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지낼 수 있을까요?
글 김하람 기자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카페에 들어서자 앉아있던 고양이가 빤히 쳐다본다. 이윽고 다가온 노란빛이 도는 고양이는 이리저리 냄새를 맡으며 파악하더니 다리 사이에 얼굴을 비벼왔다. 사람 좋아하고 애교 많은 이 고양이의 이름은 ‘나르’. 카페 이르마민들레에서 돌보는 외출냥이(돌보는 사람이 있는 길고양이)다. 자유롭게 길고양이들이 드나드는 카페 이르마민들레에서 반려문화·돌봄문화 인식개선 캠페이너 해피나비프렌즈의 활동가 정영아 씨와 윤여태 작가를 만났다.
길고양이 문제, 시민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다
2011년부터 청년몰에서 고양이를 테마로 한 카페를 운영하던 정영아 씨는 어느 날 카페에 찾아온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서 연을 맺게 됐다. 청년몰에 사는 고양이들을 돌보고, 구조된 고양이를 반려하면서, 점점 더 고양이에 대해 알아가던 중, 카페에 찾아오는 고양이 돌봄 봉사자들, 이른바 캣맘들이 이웃과의 갈등이나 고양이를 돌보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토로하면서 길고양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길고양이 문제는 지자체나 전문동물단체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사회혁신리빙랩프로젝트를 알게 되었고, 시민의 시선으로 길고양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2018년, 정영아 씨는 청년몰에서 함께 고양이를 돌봤던 미쓰허문방구 허지현 씨, 평소 동네고양이를 돌보면서 공감대를 갖고 있던 윤여태 작가까지 세 명을 중심으로 해피나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길고양이 문제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반려고양이를 버리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주민과 동네고양이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요?’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해피나비프렌즈를 모으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밟아나갔다.
해피나비프렌즈는 길고양이로 인해 생겨나는 주민갈등과 유기문제, 나아가 혐오범죄를 줄이기 위해 길고양이에 대해 배우고, 알리고, 잇고, 나누는 활동을 펼쳤다.
“길고양이의 문제는 생명경시로부터 발생한 사람의 문제예요. 동물을 향한 폭력이 사람에 대한 폭력과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통계에서 보여주고 있어요.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이웃이 있다면 그 칼날은 사람을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과 고양이의 건강한 반려문화와 길고양이에 대한 편견해소, 그리고 인식개선을 위한 전시, 강연을 진행했으며, 우리나라 역사 속 고양이 이야기를 통해 고양이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캠페인도 진행했다. 또한 길고양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캣맘이 어떻게 주민들과 소통해야 하는지, 길고양이 학대 문제를 왜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며, 반려&돌봄 문화를 위한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해피나비프렌즈는 리빙랩프로젝트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 해피나비프렌즈는 함께 모여 배우고 알리고 잇고 나눕니다. 둘째, 해피나비프렌즈는 동네사람들과 동네고양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합니다. 셋째, 해피나비프렌즈는 지자체가 동물보호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2019년, 리빙랩프로젝트 연계지원에 선정된 해피나비프렌즈는 해피나비캠페인을 기획했다. 그동안의 활동을 경험으로 인식개선 이전에 길고양이 사회문제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 선행되어야 함을 깨닫고 기획한 캠페인이다.
‘무릎아래 작은이웃 길고양이’ ‘오늘도 열심히 쥐 잡는 중입니다. 사료먹고 힘낼게요’라는 재미난 문구를 넣은 메시지 테이프를 제작해 뜯어진 쓰레기봉투나 택배상자, 길고양이 급식소 등 누구나 다양한 일상생활 공간에서 길고양이 문제를 알릴 수 있도록 도왔다. 길고양이에게도 사람에게도 안전한 길을 위한 로드킬 예방스티커 ‘해피로드’, ‘사지마세요 입양하세요’ 문구가 적힌 계산대 미니 게시판, 일정한 장소에서만 볼 수 있는 포스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옷에 메시지를 넣은 워킹포스터 등을 제작했다. 어린이와 어르신을 위한 인형극을 비롯, 인문예술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제작한 ‘묘마마’ 창작동화와 팟캐스트 활동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길고양이 인지재고와 인식개선 활동을 진행했다.
“동물을 학대하면 동물보호법으로 처벌된다는 강한 어조보다는 우리의 이야기가 부담스럽지 않게, 쉽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또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우리 주위에 길고양이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요.”
