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21.7 | 연재 [이휘현의 도스또예프스끼 읽기]
5대 비극의 거대한 서막 <죄와 벌>
이휘현 PD(2021-07-09 10:38:05)



5 비극의 거대한 서막

이휘현 KBS전주 PD



<죄와 > 재밌는 소설이다. 만약 당신이 독서라는 행위에 어느 정도 습관이 붙었다고 자신한다면, 지금 당장 <죄와 > 펼쳐보라. 소설은 당신의 마음을 붙들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흥미진진한 서사를 그대의 심장에 내리꽂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 깊숙한 어둠을 파헤치는 악마적인 재능의 소유자 도스또예프스끼. 그가 무한한 대중성을 장착한 선보인 19세기 중후반 러시아문학, 아니 세계문학의 절창. 고뇌하는 영혼 라스꼴리니꼬프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탄생시킨 바로 작품. 도스또예프스끼를 세계적인 대문호의 자리에 올려놓은 시금석이자, 그의 인생 하반기를 수놓은 5 비극의 신호탄이기도 했던 <죄와 >(나머지 작품으로는 <백치>, <악령>, <미성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줄을 잇는다).


하지만 작품의 영광이 탄생 배경마저 반짝반짝 빛을 내주는 것은 아닐 .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죄와 > 쓰여지던 시절의 도스또예프스끼는 그의 60 인생 가장 암울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으니, 이제 우리는 1866 러시아 뻬쩨르부르그 어느 골방에서 독촉에 시달리며 소설을 내려가는 40 중반 소설가의 우울한 초상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그려봐야 차례가 되었다.


미하일의 죽음

1863 여름부터 가을까지 유럽에서 도박과 외도로 생을 탕진한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온 도스또예프스끼. 그를 기다리는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였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운명처럼 만나 도스또예프스끼를 그리도 지독한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유부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이사예바. 그녀는 결국 의붓아들 하나를 남기고 사람이 결혼한 7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1864 4). 비통함에 젖은 도스또예프스끼는 죽은 아내 곁에서 자신의 철없던 행실을 참회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해 여름, 미하일마저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도스또예프스끼에게 그의 미하일은 어떤 존재였던가. 엄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지독한 구두쇠이기도 했던 아버지 밑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터울의 의좋은 형제. 어린 시절 수많은 시와 소설들에 열광하며 함께 문학을 꿈꾸었고, 뻬쩨르부르그로 진학 소위 도시의 문학청년 그룹 언저리를 기웃거릴 함께 했던 좋은 . 정치범으로 몰려 구속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릴 때도 가장 위로를 건네주었던 가족. 도스또예프스끼가 시베리아 유형 10년을 보내고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왔을 자신의 나가던 사업을 접고 동생의 문단 복귀를 위해 기꺼이 잡지 창간에 돈을 쏟아부었던 든든한 후원자. 


도스또예프스끼 인생의 곡절마다 곁에서 그를 단단히 붙잡아 매어주던 인생의 동반자이자 사실상 아버지 같은 존재이기도 했던 미하일이 마흔넷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미하일의 죽음은 마흔셋의 도스또예프스끼가 세상에 철저하게 홀로 남겨졌음을 선고하는 거대한 형벌 자체였다.


형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도스또예프스끼는 절망하고 절망했다. 하지만 한없이 슬픔에만 젖어 있을 수도 없었다. 미하일의 가족인 형수와 조카들이 이제는 도스또예프스끼의 경제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형에게는 첩과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까지 있었다. 아내 마리야가 남기고 의붓아들 빠벨까지 합하면 도스또예프스끼의 부양가족은 실제 가까이 되었다. 끝도 없이 옥죄고 짓누르는 가장으로서의 무게!


대목에서 우리는 도스또예프스끼의 특이한 면모를 들여다보게 된다. 태생적으로 경제관념이 흐릿한데다 오랫동안 도박벽에 시달려 도스또예프스끼건만, 아내와 형의 죽음 이후 그가 가족 부양의 의무에는 충실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이 여러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력은 그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다시 도박판을 기웃거리다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도스또예프스끼는 형과 함께 창간했던 잡지 <세기(Epokha)> 지속적인 발간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세기> 판매실적은 부실했고, 이는 만성적인 적자 운영으로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늘어가는 것은 빚이었다. 


결국 경영난에 시달리던 잡지 <세기> 폐간되었다(1865 6). ‘ 하나만 바라보는 부양가족이 넘쳐나는데 사업은 끝내 실패하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도스또예프스끼는 또다시 절망했다. 그렇다면 총체적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도스또예프스끼가 묘안으로 찾아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독자 여러분, 놀라지 마시라. 그것은 다름 아닌 도박이었다!


1865 여름(아내와 형이 죽고 이듬해), 그는 다시 유럽행을 감행했다. 그리고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도박판에 끼어들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 도박 여행을 함께했던 젊은 여인수슬로바 다시 한번 여행의 동반자였다는 !


1865년의 유럽행은 2 전의 그것과 크게 다를 없었다. 도박판에서 그는 번번이 돈을 잃었고, 그럴 때마다 빚은 늘어만 갔다. 다만 다른 것이 있었다면, 이젠 그의 철없는 행동을 수습해 미하일이 세상에 없다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는 뚜르게네프를 비롯한 동료 작가나 친구들에게 돈을 꾸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자 몇몇 출판업자들에게 자신의 원고를 미리 팔기 시작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소설 작품을 담보로 도박 빚을 얻는 미친 짓을 감행한 것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도박 빚이 도스또예프스끼가 후반기 대작을 양산해내는 데에 동기가 되어주었으니 이는 얼마나 불가사의한 삶의 역설인가!


