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자들을 토닥토닥 다독이는 따뜻한 손길
글 김하람 기자
책방지기, 인권활동가, 페미니스트, 심리상담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책방토닥토닥지기 1호 김선경 씨. 지난 2016년, 짝꿍인 남편 문주현 씨를 만나고 전주에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짝꿍과 함께 전주남부시장 청년몰에 작은 책방을 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해준다는 의미를 담아 ‘책방 토닥토닥’이라 이름 붙인 책방에서 김선경 씨와 짝꿍 문주현 씨는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았다. 책방지기로서 책방운영은 물론, 북토크, 애니어그램 심리상담, 독서모임, 인권운동까지 때로는 책방 토닥토닥으로, 때로는 자신의 이름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김선경 씨를 만났다.
마음에 품은 문제의식을 행동으로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직장 다니면서 공부를 같이했는데, 심리상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활동들을 하고 싶었어요. 미술치료 활동도 했었고, 책 읽기 프로그램, 학습지 교사, 심지어 핸드폰 만드는 하청업체에서 유해물질 관리하는 직원으로도 일해본 적 있어요.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죠.(웃음)”
성평등과 페미니즘, 퀴어, 낙태, 기후위기, 비건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선경 씨를 보면 조금은 상상하기 힘든 과거의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저나 제 짝꿍이나 활동가의 삶을 바탕에 가지고 있어요. 제 짝꿍은 참소리라는 대안언론 기자로서 활동하면서 소외되고 핍박받은 시민들의 삶에 대한 아픔과 관심이 있었고, 저 역시 여성으로서 보이지 않는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책방 토닥토닥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그는 그동안 막연하게 관심으로 가지고 있던 주제들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활동들은 다 저 자신과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에요. 퀴어의 정체성도 제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며, 낙태죄 폐지나 페미니즘 운동도 제 정체성의 일부예요. 저를 더 저답게 만들 수 있는 활동들이죠.”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그는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책을 읽으며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많이 했다. 이를 통해 세상의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이야기, 베일에 감춰진 이야기를 관찰하고 공부해오던 그는 이 세상이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에 닿았다. 지구도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 간의 연결성이나 관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여러 문제를 저 개인이 어떻게 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말하고 알리고 싶어요.”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다
지난 6월 14일 차별금지법 국민청원 10만 명 달성으로 15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차별금지법’ 제정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성,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2007년 이후로 여러 차례 입법을 시도했으나 좌절된 차별금지법이 10만 명 국민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책방 토닥토닥도 국민청원 달성을 위해 힘을 보탰다. 전주시의회와 전북도의회 앞에서 ‘차별금지 낭독회’를 열기도 했으며, 책방 내에 지지 문구와 안내 책자를 비치해 참여를 독려했다.
“차별금지법이 예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정치적 이해관계나 종교적인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장난질을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회적인 시류나 보편적인 이해의 방점은 결국 차별금지법이 보편적인 인권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시일이 걸리더라도 제정될 거라는 생각이에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무시하는 차별은 없어져야 당연한 것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차별이 만연해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차별금지법은 꼭 필요하지만,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은 멀고도 험하다. 차별금지법이 국민청원 10만 명 달성으로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회부되자 이번에는 차별금지법반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차별금지법이 오히려 역차별을 낳는다는 것.
“역차별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차별을 당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은 그들만의 언어가 없어요. 그들이 왜 부당하게 억압을 받고 있고, 부당하기 피해를 받고 있고, 권리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는 어떤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사실 그들을 보호하는 법이 차별금지법이에요. 근데 거기에서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은 밥그릇 싸움밖에 되지 않는 것이에요.”
한쪽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주장했을 때 받을 불이익을 걱정하며 몸을 사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각자의 정체성이나 인격적인 면을 서로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지만, 오히려 그 법을 두고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악의적인 말을 쏟아내는 현실에 김선경 씨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여기 오기 전 집에서 넷플릭스에 있는 다큐멘터리를 하나 봤어요. 절대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내용인데, 2차 세계대전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어떤 식으로 권력을 모으고 어떤 식으로 전쟁을 일으켰는지에 관해 설명해요.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갖게 된 우울감, 상실감, 분노, 허무주의를 다 유대인 혐오로 쏟아내면서 전쟁을 촉발시켰어요. 혐오가 권력을 잡는 유용한 도구가 된 거죠.”
혐오는 전방위적으로 나라마다 권력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된다. 혐오는 소속감과 맞물린다. 소속감을 통해서 안전함과 자긍심, 긍지를 느끼게도 하지만, ‘우리’ 밖에 있는 것들을 적으로 만들고 배척하게 만든다. 손쉽게 결속력을 만들어내고 권력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결국 혐오라는 에너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절대적 인류애와 사랑에 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이 이야기하는 것도 거기에 맞닿아 있어요. 분노를 분노로써 뾰족하게 날을 세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언어로 풀고, 인류애의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이죠. 그 안에는 보잘것없고, 외면당하고, 소외당하고, 부당함을 당하고, 차별받는 목소리를 모아내는 그물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차별과 억압과 혐오와 자기검열과 싸우며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봤다. 청년몰에 사는 길고양이 ‘도리’의 복막염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치료비 마련에 도움을 준 것.
“복막염 신약이 개발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저는 이 활동이 잘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 믿음의 원천은 인류애, 휴머니티예요. 고양이와 같은 동물도 우리와 함께 사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적 생각을 다 가지고 있다는 증거예요. 보편적 차별금지법은 인간만을 그 범주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길고양이들과 개들, 야생동물과 나아가서 환경까지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감각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손잡고 함께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지키는 길로 나가기를 바라며 지난한 과정일지라도 한 걸음씩 차근차근 밟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