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지 정책, 밀어붙여 될 일 인가
글 김호석 수묵화가
현재 정부는 전통한지 제작기법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 3인을 지정했다. 한마디로 시험문제에 대한 채점기준도 없는데 합격자를 발표한 격이라 할 수 있다. 아니다. 시험문제 자체를 제대로 냈는지부터 검증해 봐야 한다. 그렇다. 심사위원 중 단 1명도 정답을 모르면서 채점하였다.
대한민국에 한지 정책은 있는가. 국가정책은 지원과 규제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지원이다. 정부는 지난 5년간 한지 진흥을 위해 340억 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닥나무 생산량은 줄어들고 한지 생산업체는 28개 업체에서 19개 업체로 감소했다. 지원에 대한 한지 생산량은 물론 소득 또한 하락세다. 생산과 소비를 촉진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가지원은 계속된다.
다음은 규제이다. 한지 품질표시제와 KS인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도에 추진한 ‘한지품질표시제’는 유명무실해졌고, 산업통상부와 산림청은 서화용지에 대한 산업 표준을 2006년에 최초로 제정된 이후 현재까지 KS인증을 신청한 업체가 아직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외국의 유명 미술관을 언급하며 한지가 세계시장에 진출했고 한지가 서양 미술품의 수리. 복원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한지가 외국에서 인정받았다는 기사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실렸고 인터넷 포털에 1백 건 이상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언론에서 말하는 한지생산 관련 업체에 확인한 결과 한지 한 장 팔지 않았다며 거래명세서조차 없다고 말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속 내용을 알고 보면 분통이 터진다.
몇 달 전 서울에서 한지를 세계무형유산에 등재해야 한다고 ‘전통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 유산 등재 추진단’이 발족되었다. 그들은 한지의 우수성이 세계무형유산의 조건에 차고 넘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에 걸맞은 전통한지에 대한 고유의 제작 과정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 최소한 전통성을 주장하려면 선결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것은 지금 생산되는 한지가 조선시대에 제작된 한지와 품질 면에서 유사하다는 과학적 시험 결과가 있어야 한다. 또 세계 각국의 종이와 비교해 가장 질기고 보존성이 좋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며 한국만의 독자적 원료처리 과정과 초지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일련의 근거와 제작과정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말 하건대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모든 한지는 조선시대에 제작한 한지와 크게 다르다. 우선 물질을 하면서 생기는 흔적인 섬유의 배향성이 다르다. 이에 더해 완성된 종이의 물리화학적 특성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다. 서화용이 가지는 섬세한 조건은 아예 충족시키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즉 종이 밀도는 가공처리로 해결할 수는 있지만 조선시대 양질의 한지와는 지합 등 품질차이가 너무 커서 거의 닿을 수 없을 정도이다.
한 장의 종이는 한 장으로 완성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한 장이 아닌 두 장을 붙여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불완전한 상태의 한지를, 그것도 제지 방식에 단점이 많은 현재 한지 초지 방식을 세계에 내놓을 만한 최고의 제지 기술이라고 우기는 것은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다. 정부에서 심사 기준으로 제시한 ‘외발뜨기’는 전통적인 방식도 아니고, 공중에 매달린 끈으로 인해 치명적인 약점을 갖는 불안정한 제지법이다. ‘외발뜨기’ 기법으로 초지한 종이는 ‘한 장’을 뜬 후 두 번째는 앞뒤를 뒤집어 붙여 ‘두 장’을 한 장으로 만든다. 문화재청은 이 불안정하고 한계가 명확한 제지법을 한국 고유의 전통 기법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최소한 이 초지법이 전통 기법이라고 주장하려면 고려, 조선시대 유물로 전하는 한지에 지금처럼 만드는 종이가 있었는지 역사성을 검토했어야 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우수한 한지라고 인정할 수 있는 왕실용 한지나 표전지, 자문지 또는 조선왕조실록에 사용한 종이와 거의 같은 물리화학적 특성을 가진 것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정부는 어느 것 하나 납득할 수 있게 제시한 적이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한지 문화정책 부재와 무지는 더 큰 문제이다. 최근 문화재청에서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 세 사람을 지정 예고했다. 뜻이 있는 전문가들은 한지장 지정에 대해 문제 있다며 재심을 요청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이유인지 우려의 의견은 묵살됐다. 그리고 한지장 지정은 정부 뜻대로 강행됐다. 안타깝게도 정부가 최근 한국의 한지장으로 지정한 3인을 포함한 4인의 한지장은 모두 창호지를 만드는 장인들이고 서화용이나 궁중용과 외교 문서 등에 사용한 밀도 높은 한지는 만들지도 못하는 생활용 한지 기술자일 뿐이다. 현재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한지장은 1인에서 3인을 더 지정하여 4인으로 늘어났다. 4인 모두 일본 방식을 개량하여 만드는 짝퉁 무형문화재인 것이다. 정부는 국적 없는 창호지를 초지하는 장인만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정도로 무능하다.
문화재청은 왜 이렇게 무모한 결정을 했을까? 문제는 전통한지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는 데 있다. 필자는 전통한지의 제작기법과 심사 기준 정보공개를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한지장 지정’ 심사에 특정한 기준은 없다고 했다. 단지 조사대상자의 평소 한지 제조과정 모니터링을 통해 재료와 공정 재현 등의 전통성을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통한지의 제지기법의 근거로 한지장 기록화 도서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전 국가중요문화재 한지장 류행영에 대한 ‘아카이브’다. 하지만 류행영 장인이 제조한 한지가 전통 방식에 의해 제작된 것인지, 조선시대에 시행되던 방식인지 그리고 그가 만든 한지가 조선시대 유물로 전하는 한지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것인지 검증된 적이 없다. 그는 1951년 20세 때 일제 강점기 군용지를 제조하여 납품하던 장인에게 전통한지 제조기술을 유일하게 전수 받았다고 말한다. 그가 처음 배웠다는 김갑종 장인의 한지 제조 기술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전통한지 기술이었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후 류행영 장인이 만든 한지도 전통한지 기법을 알고 제조 현장에서 현실화 시켰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는 ‘쌍발’을 개량화 시켜 줄을 매달아 초지한 것을 배운 세대이며 전통성이 없는 기술을 배운 장인이었을 뿐이다. 그는 무형문화재로 선정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은 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검토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고 의문이 가는 대목도 상당하다. 문화재청에서 전통기술의 근거로 제시한 류행영 선생이 만든 어떤 종이도 조선시대에 제지한 종이와 물리화학적 특성에서 유사한 것이 단 한 장도 없다.
가설이 틀리면 가설에 근거한 모든 결과는 허구이다. 전통한지 제조, 제작 기준도 없이 한지장을 심사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로지 목표를 정해놓고 실적만을 위해 밀어붙인다는 느낌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국가정책을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