미지를 제공하고 양해를 요구받는 존재가 되기 일쑤다. 작가보수제도의 시행은 단순히 ‘사례비를 지급하는 것‘ 이상으로 예술가의 노동과 창작물을 존중하는 상징적인 의미 또한 크다. 해외에서 적용하는 아티스트 피 요율표를 살펴봐도 다양한 기관의 규모 차이를 고려해 독립 전시 공간, 예술가 운영 공간, 소규모 문화 출판기관 등은 비영리 단체 분류로 지정, 배려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¹ 창작물 이미지 사용 기준을 만드는 일은 기관·매체와 창작자 간의 관계 맺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며, 필자나 매체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줄이고 지향하는 관점과 집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1968년, 캐나다미술인협회(CARFAC)가 아티스트 피의 최저 요율표를 만들고, 1975년부터 예술가들에게 전시료(exhibition fee)를 지불하기 시작하면서 예술가들을 문화적 생산자로 인식하고 전시뿐 아니라 기타 사례비를 법적으로 보장해왔다. 예술가들의 요구에서 시작된 일은 40년을 훌쩍 넘어선 역사가 되었다. 이제 우리도 폐기되어야 할 어제의 악습을 관행이라 부르는 것을 멈추고 내일을 위한 기준이 구축되기를 바란다. 한국 현대 미술의 위상과 성과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다양한 상황에서 창작자를 위한 환경을 어떻게 구성할지 더 넓은 고민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움직임은 저작권법의 헐거운 틈을 메우고, 보류되고 있는 「예술인 권리보장법(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예술경영웹진 462호 <헛소유에서 빈소유로!>에 기고한 글을 축약한 것이다. 원문은 예술경영웹진(https://www.gokams.or.kr:442/webzine/)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캐나다미술가협회(CARFAC), 호주국립시각예술 협회(NAVA), 뉴욕의 W.A.G.E 등에서 각 나라의 실정에 맞는 요율표(Artist Fee Schedule)를 정하고 매년 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