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통한 도시 공간의 새로운 실험
글 오민정 편집위원
도시의 성장에 따라 산업구조의 변화, 공간의 확장으로 인해 비어가는 원도심은 도시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건물의 노후화, 상권의 이동과 치솟는 공실률, 줄어드는 인구 등 어느 도시나 원도심은 비슷한 풍경이다. 익산의 중앙동과 전주의 선미촌도 그랬다. 하지만 이러한 원도심에서도 문화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공간과 사람들이 있다. 바로 ‘7월의 서재’와 ‘밀당가게’다.
나와 지역을 알아가는 공간 <7월의 서재>
익산역 근처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에서 구 삼남극장으로 이어지는 ‘젊음의 거리’의 인상은 도시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건물과 도로의 느낌만 봐도 어림잡아 1980~1990년대 중심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곳은 이제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던 시절이 무색하리만큼 중간중간 비어버린 상가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상권이 이동했고, 한때 ‘익산의 1번가’로 불리던 이곳은 점점 비어가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익산역 맞은편 상가골목 2층에 독특한 공간이 생겼다. 바로 독립서점 ‘7월의 서재’다. ‘7월의 서재’가 있던 곳은 익산에서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던 카페 ‘7월의 아침’이 있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독립서점 공간을 물색하던 이도현 대표는 카페 운영 종료 이후 오랫동안 문이 닫혀 있던 장소를 발견하고 이곳에서 공간을 열기로 결심했다.
“독립서점을 왜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꼭 해보고 싶었었어요. 제가 시작하기 전에 여기저기 컨설팅과 조언을 구하려 다녔는데 처음엔 다 부정적이셨어요. 잘 되는 곳에서도 수익이 나오기 힘든 서점을 이곳에서 왜 하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곳이 가진 매력이 제가 생각하는 공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물어물어 도시재생지원센터까지 찾아갔는데, 센터에서 이곳을 열기까지 컨설팅을 많이 받았어요. 이곳에서 판매하는 출판물은 독립출판물, 1인 출판물이 중심이에요. 아마 1인 출판물을 파는 곳으로는 이곳이 익산에서 첫 번째였을 거예요. 1인 출판물 외에도 제가 선정한 일반 서적도 판매하고 있지만 가급적 베스트셀러는 팔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다른 지역에야 이런 것들을 파는 곳이 많은데 아직 익산에는 없더라고요. 저는 이런 종류의 책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시작했어요.”(7월의 서재 이도현 대표)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이도현 대표는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있는 재학생이다. 학업과 공간운영을 병행하고 있다. 혼자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문을 닫아야만 해서 안타까움도 있지만 인근 대학생들의 공연과 프로그램을 쉽게 연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공간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작가들과 전시도 하고 이 공간에 어울리는 작은 공연도 열고 싶어요. 지금 작업공간도 겸하고 있고 아직은 이 공간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어서 일반적인 운영에 힘든 점은 없어요. 하지만 7월의 서재만의 기획공연을 마련하기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취소가 됐어요.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해보고 싶죠. 그런 점들이 아쉽죠. 그래서 지금은 소규모로 할 수 있는 문화활동을 조금씩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번에 도시재생지원센터와 연계해서 이곳에서 중고등학생들의 웹툰 전시회를 하기도 하고, 제가 미술을 전공하다보니 ‘중앙살롱’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그림엽서 만들기, 판화 책갈피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7월의 서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용자 폭이 넓은 편이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오는 청년들부터 주변 상인, 이전에 있던 카페 ‘7월의 아침’에 대한 기억으로 방문하시는 연세드신 아버님이나 어머님 같은 분들도 있다. 주변 상가 사장님들도 와서 여러 조언을 해주고 책을 사가지고 가시기도 했다. 며칠 전 들른 노부부는 여기서 맞선을 봤었다며 처음 만났던 창가 자리에서 한참 책을 보다가 가기도 했다. 가끔은 이곳에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센터 같은 공간이 없는데 이따금씩 프로그램도 하고 책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반갑다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9월에는 이곳에 있었던 ‘7월의 아침’의 기억을 살려 ‘만남’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해보고 있어요. 이번에는 친구들이 같이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소규모로 진행해 볼 생각인데, 역시나 코로나 상황을 봐서 진행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 점들이 아쉽긴 해요. 이곳이 도시재생지역이고 상권이 쇠퇴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좋은 가게들이 군데군데 있거든요. 사람들이 찾아서 오는 동네에요. 저도 그래서 독립서점이자 문화를 나누는 공간으로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사진만 찍고 가도 좋지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화도 나누고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공간은 저와 지역을 알아가는 공간인 것 같기도 해요.”