도박, 빚더미, 그다음 수순은 2 전과 다름없이 수슬로바와의 결별로 이어졌다. 돈이 없는데 애정행각이 지속될 만무했다. 1865년의 유럽행은 그렇게 파국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는 빈털터리가 되어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이제 도박 빚의 담보였던 작품들을 쏟아내야 의무만이 남아있었다.


막막한 상황 속에서 1866 새해가 밝았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러시아 통보>라는 잡지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6개의 장과 1개의 에필로그로 쓰일 장편소설은 세상을 놀래킬 만한 엽기적인 살인사건, 그리고 사건의 범죄자가 겪는 복잡한 내면세계를 그려나갈 예정이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소설의 제목을 <죄와 > 정했다. 도박 빚에 짓눌려가며 내려간 장편소설. 19세기 세계문학의 정점에 자리한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살인

라스꼴리니꼬프는 이십 초반의 가난한 대학생이다. 그는 뻬쩨르부르그 어느 후미진 골목 좁다란 다락방에서 초라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내면세계만은 단단하다.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지만, 안에는 독서로 다져진 탄탄한 교양과 세상을 향한 그만의 철학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몰락한 귀족 신분의 가난뱅이일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나름 우월한 존재임을 자부하는 라스꼴리니꼬프. 삶을 짓누르는 가난과 한껏 고취된 정신세계의  불균형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그의 마음속에는, 남들이 알면 깜짝 놀랄만한 계획 하나가 똬리를 틀고 있다. 자신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전당포의 주인 노파를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이 그것이다. 노파는 전형적인 속물이자 물욕의 화신이었다. 그리하여 무서운 계획에는 나름의 정당성이 부여되어 있었다. 인격이 고매한 사람이 세상 악의 존재를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 정의의 행위를 통해 얻게 되는 재물들은 선한 사람들의 삶에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는 정당성! 무엇보다도 사적인 정의가 신과 국가가 내린 불문율살인하지 말라!’라는 명제의 위에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


라스꼴리니꼬프는 위험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간다. 전당포를 찾아가 사람들의 눈길이 취약한 시간을 파악하고 아울러 건물의 구조도 꼼꼼하게 체크한다. 와중에도 그의 마음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개미 새끼 마리 죽여보지 못한 그에게 살인이라는 가당키나 일인가? 사람을 죽인다는 끔찍한 행위 앞에서 그는 그저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완전범죄가 달성되리란 보장도 없다.


하지만 운명의 날은 다가왔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코트 속에 숨기고 도끼로 노파를 살해한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 붙잡고 재물을 챙긴다. 스스로 내세운 정의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일이 꼬이고 만다. 노파의 여동생이 우연히 살해 현장을 찾은 것이다. 당황한 라스꼴리니꼬프는 노파의 여동생마저 도끼로 내려친다. 문제는 노파의 여동생이 무척이나 순진무구하고 착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선의 이름으로 악을 처단한다는 라스꼴리니꼬프식 정의 안에 노파 여동생 살해는 계획되어있지 않았다.


6 구성의 1막은 이렇게 파국으로 끝을 맺는다. 프롤로그 형식의 1막이 끝나고 나면 2막부터 6막까지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살인자로서의 고뇌, 그리고 그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옥죄어 오는 예심판사와의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진다. 소설의 축은 라스꼴리니꼬프의 복잡한 내면을 다룬 심리 드라마가 담당하고, 나머지 축은 범죄자와 그를 쫓는 사이의 스릴러가 받쳐주고 있는 셈이다. 개의 장르가 흥미롭게 섞이면서 소설 <죄와 >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 땀을 쥐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소설은 꽤나 윤리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결국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시베리아 감옥에서구원의 여인 창녀 소냐를 통해 참회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라스꼴리니꼬프. 사이에 흥미로운 사건들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촘촘하게 직조되면서, 비극과 구원의 서사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탄생

독자들이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복잡한 감정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살인을 저지른 남자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묘하게도 그의 완전범죄가 실현되기를 바라게 것이기 때문이다. 라스꼴리니꼬프를 용의선상에 올려놓은 예심판사가 수사를 포기하길 바라고,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의 살해 의혹에 일말의 의심도 보태지 않기를 또한 독자들은 바랄 것이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의심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살인사건으로 인한 죄의식에 이상 시달리지 않고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길 응원하게 된다.


아니 명백한 범죄자임을 빤히 알면서도 그를 응원하다니!! 말이 되지만, 우리는 그의 처지를 알기에 그를 동정하게 된다. 그는 인격적으로 고결한 사람이고, 가난한 삶이 그를 억압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의 내면에 세상을 향한 분노의 감정이 자라나지 않았다면 절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사람임을 독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상 살인을 저질렀지만 끝없이 고뇌하고 죄의식에 시달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를 연민하게 된다. 아울러 그의 범죄가당대 사회의 불행한 구조 엮여있음을 뼈저리게 인식한다. 


대목에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살인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있는가.” “ 불행의 원천을 세상의 탓으로만 돌리는 온당한가.” “버림받은 영혼에게도 구원은 가능한가.” 독자들은 이런 질문들 앞에서 윤리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매우 괴로울 수밖에 없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살인.’ 어쩌면 라스꼴리니꼬프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가장 어두운 거울이 아니었을까.


<죄와 > 인해 도스또예프스끼 인생에서 1866년은 경이로운 해로 기억되고 있다. <죄와 > 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비평가들 또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 데뷔한 이래 20년이 흘러 도스또예프스끼는 작품으로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서게 것이다. 도박 빚에 쫓겨 내려간 소설이 그의 이전 작품 어느 것과도 비교할 없을 만큼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는 아이러니. 결국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문학은 이런 아이러니로 인해 불멸의 힘을 얻게 것이 아닐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