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재생 버튼을 누르다

글 임주아

“왜 수도권으로 안 가고 지역에 남아있게 됐나요?”

지역에서 일하는 청년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어쩐지 부정확한 질문에 거꾸로 되물어본다. “왜 지역으로 안 가고 아직 수도권에 남아 있나요?” 이 말이 더 현실성 있게 받아들이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남아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과 지역에 남는 것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이다. 

멈추지 않고 꾸준히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 보면 보인다. 수직 상승이 가져온 결과보다 계단식 상승이 쌓은 실력이 더 많은 확장을 가져온다는 걸. 개인 뿐 아니라 주변에 영향을 끼쳐 도시와 지역 전체에 없던 바람을 불러들인다는 걸. 

그런 마음으로 군산에 도착했다. 장미동 구영2길에 있는 ‘로컬라이즈 군산’ 건물 앞에 섰다. 오래된 방앗간과 골목길이 살아 있는 구시가지 풍경 속 우뚝 선 이곳에는 창업이라는 어렵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다. 공간이 사람에게, 사람이 공간에게 서로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있는 곳이다.

지역을 살리는 기업 사회공헌을 만나다

시작은 2019년, 창업가를 육성하는 사회적기업 ‘언더독스’가 전북 지역에서 도시가스 사업을 진행하는 SK E&S와 손잡고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브루클린, 독일의 베를린, 스웨덴의 말뫼처럼 한국의 군산에도 ‘청년과 창업’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지역의 변화와 혁신을 이끈다는 목표였다. 군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로컬 창업과 혁신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여기에 ‘우리도 선진적인 도시 재생 사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지역 주민간담회, 서울 사업설명회, 군산대학교 사전 캠프 등을 거쳐 약 3:1 경쟁률 속에 최종 참가 24개 팀 70여 명을 선발했다. 1년 미만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인큐베이팅’ 분야 11개 팀, 2~3년 차 이상 스타트업을 위한 ‘엑셀러레이팅’ 분야 13개 팀이었다. 창업 교육은 12주에 걸쳐 진행했다. 지원금도 적지 않았다. 인큐 팀에는 최대 1,000만 원, 엑셀 팀에는 최대 5,000만 원을 지급해 총 6억 원을 지급했다.

창업 지원금만 지원하는 여타 프로그램과 달리 창업가를 위한 업무 공간과 숙박도 함께 지원했다. 창업가들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펼치고 다른 팀과 협업할 수 있도록 카페, 편집숍을 비롯해 협업 공간, 미팅룸, 공유주방, 사무실, 쉼터 등이 조성됐다. 일반 시민과 관광객에게도 개방해 누구나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언더독스, 비빌 언덕의 매개자가 되다창업 교육은 언더독스에서 전담하지만, 프로젝트 전체의 판은 SK E&S에서 깔았다. SK가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추구를 지역에서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은 언더독스 소유이지만 이곳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나 리모델링 비용은 SK E&S의 지원을 받았다. 

언더독스는 스타트업을 응원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위치는 서울이지만 로컬라이즈 군산을 통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있다. 스타트업은 남들이 안 된다는 걸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실행하고, 존재하지 않는 걸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기존 시스템에서 바라보았을 때 스타트업은 약자일 수밖에 없기에 사회적 가치를 과정과 결과에 담는 일은 더욱 어렵다는 것이 언더독스의 시선이다. 때문에 약자인 혁신 창업가들이 성장하고 성공하기를 진심을 다해 응원하기 위해 ‘underdogs’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고, 언더독들이 모여 판을 뒤집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2년간 로컬라이즈 군산 사업을 비롯해 12개 지역에서 창업 교육을 진행하며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를 목격했다. 정부나 지자체 중심이 아닌 민간 주도의 도시재생은 국내에서도 드문 사례였다. 