길고양이 정책의 간판, 공식 길고양이 급식소
2018년 리빙랩프로젝트를 마치며 한 세 가지 약속 중, 지자체의 동물보호 활동을 돕는다는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전주시 동물복지과의 공식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및 운영에 협력했다. 이를 위해 전주시 동물복지 원탁회의에 참여해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동물복지 다울마당 위원활동을 통해 조례개정안을 작성해 개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2019년에 전주시 동물복지팀(현 동물복지과)에서 길고양이 공식 급식소 제작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당시 주무관님이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하셨고, 급식소 제작 및 설치 시 필요한 정보들을 안내해 드리며 (구조, 형태, 설치 장소, 관리 등) 제작에 협력했고, 현재까지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식 급식소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목적 이전에, 시민들에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이 불법이 아니며, 국가에서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광고판 역할을 한다. 그런 상징성을 가지기 때문에 해피나비프렌즈는 공식급식소를 관공서 위주로 놓아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전주시청, 한옥마을관광안내소, 완산구청, 전주교대, 전북대학교 다섯 곳에 시범운영 됐다.(이는 관악구의 선진사례를 답사하고, 그를 근거로 제안한 것. 현재까지 많은 지자체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관공서에 설치하고 있다.) 전주시 공식 길고양이 급식소는 전주를 상징하는 풍남문과 한옥 모양으로 제작되어 전주시와 전주시의 동물복지정책을 알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공식 급식소 돌봄 봉사자들은 급식소를 청결하게 관리하고, 길고양이 개체수 유지, 조절을 위한 TNR1) 실시를 위해 급식소를 이용하는 고양이들을 관찰하고 파악하고 있다. 공식 급식소는 성공적인 시범운영을 마치고 2020년에는 15곳을 늘려 20곳, 2021년에는 다시 20곳을 늘릴 예정이다.
길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우리 주변에 길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길고양이가 와서 밭을 다 헤집고 똥을 싸요’, ‘고양이 우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요’,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다 찢어놔요’. 길고양이의 본능적인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해피나비프렌즈는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말하거나, 정해진 답을 내리지 않는다. 소통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답을 찾아가는 것이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길고양이와 함께 살아갈 현실적인 방법은 고양이를 돌보는 입장과, 고양이로 인해 피해를 본 입장 둘로 나눠서 말씀드릴 수 있어요. 고양이를 돌보고 있는 돌봄 봉사자들에게는 일단 고양이를 돌보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것과 돌봄 봉사자로서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공식 급식소는 동물보호법 제3조에 ‘동물이 갈증 및 굶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아니하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을 근거로 한다. 현재 국회의사당과 전국의 60곳 이상의 지자체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 법에 근거한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고양이 밥자리를 깨끗이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밥자리가 계속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도 민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돌봄 봉사자는 밥자리에 오는 고양이들을 잘 관찰하여 특성, 성별, 개체수를 파악해야 한다. TNR이 필요할 경우 전주시 동물복지과의 도움을 받아 TNR에 적극 협조한다면 이웃 갈등이 많이 줄어들 수 있다. TNR 이후로도 길고양이가 건강하게 영역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하다. 반려문화에 관한 교육이나 길고양이에 관한 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길고양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이웃과 소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길고양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는 우리 동네에 길고양이가 없어지면 하수구에서 쥐들이 올라온다는 것과, 길고양이로 인한 문제들은 지자체의 TNR 지원과 급식소 운영, 그 지역 돌봄 봉사자들을 통해 반드시 줄어들 것이니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응원해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길고양이 문제는 사람들이 키우다 길에 버린 것에서 시작됐다. 가장 많이 버려졌을 때는 1970-1980년대 쥐잡기 운동 이후다. 쥐와 고양이가 천적 관계라서 고양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쥐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고양이를 가정마다 길렀고, 고양이를 수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쥐잡기 운동이 끝나고, 산업화에 따라 거리가 깨끗해지면서 쥐가 하수구로 내려가 보이지 않자 고양이를 대거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길고양이 문제는 이처럼 사람에 의해 생겨난 사회문제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길고양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히 길고양이를 잡아 없애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어요. 급식소를 통해 길고양이의 건강과 거리 위생을 관리하고, TNR 시행을 통해 적정한 개체 수를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해 나가는 것, 느리더라도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해피나비프렌즈의 방향성이다.
“‘무릎아래 작은이웃 길고양이 함께 살아요 살고 있어요’ 길고양이는 이미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단순히 어떤 한 봉사자가 돌보는 고양이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돌보는 동네 고양이가 됐으면 해요.”
지구에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같이 나눠 쓰고 있다는 인지가 필요하다. 이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이나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여전히 동물을 돈 주고 사는 문제나, 학대, 유기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해피나비프렌즈는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면 한 사람 한 사람 인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책도 생겨나며 변화해 갈 것이라고 믿는다. 김하람 기자
1) TNR은 길고양이를 안전한 방법으로 포획(Trap)한 뒤 중성화 수술(Neuter)을 시켜 포획한 장소에 다시 방사(Return)하는 것으로 현재 가장 효과적이고 인도적으로 길고양이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TNR을 하면 발정기 소음이 사라지고 영역다툼으로 인한 울음소리도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