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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상처를 딛고 타인과 관계 맺기 위한 지난한 노력 | 혼자 사는 사람들
김경태 영화평론가(2021-07-09 10:32:26)



상처를 딛고 타인과 관계 맺기 위한 지난한 노력

김경태 영화평론가



진아(공승연)’ 카드 회사의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며 업무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나 혼자 점심을 먹고 담배를 피며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혼자가 편한 그녀에게 동료들과 교류 없이 전화 응대만 하면 되는 직업이 천직처럼 보인다. 또한 앞에서 마주친 옆집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오지만 그녀는 애써 외면한다. 그처럼 혼자인 일상에 익숙해 있던 그녀를 뒤흔드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한다. 17 전에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온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죽었다. 아버지를 의심하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거실에 설치해 놓았던홈캠 당시 영상들을 되돌려보거나 이제 혼자가 아버지를 관찰한다. 뒤이어 옆집 남자가 사망한 일주일 만에 발견되었다. 새로 이사 성훈(서현우)’ 그를 애도하기 위해 제사를 지낸다며 진아를 초대한다. 그런 와중에 회사에서는 신입직원수진(정다은)’ 교육을 억지로 떠맡게 되었다. 진아는 살갑게 다가오는 수진이 그저 귀찮기만 뿐이다. 


흔히들 콜센터 업무를 감정 노동이라고 한다. 감정 노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객과 감정을 섞지 않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 없는 감정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고객이든 똑같이매뉴얼대로 대하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억지를 부리고 진상을 떨어도 끝까지 친절하게 응대를 하며 콜을 많이 받을 있도록 통화를 짧게 끝내야 한다. 진아처럼 말이다. 반면에 수진은 그게 되지 않는다. 그녀는 타인들과 함께 환호할 있었던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려 한다는 고객에게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공감한다. 그런 수진은 진아가 쌓아놓은 관계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뜨리며 규칙적인 혼자의 삶에 조금씩 균열을 낸다. 



혼자가 편하다는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한 감정 노동이 버거운 사람들이다.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진아는 사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한다. 다만,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깊은 관계를 두려워하는 듯하다. 그녀는 감정을 소모할 필요 없는관계의 표층위에서 부유하거나, 혹은 관계의 희미한 감각만을 유지한 살고 있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조차도 핸드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잠을 때는 TV 틀어놓는다. 나아가 혼자 살던 어머니를 직접 방문하기보다는 홈캠을 통해 지켜보는 것을 선호했다. 그녀는모니터 매개되는 유사 관계에 익숙해 있다. 관계를 맺는 자신만의 느슨한 방식을 발명한 것이다. 아마도 정말로 혼자가 편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투자 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지고 리스크도 관계 맺기보다는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돌아오는 자기 계발에 신경 쓰기를 바라며, ‘소셜 미디어 맺는 약한 유대에 익숙한 자기중심적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차마 기계가 없던 수진은 말없이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성훈이 옆집 남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진아는 타인이 내민 손을 거절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수진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어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가볍게 건네는 타인의 인사나 사과나 격려의 한마디가 의외로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힘이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한다고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진아와 아버지를 섣불리 화해시키지 않는다. 진아는 어머니에게 그러했듯이 혼자 사는 아버지를 직접 방문하기보다는 홈캠으로 지켜보는 선에서 부녀 관계를 정리한다. 연을 아예 끊어버릴 수는 없던 그녀는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이와 같은 타협을 한다. 그리고 비로소아버지 핸드폰에 저장한다. 우리는 영화 내내 진아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기 위해 했던 노력을 봤기에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살아야 하지만 관계의 형태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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