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와
우리 모두의 이야기
글 김하람 기자
성매매, 낙태, 성소수자, 싱글맘, 월경,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고정관념까지. 우리는 왜 이러한 주제를 말하기를 주저할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지만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경험담을 바탕으로 솔직담백하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소통의 창구. 너와 나와 우리의 이야기, 유튜브 채널 <너나나나>다. 올해로 5년째 <너나나나>를 운영하고 있는 크리에이터 이은지 씨를 만났다.
찬반으로 나눌 수 없는 삶의 이야기
<너나나나>의 운영자 이 씨는 대학 시절 사회문제를 공부하는 동아리에서 사회운동 활동을 하면서 좀 더 즐기며 활동을 이어갈 방법을 고민하다 영상을 제작하게 됐다. <너나나나>의 첫인상은 굉장히 강렬했다. 눈에 띄는 섬네일(페이지 전체의 레이아웃을 검토할 수 있게 페이지 전체를 작게 줄여 화면에 띄운 것)과 큰 글씨로 거침없이 적혀있는 주제는 자극적일 수는 있지만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덕분에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속 시원하게 풀어내고, 때로는 학교의 성교육보다 더 건전하고 유익한 콘텐츠로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영상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힌트를 얻어 만듭니다. 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인 거죠. 이혼도 결국 결혼에 대한 고민인 거고, 낙태도 성매매도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지만 드러내놓고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들이에요. 그렇지만 다 겪고 있는 문제인 거죠. 그런 것들을 꺼내놓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흔히 학교에서 성소수자나 낙태에 대한 것들을 토론 주제로 삼는다. 주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서로 누가 옳은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찬반의 문제가 아닌 평범한 일상이며 삶이다. <너나나나>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통해 이혼을 말하고, 산부인과 의사를 통해 낙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 발짝만 옆으로 가면 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영상을 만들 때 당사자분들이 상처받지 않고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대상화하지 않고 최대한 그 사람의 삶의 맥락에서 풀어내려고 해요. 당사자분들이 봤을 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문제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재밌게 만들려고 해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상상하다
<너나나나>가 다루는 주제들은 지금도 도마 위에 올라오는 문제들이지만, <너나나나>는 문제에 대해 찬반을 나눠 논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제를 겪은 당사자들이 그 이후의 과정을 걸어 나가고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문제를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거기에 분노하는 외침도 필요하지만, 저는 그다음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에 대해서 찬반 논쟁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다음 이야기는 없어요. 성소수자가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과,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혼은 어떻게 하고 가정은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완전 다른 이야기죠. 다음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니까 정체성을 확립한 다음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상상할 수 없게 돼요. 자기가 선택한 정체성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지는 거죠.”
이런 문제는 은지 씨 자신의 고민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로서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가족 간의 갈등을 잘 풀어내지 못한 그는 다른 성소수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성소수자 부모님 인터뷰와 성소수자 부부의 인터뷰 영상이다.
“성소수자 부모님은 이성애자이신 거잖아요. 이분들이 자식의 성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됐는지 이야기해주시는데, 정말 속이 시원했어요. 커밍아웃으로 끝이 아니라, 가족에게 받아들여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만나는 사람을 가족에게 소개하는 등 이후의 과정이 있는 거잖아요. 저는 그 과정을 밟지 못해서 그런 이야기들이 듣고 싶었어요. 레즈비언 커플도 마찬가지였어요. 결혼식은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궁금했어요.”
이성애자의 결혼생활은 많이 그려지지만, 성소수자의 결혼 이야기, 이혼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삶에 선뜻 나서기는 힘들다. 선택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없을 때 얼마나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지를 아는 은지 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상상하고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사회적 인식이나 반대로 논쟁하고 싸우는 동안에도 자기 삶은 계속 흘러가고 있어요. 그 삶이 너무 중요한데,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 영상을 통해서 앞서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공유해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큰일은 여자가 하는 거지’, ‘여성스럽게는 이제 그만‘에서는 우리가 어떤 말을 듣고 자라느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돼’, ‘여성스럽게 하고 다녀라’ 등 직접적으로 듣지 않더라도 비슷한 뉘앙스의 말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어떤 기대를 받고 살고, 어떤 말을 듣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영상을 통해 전한다.
“이 영상을 처음 만들 때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취직 이전에는 남자와 여자가 비슷하지만, 이후에는 굉장히 다른 모습을 보여요. 남자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직급도 오르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며, 성숙해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여성에게는 40대 이후의 모습이 없어요. 결혼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도 없죠. 20대 이후로는 사람의 가치가 엄청 떨어지게 되는 거예요. 또 딸은 결혼해서 집을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투자를 한다기보다는 좋은 곳에 시집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요. 물론 다 그렇지만도 않고, 또 어른들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닌 것을 알아요. 그렇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말이나 태도도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너나나나의 미래를 그리다
<너나나나>의 영상들은 자체제작인데다, 수익을 바라고 만든 것이 아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만든 것인 만큼 생활 유지를 위한 본업이 필요하다. 올해 초 지인과 함께 댄스학원을 창업하고 댄스 영상을 만들고 있는 은지 씨는 본업 때문에 업로드는 잠시 쉬고 있지만, 영상을 찍는 것은 멈추지 않고 있다.
<너나나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일반인들이다.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만큼 생생하고 친숙한 느낌이 나지만, 출연자들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삶으로 돌아갔을 때 당황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영상인 생리 고사는 큰 주목을 받았지만, 출연자의 요청으로 현재 영상을 내린 상태다. <너나나나>는 다양한 출연진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채널 운영에 한계를 느낀 은지 씨는 주제나 출연진을 고정시켜 시리즈물로 만들 계획 중에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도 좋지만, 출연진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맥락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너나나나>의 얼굴이 드러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처음 시작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 주변에서 담고 싶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가 있으면 계속해서 영상을 만들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