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의 세월과 라인강을 품은 도시 쾰른
글 윤지용 편집위원
쾰른(Köln)은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며 독일 서부지역의 중심도시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지만 유럽에서 손꼽히는 역사문화도시다. 기원전 38년에 로마제국을 건설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무려 2천 60년에 이르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꼽힌다. 도시의 이름 자체가 로마의 식민지를 뜻하는 콜로니아(coloni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 로마제국 시절의 유적들이 남아 있고 아직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6백 년에 걸쳐 지어진 대성당
오래된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이 쾰른도 강을 끼고 도시가 형성되었다. 쾰른을 동서로 가르며 흐르는 강은 유명한 라인강이다. 쾰른을 여행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 명소들은 대개 강의 서쪽 구시가지 일대에 있어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쾰른 여행은 대성당에서 시작한다. 쾰른 중앙역에서 기차를 내려 역사를 빠져나오면 우뚝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고딕 양식 건물이 쾰른 대성당이다. 이 대성당은 말 그대로 쾰른의 랜드마크다. 위치가 도시의 한 가운데에 있기도 하고 도시 어느 곳에서나 이 웅장한 건물이 보인다. 가톨릭 교구의 주교가 있는 주교좌성당이나 한 도시를 대표하는 대성당을 이탈리아에서는 두오모(Duomo)라고 하고 독일에서는 돔(Dom)이라고 한다. 쾰른의 대성당도 ‘쾰른 돔(Kölner Dom)’이다.
쾰른 대성당은 1248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880년에 완공되었다. 무려 632년에 걸쳐 지어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지어지다 보니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됐다가 네오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건축에 사용된 석재의 재질과 색깔도 서로 다르다. 유럽의 성당들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에 걸쳐 지어진 경우가 많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도 1163년부터 1345년까지, 182년 만에 완공되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유작으로 유명한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 역시 1882년에 건축을 착공되었는데 아직도 짓고 있다. 후원했던 정치세력들의 흥망성쇠에 따른 자금난 때문이기도 했지만, 건축공사를 조급하게 서둘지 않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민간의 건물들도 오랫동안 짓고 오랫동안 진득하게 사용한다. 몇 달 만에 뚝딱뚝딱 지었다가 불과 수십 년 지나면 허물고 ‘재건축’하는 우리의 집짓기를 돌아보게 된다.
쾰른 대성당을 지은 것은 ‘聖物(성물)’ 때문이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 왔다는 동방박사들의 유골함이 이 대성당 안에 있다.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실존했는지, 이곳에 안치되어 있는 유골함이 정말 동방박사들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알려져 있다. 당초에 이 유골함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었는데, 12세기 무렵 신성로마제국의 전성기에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쾰른으로 가져왔다. 그 후 이 유골함을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모여들었고 당시 쾰른의 대주교가 유골함을 안치하기 위한 성당 건축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 대성당은 규모가 웅장하기로 유명하다. 성당 앞 광장에서는 건물 전체를 한 장의 사진에 담기 어려울 정도다. 길이 144미터, 폭 86미터가 넘고 첨탑의 높이가 157.4미터에 달한다.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고딕 양식 성당이며, 1884년에 미국에 워싱턴기념비가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쾰른 대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구시가지를 여행하기 전에 대성당 남쪽 탑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도시를 조망해보는 것이 좋다. 그런데 5백 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니 미리 체력을 비축해둘 필요가 있다. 첨탑 중간에 매달려 있는 ‘베드로의 종’은 무게가 무려 24톤이다.
거대한 외벽에 빼곡하게 조각되어 있는 정교한 조각상들을 꼼꼼하게 올려다보려면 목이 뻐근해지지만 그냥 지나치기 아깝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바닥의 세밀한 모자이크들에 감탄하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들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향연에 압도된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들은 당대의 군주들과 대주교들이 기증한 것이라는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도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이 스테인드글라스들을 보호하기 위해 창을 떼어내서 따로 보관했다고 한다. 대성당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보면 문득 당시의 생산력 수준으로 이런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자원이 동원되었을지 궁금해지고 종교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을지 가늠해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독일의 주요 도시들에 엄청난 폭격을 가했다. 1942년 5월 31일의 쾰른 폭격에는 무려 1,080대의 폭격기가 동원되어 수천 톤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이날의 폭격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무려 6만여 명의 시민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연합군 측에서 쾰른 대성당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성당은 폭격하지 않기로 해서 대성당 건물은 일부만 파손되고 무사했다고 한다.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쏟아부어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면서 성당 건물에는 손상을 입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만큼 중요한 역사문화자산이라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즐겨 썼던 ‘쾰른의 물’
쾰른 대성당에서 남쪽 방향에 이웃한 건물이 로마-게르만 박물관(Römisch-Germanisches Museum)이다.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형성된 도시답게 곳곳에서 발견된 로마시대의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이 자리에 박물관이 세워진 사연도 흥미롭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땅을 파고 지하 방공호를 건설하는 와중에 로마 제국의 유적터가 발굴되고 유물이 출토됐고 한다. 그래서 전쟁 직후인 1946년에 박물관을 지었다가 197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단장했다.