이슬기 언더독스 디렉터는 “그동안 몇몇 개인이 지역에 파고들어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대수인 도시재생 프로젝트 현실에 로컬라이즈 군산은 언더독스라는 중간 지원기관과 SK E&S라는 대기업이 사회공헌으로 손잡아 펼쳐내면서 도시재생의 새로운 지형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창업은 경쟁이 아니라 존중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26개 팀은 ‘도시재생’을 주요 목표로 크게 △문화콘텐츠형 △관광연계형 △지역 커뮤니티형 △친환경형 등으로 나뉜다. 군산에 대한 지역 이해도가 높고, 비즈니스 차별성이 있으면서 지역에 넓힐 수 있는 영향력과 팀 역량 등을 고려해 선발했다. 연령도  20대에서 40대로 청년층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월명동에 어울리는 의상으로 공간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월명스튜디오”), 군산의 폐건물을 재생시키고(“망치디자인”), 군산 지역 특산품을 개발(“군산섬김, 블루머스타드스튜디오”)하는 등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업 모델을 구체화했다. 이날 로컬라이즈 군산에서 직접 구매한 초원사진관 배지, 군산 흰찰쌀보리, 군산 명소 게임 지도 등 굿즈가 좋았던 건 누구보다 군산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제품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만듦새도 탁월했고 무엇보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좋았다. 

이 디렉터는 “이곳에서 창업은 경쟁이 아니다”라며 “참가팀 간 소통과 공유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서로의 사업 아이템을 잘 알기 때문에 함께 돕고 존중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제도 남아 있다. 처음에는 26개 창업팀들이 공간에서 북적거리며 활동했지만 하나둘씩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나가다 보니 로컬라이즈 군산 공간은 다시 비게 됐다. 빈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2층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개방하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SK E&S의 계속 지원을 받으리란 보장이 없어 이 공간을 자체 운영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졌다.

로컬라이즈 군산은 3년 만에 지역의 새 버튼을 눌렀다. 침체된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 언더독스와 SK E&S의 콜라보, 로컬라이즈 군산을 믿고 창업에 뛰어든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예전 같지 않은 지역을 세상에 없는 지역으로 되살리는 더 넓은 매개가 되길 함께 기대한다.  글 임주아

Local:Riser

로컬라이즈 군산의 26개 창업팀 중 대표적인 4개 기업을 소개한다. 

군산 지역 특색에 맞는 사업 아이템과 이야기가 빛난다.

‘월명스튜디오’는 ‘시간여행 마을’ 월명동에 어울리는 의상으로 공간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진 스튜디오다. 군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군산의 건축물에 어울리는 근현대 의상을 제공하고 군산을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사진을 촬영한다. 2030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트렌디한 사진을 촬영하여 최적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 외에도 증명사진, 가족사진, 반려동물 사진 등 다양한 생활 밀착 사진 서비스를 통해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사진관으로 나아가고 있다.

‘군산섬김’은 어부인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직접 기른 최고의 수산물을 엄선하여 판매한다. 군산을 기념하거나 군산 대표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관광재화가 부족하기에, 고군산군도에서 군산김을 비롯한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브랜딩 및 유통한다. 군산김 외에 알려지지 않은 좋은 수산물을 발굴하여 제품을 개발하고, 구도심에 위치한 군산섬김 쇼룸을 통해 제품 판매 및 고군산군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군산군도 수산물의 가치를 높이며 군산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망치디자인’은 폐건물 재생 전문 인테리어 회사로,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내와 목수 남편이 함께 일하고 있다. 역사적, 구조적, 공간적 가치를 지닌 군산의 많은 건물들이 인구 감소로 인해 빈집과 폐건물로 곳곳에 방치되고 있다. 망치디자인은 이러한 건물들을 다음 세대가 활용할 수 있도록, 건물이 지닌 세월의 흔적을 보존하며 재생시키는 전문 인테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폐건물의 정보가 담겨진 망치디자인 쇼룸을 구축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직접 와서 폐건물의 가치를 알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블루머스타드스튜디오’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간 브랜딩 디자인 회사로, 2D에서 3D까지 다양한 디자인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고 있다. 디자인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군산을 더욱 살기 좋고 오고 싶은 지역으로 만들고자 한다. 디자인 작업 외에도 군산의 특산물인 흰찰쌀 보리를 활용한 제품 브랜드인 <보리당>을 런칭했으며, 흰찰쌀 보리를 이용한 블렌딩 티를 개발,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