내가 사는 지역에 자부심 주는 문화 <밀당가게>
전주시청 앞, 한 때 ‘선미촌’이라 불렸던 서노송예술촌에 일곱 개의 가게가 들어섰다. 선미촌 내 업소였던 빈 공간을 변화시키는 ‘선미촌 리빙랩’사업이다. 이 공간들은 팝업 스토어로, 공모를 통해 선발된 일곱 곳의 단체가 오는 11월까지 운영할 예정이다. 전시, 버스킹 공연, 퍼즐체험, 업사이클링 등 새롭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있는 곳이다. 그중 한 곳이 ‘문화밀당’이 운영하는 ‘밀당가게’다.
‘문화밀당’은 시각예술을 전공한 네 명의 구성원이 모여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교육과 디자인 상품개발을 하고 있는 단체다. 비영리단체로 2012년부터 활동을 이어오다가 지난해 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경원동에 사무실이 있지만 ‘선미촌 리빙랩’을 통해 이곳에 문화콘텐츠 상품의 쇼룸이자 전시·공연·체험공간인 ‘밀당가게’를 열었다.
“저희는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상품 판매와 교육콘텐츠 연구 개발이라고 하는 소셜비전이 있어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저희 네 명이 교육대학원에서 만났을 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프로그램, 콘텐츠와 연결해서 공연과 전시와 함께 체험과 같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문화를 교육·체험과 같은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 지역예술인들의 활동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문화밀당 송수연 대표)
문화밀당 구성원들은 지난해 경원동에 사무실을 마련한 이후, 사무실과 집을 오가면서 선미촌을 보게 됐다. 하지만‘폐쇄’,‘ 재개발’, ‘임대’와 같은 종이가 붙어 있는 유리창이 늘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하던 차에 ‘선미촌 리빙랩’공고를 보고 기꺼이 실험에 지원하게 됐다.
“이곳도 우리 지역이고, 같이 살아가야 할 곳이잖아요. 그런데 텅 비어가고 버려지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상업적 활성화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공간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는 이곳에 사시는 주민들의 생각이 궁금했고,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새로운 동네의 느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살고있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게 문화의 힘이기도 하잖아요.”
밀당가게는 올해 6월부터 월 2회, 시민이 체험할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이중 전시와 작가와의 만남, 체험 프로그램은 인스타그램을 보고 오는 편이 많으며, 공연은 동네 주민들이 오며 가며 많이 참여하시는 편이다. 그래서 공연은 마을 어르신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가급적 어르신들의 시선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기획을 하는 편이다.
“저희가 닫힌 공간을 싫어해서인지, 항상 문을 활짝 열고 있어요. 그러면 아직도 주민분들이 지나가시다가‘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하면서 들르시기도 해요. 저희가 개발한, 우리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한 3D입체퍼즐을 보시고 굉장히 신기해하시기도 하고 지역작가 작품을 활용한 상품을 보고 예쁘다고 감탄하세요. 공연 보면서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도 여기서 주민들의 시각에 대한 경험치를 얻는 중이에요. 실험이죠. 아쉬운 점은 기간이 조금 짧다는 거예요. 건물주분하고 가끔 이야기를 하는데, 원래 이곳에서 편의점을 여시려고 했대요. 그래서 우리나라 편의점 기업에 모두 전화를 해봤는데, 다 이곳은 안 된다고 했나 봐요. 상권도 형성돼 있지 않고, 기업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 적절한 공간은 아니라고 했대요. 그러다 보니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얘기가 진행될지 모르지만 건물주분과 성평등전주와도 이야기가 잘 되면 이곳에서 활동을 연장할 수도 있고, 만약 협의가 안 된다 하더라도 근처의 다른 공간에서 활동을 지속해보려 해요. 문화를 통해 내가 사는 지역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활동들이요.”
문화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도시의 경험과 기억
7월의 서재와 밀당가게는 모두 처음부터 공간을 변화시키려는 인위적인 의도를 갖지는 않았지만 문화를 나누는 활동을 통해 주민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때로는 걱정 어린 우려를, 때로는 도움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어 있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젊은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마을의 활력이자 반가운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 이 공간과 마을이 변화할 모습을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은 천편일률적으로 색채가 없는 공간들이 줄지어 늘어설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의 도시개발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쉽게 잊히도록 했다. 경제적 합리성, 자본의 논리는 도시공간에서 항상 사람보다 위에 있었다. 한편 재생을 너무 좁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도시의 옛 모습을 지키고 남겨놔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제 주민들의 요구와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경험과 기억은 도시의 정체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것을 자본으로 치환할 수 없듯, 변하지 않는 과거에만 얽매일 필요도 없다. 문화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시 시민들의 발걸음이 원도심으로 향하고 있다. 문화공간을 통한 변화는 시민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도시를 경험하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새로운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