이 박물관은 로마제국 시절의 유리공예품을 비롯한 생활용품과 장신구 등 쾰른 일대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들과 역사자료들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박물관에 입장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그린 모자이크와 로마황제 루시우스의 무덤이다.
로마-게르만 박물관을 나와 구시가지 남쪽을 구경하다 보면 ‘4711’이라는 간판이 있는 상가건물이 있다. 쾰른의 명물인 ‘오 드 콜로뉴 4711’ 매장이다. 흔히 ‘오드코롱’이라고도 하는 향수 오 드 콜로뉴(Eau de Cologne)의 원산지가 바로 쾰른이다. 오드코롱은 향료 농도가 진한 퍼퓸(perfume)보다 훨씬 연한 향수로 향료 농도가 3~7%의 화장수다. 프랑스어로 쾰른이 콜로뉴(Cologne)이고 Eau는 ‘물’이니, 오 드 콜로뉴는 ‘쾰른의 물’이라는 뜻이다.
18세기 후반에 쾰른에 살고 있던 이탈리아인 부부가 한 수도사로부터 수도원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신비스러운 물의 제조법을 전수받아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신비의 물이 쾰른 일대에서 인기를 얻던 무렵인 1794년에 나폴레옹 군대가 쾰른을 점령했는데, 나폴레옹과 그의 부하들도 이 물에 매료되어서 프랑스로 철수하면서 가져갔다고 한다. 나폴레옹 군대가 가져갔던 ‘쾰른의 물’은 프랑스 상류층과 중산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프랑스어로 오 드 콜로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나폴레옹과 그의 아내 조세핀 황후는 한 달에 무려 백 병 넘는 오 드 콜로뉴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쾰른에서 만든 원조 오 드 콜로뉴에 ‘4711’이라는 숫자가 붙게 된 것도 나폴레옹전쟁 때문이었다. 당시에 쾰른을 점령했던 나폴레옹 군대는 점령통치의 편의를 위해서 프링스식으로 건물마다 새로 번지수를 부여했는데, 이 오 드 콜로뉴를 만들어 파는 매장에 붙여진 번지수가 바로 4711이었다는 것이다.
라인강과 호엔촐레른 다리
대성당 주변의 구시가지를 둘러보고나서 동쪽으로 조금 걸으면 라인강의 호엔촐레른 다리(Hohenzollernbrücke)가 나온다.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대성당 다리(Dombrücke)가 늘어난 교통량을 감당하기 어려워져서 1907년에 새로 지은 현대식 다리다. 당시에 프로이센의 왕가이자 독일제국의 황실이었던 호엔촐레른 가문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연합군의 폭격을 잘 견뎌냈지만, 나치 독일 패망 직전에 패주하던 독일군이 라인강 동쪽을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 폭파시켰다가 전후에 복구되었다. 이 다리 위에서 쾰른 구시가지 일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라인강의 경치도 감상할 수 있어 여행자들이 찾는 명소 중 하나다.
유럽의 많은 다리들이 그렇듯이 호엔촐레른 다리에도 ‘사랑의 자물쇠’들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다. 연인들끼리 이 다리에 와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면서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강물에 던진다. 다시는 풀어버릴 수 없도록 사랑을 봉인하는 상징적인 행위일 것이다. 1980년대에 영화 제목으로 유명해진 파리의 ‘퐁네프’ 바로 옆에 있는 다리가 ‘퐁데자르’다. (프랑스어로 ‘pont’가 다리) 이 퐁데자르 역시 난간에 매달린 사랑의 자물쇠로 유명했었는데, 자물쇠들의 무게 때문에 난간이 무너질 우려가 제기되어 몇 년 전에 파리시 당국이 철제 난간을 철거하고 자물쇠를 매달 수 없는 투명 아크릴 난간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쾰른시에서는 “독일의 다리는 튼튼하다”며 자물쇠가 달린 철제 난간을 그냥 두고 있다고 한다. 다리 난간에 매달린 갖가지 색깔의 자물쇠들을 보면서 혼자 생각해봤다. 자물쇠로 잠그고 봉인한다고 사랑을 영원히 묶어둘 수 있을까? 다리 아래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도 흐르고 사랑도 흐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